美 배관공 연봉, 대졸의 3배… AI시대 대박난 블루칼라들
숙련공 고령화로 기술직 몸값 급등
일자리 위협받는 사무직과 달리
AI가 대체 못하는 업무… 수요 되레 ↑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직업 전선에 뛰어든 제러드 핸더슨(25)은 올해로 배관공 7년 차다. 미국 배관공협회가 제공하는 도제 견습 시스템을 통해 1년간 일을 배운 핸더슨의 올해 연봉은 20만 달러(2억6900만원)에 달한다. 같이 학교를 다닌 동창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등에 취직해 받는 연봉은 8만 달러(1억700만원) 정도다. 고졸 핸더슨의 1년 소득이 대학에서 4년간 엄청난 학비를 부담하고 사회에 나온 대졸 동년배들 임금의 3배에 육박하는 것이다.
미국 직장 평가 사이트 글래스도어의 올해 분석에 따르면 마스터급 미국 전문 배관공의 평균 연간 수입은 9만348달러다. 미 노동통계국이 발표한 석사학위 소지자의 평균 연봉(8만6372달러)을 웃도는 수준이다. 저숙련자를 포함한 전체 배관공 평균 연봉도 6만130달러로, 대졸 초임 평균 연봉(5만8862달러)보다 높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육체노동자의 역설’이라는 제목의 기획기사를 통해 미 전역 직업 전선의 현실을 조명했다. 핸더슨의 사례는 관리직, 사무직 화이트칼라 노동자보다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지만 실제 전문가는 찾기 힘든 일’을 하는 블루칼라 전문가가 얼마나 전도유망한 고소득 직종인지를 잘 보여준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 220만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뉴욕의 인플루언서 렉시 아브레우(27)는 전봇대에 올라가 전선을 수리하고 전기 패널을 고치는 수리공이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해 의대 예비 과정을 다니던 아브레우는 학업이 적성에 안 맞는다고 느껴 중퇴한 뒤 할아버지·아버지가 하던 전기공 가업을 이었다. 그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급여 수준이 높은 데다 일하고 쉬는 것 자체를 내 의지대로 결정할 수 있다”며 “이제야 비로소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게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블루칼라 직종은 힘들다는 이유로 기피 대상이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임금이 가파르게 올라 대졸 화이트칼라 직종을 제치기에 이르렀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도제식 견습 교육을 마친 기계공의 시간당 임금은 23.32달러, 목수는 24.71달러였다. 대졸 초임 화이트칼라의 시급(20달러)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6월 ‘블루칼라에게 노다지가 터졌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생산·기술직 일자리 전망을 상세히 분석했다. 결론은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끊임없이 축소되고 위협받는 반면 블루칼라 일자리는 되레 수요가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피어슨그룹의 ‘스킬스 아웃룩’ 보고서를 인용해 회계사·행정비서 같은 특정 화이트칼라 업무의 30%는 앞으로 AI가 처리하게 될 테지만, 배관공 같은 블루칼라 일자리를 AI가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은 1% 미만이라고 전했다. 배관공뿐 아니라 고장수리 서비스, 헬스케어 종사자, 접객 요리 종사자, 건설 전문기술자 등은 사회 모든 분야가 AI의 영향력에 지배된다 하더라도 대체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블루칼라 일자리는 정리해고가 일상이 된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퇴직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일자리로 꼽힌다. 한 분야에서 장인에 가까운 기술을 습득하고 자신의 기술을 파는 블루칼라 자영업자에게는 정년의 개념이 없다.
비영리단체 ‘임플로이 아메리카’에 따르면 2022년 3월부터 2023년 3월 사이에 직장을 잃은 미국 화이트칼라 실업자는 15만명에 달했다. 화이트칼라는 일자리가 줄고 임금도 감소 또는 정체 상태인 반면, 블루칼라는 일자리와 임금 모두 증가세인 것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은 2000년대 이전부터 사람들이 힘든 육체노동을 기피하는 선진국병을 앓아 왔다. 건설 일용노동직과 청소부 등 3D 업종뿐 아니라 배관공, 열쇠공, 자동차수리공 같은 직업군마저 피하게 됐다. 젊은세대 사이에선 근무시간이 길지 않고 일을 쉽게 익힐 수 있으며 근무 환경도 안락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블루칼라 직종은 사양길로 접어든 것처럼 여겨졌었다.
선진국들이 블루칼라 직종을 맡길 값싼 노동력을 찾아 이민자들을 대거 받아들이자 이민자 급증에 따른 차별과 범죄 등 다양한 사회 문제가 불거졌다. 이런 문제들이 갈수록 커져 정치적 쟁점으로까지 비화되면서 반이민 극우 세력의 확산을 부르기도 했다.
이제 블루칼라 기술직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고, 선진국들은 자국인 고급 블루칼라 인력을 키우는 데 혈안이 돼 있다. 고령화 현상도 블루칼라 몸값을 더욱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선진국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15~64세 생산가능 인구는 급감했다. 미국 전국제조업협회는 2030년까지 미국 제조업 분야에서 부족한 인력이 21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몇 십년 동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던 블루칼라가 최소한 선진 사회에선 황금기를 맞게 됐다”며 “사회가 고령화되고 노동력은 희소해지면서 어떤 첨단 기술로도 대체하기 어려운 육체노동에 대한 보상은 더욱 좋아지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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