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왜 싫어하세요? [싫어도-살자]

최유리 2023. 3. 1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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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도-살자] 노조 다시 보기... 공무원 및 공기업·대기업 노조조직률이 높은 이유

[최유리 기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 관련 민ㆍ당ㆍ정 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남소연
 
노동조합이 이렇게 나쁜 곳이라는 걸 이제서야 알았다. 회계장부도 제대로 제출하지 않고, 건설노조는 조폭을 동원해서 금품까지 갈취하고 아주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게 밝혀지는 걸 보니 이제서야 세상이 좀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동안 이런 일이 왜 드러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노동조합을 둘러싼 많은 논란들은 알고 보면 사실과 다른 점이 많다. 일단, 조합원들의 조합비로 운영되는 노동조합은 조합원이면 몰라도 정부에 회계장부를 제출할 의무가 없다.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에게 회계장부를 공개하고 있다. "강성노조가 금품을 요구하더라"며 비판받고 있는 월례비는 더 빠른 일 처리를 요구하며 건설사가 쥐여준 웃돈으로, 사실상의 임금이다. 건설노조는 안전한 노동을 위해 월례비를 거부하고 있는 판이다.

고용노동부 '2021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따르면 한국 사회 노조 조직률은 2021년을 기준으로 14.2%다. 바꿔 말하면 85.8%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매일 아침 9시 출근 준비를 위해 바쁘게 나서는 사람들의 10명 중 1.4명 정도가 노동조합 경험이 있을 뿐,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한 적이 없다. 노동조합을 잘 모르니, 노동조합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미디어에서 이야기하는 불법 파업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일 뿐이다.

계모임도 만드는데 노동조합 왜 못하나

노동조합이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노동자들이 함께 만드는 조합이다. 마음 맞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계 모임을 만드는 것처럼, 같은 사업장 혹은 같은 산업 내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끼리 함께 모여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모임을 만드는 이유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면, 노동조합을 만드는 이유는 근로조건의 향상, 더 나은 회사 생활을 하기 위해서다. 심지어 헌법으로도 보장되어있는 권리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이 일터를 위해 쓰인다. 일터가 괴로울 때,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일터로 떠나는 것을 선택하곤 한다. 이직이다. 더 큰 회사, 더 좋은 회사로 옮기는 것만이 답일까. 새로운 곳도 똑같다면, 또 옮겨야만 할까. 많은 노동자들이 공감하겠지만 이직도 늘 쉬운 일은 아니다.

몸값을 올리며 이직하는 노동자가 능력 있는 노동자인 것처럼 추앙받고 있지만, 극소수의 경우다. 정년 보장이 확실한 공무원 시험 열풍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는 누구나 평생직장에 대한 욕망이 있다는 뜻이다. 떠날 수 없다면 혹은 이대로 떠나기엔 아쉽다면 내가 몸 담고 있는 곳을 지속가능한 곳으로 바꾸는 것이 나을 것이다.

노동조합을 한다는 것, 회사를 열심히 다니겠다는 의지

실제로 노동조합 가입률은 공기업과 공무원들이 민간기업보다 더 높고,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높다. 공공부문은 70%가, 공무원은 75.3%가 노조에 가입해있고, 300명 이상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이 46.3%다. 공기업과 공무원들이, 대기업 직원들이 빨갱이라서가 아니다. 회사에 오래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회사를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것이 이득이라는 판단이다.

그래서 사실 알고 보면 노동자들이 회사에서 노동조합을 한다는 것은 회사를 더 열심히 다니면서 지속가능한 곳으로 바꿔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기껏 뽑아서 키워놨더니 다 나간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중견기업들이 많다.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노동자들이 회사와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면 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른다.

2018년 판교 IT 기업 이곳저곳에서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이들은 업계 전반의 문제였던 장시간 노동과 권고사직 관행을 중단시켰다. 지속가능한 노동을 위해서, 더 건강하게 오랫동안 일하기 위해서였다. 2021년 말에는 뉴욕 버펄로시의 스타벅스 매장에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 2022년에는 뉴욕 스태튼아일랜드의 아마존 물류창고 'JFK8'에서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고용 안정과 일터의 안전을 요구하는 아마존 노동조합의 요구 역시 내가 몸담은 곳을 지속가능한 곳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다.

노동조합이 사업장을 넘어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사회적 요구를 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저임금, 초과 노동과 같은 문제가 개별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라면 산업별 노동조합이 산업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한국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어야만 한다면 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다.

우리나라 법은 노동조합 조직을 이유로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용자를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할 수 있다. 노동조합은 2명만 있어도 만들 수 있다. 물론 많을수록 좋다. 촛불이 여러 개일 때 비로소 어둠을 물리칠 수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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