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 정보 가린 윤 정부... '실용' 내세워 국가폭력 정당화 [소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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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원]
윤석열 정부의 4대 국정 기조는 국익·실용·공정·상식이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정 기조를 차례로 나열하면서, 여성가족부 폐지는 그 중에서도 '실용'이라는 가치에 바탕을 둔 정책이라고 밝혔다. "실용적으로 어떻게 국민에게 와 닿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지"가 그의 관심이라는 것이다.
그는 여가부를 폐지하고 기존 업무를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로 쪼개어 이관함으로써 "실용적 관점에서 전 연령의 남녀가 양성평등 사업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부처 간 기능 중복"과 "정부 운영의 비효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가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과 겹쳐진다.
그러나 정부 부처의 폐지는 '실용'이라는 목표로 정당화할 수 없다. 특히 성평등 정책의 효과가 단순히 '경제적 효율'로 환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동안 여가부가 추구해 온 역할과 가치에 대해 면밀하고 체계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심지어 산하 기관과 구체적으로 논의도 하지 않고 한 부처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할 수 있는가? 그동안 여가부가 추진했던 업무에 대해 현 정부는 어떤 이해 수준 및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김현숙 장관은 "전 연령의 남녀가 동등하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가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곧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과 맥을 같이 한다. 정부는 마치 우리가 같은 출발선에 서 있는 것처럼, 젠더의 영향을 부정한 채 모두에게 "동등한 혜택"을 주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이 없다는 주장은 그 어떤 근거로도 뒷받침되지 않는다. 성별 임금 격차, 고위공직자 및 기업 임원 중 여성 비율, 여성의 경제적 참여 기회 수준, 여성 국회의원 비율,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중 여성 비율, 디지털 성폭력 및 강력범죄 피해자 중 여성 비율 등 한국의 젠더 평등 수준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과는 큰 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을 묵인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젠더 관점을 삭제한 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중이다. 즉, 현 정부는 기존의 구조적 폭력을 단순히 방임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악화시키고 있다. 이것이 바로 국가 주도하거나 용인하는 구조적 폭력이다.
▲ 10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의 여성가족부(여가부)에 대한 국정감사가 여가부 폐지 문제를 둘러싼 여야 공방으로 정회되자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왼쪽 모니터에 "감사중지" 자막이 보인다. |
ⓒ 남소연 |
즉, 폭력은 우리의 성장과 삶을 저해하는 모든 종류의 메커니즘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분명히 피할 수 있는 고통이 우리 사회의 누군가에게 계속 발생한다면 이는 우리 사회에 구조적 폭력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가능한 삶"과 "실제의 삶" 사이의 격차, 그 격차를 생산해내는 것이 바로 구조적 폭력이다.
구조에 내재된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특정 사회 구성원이 정당한 직업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폭력이나 차별의 대상이 되거나, 혹은 수치와 트라우마로 인해 좌절하게 된다면 이는 일상화된 구조적 폭력으로 인한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피할 수 있는, 아니 막을 수 있는 고통이다. 우리가 젠더, 연령, 출신 지역, 학력, 혹은 외모 때문에 잠재적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에 구조적 폭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특히 특정 집단이나 소수자를 상대로 한 국가 폭력은 보다 교묘하거나 드러나지 않는, 혹은 매우 장기간에 걸친 구조적 폭력의 양상을 띠고 있다. 예컨대 권리 박탈, 정책 폐지, 보호 규제 철폐, 특정 지역 혹은 집단에 대한 의도적 저개발, 예산 삭감, 문제 상황 방치, 폭력·혐오·차별 방조 등이 그것이다.
여성은 보호대상 또는 재생산 도구?
윤석열 정부 역시 재분배 억제 및 자유 경쟁 확대를 위한 규제 철폐, 성평등 예산 및 정책 철회, 성평등 프로그램 및 취약 계층 지원 예산 삭감, 교과과정 내 '성평등' 용어 삭제, 여성가족부 폐지 등과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국가 주도적 차별이고 제도화된 폭력이다.
특히 여성가족부가 사라지고 그 대신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가 들어선다는 점은 매우 상징적이다. 아주 오래된 젠더화된 구조적 폭력의 핵심 메커니즘이 바로 여성의 몸과 삶을 오직 재생산에 귀속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에게 여성은 "약자와 피해자로서 보호의 대상"이거나, 아니면 "인구 재생산 도구로서의 모성"에 불과하다. 평등한 사회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힘과 재능을 맘껏 분출시킬 수 있는 다종다양한 여성의 삶을 이들은 상상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한다.
성평등의 이상을 추진하고 실현하기 위해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 한국의 구조적 차별 및 불평등 수준을 고려할 때 여성가족부 폐지는 시기상조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했듯이, 일관된 원칙으로 정책을 추진하려면 성평등 전담부처의 독립적 지위와 권한을 법률로 보장해야 한다. 일개 본부의 기능으로 성평등을 확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의사결정권자의 선의 혹은 정치 지향에 따라 그 본부의 권한이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 10월 15일 오후 2시 서울 종각역 앞에서 여성단체 회원들이 ‘여성가족부 폐지안 규탄 전국 집중 집회’를 열고 있다. |
ⓒ 한국여성단체연합 |
또한 정부는 구조적 불평등과 차별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배포함으로써 정책 설계를 뒷받침해야 한다. 특히 한국의 성인지 통계는 매우 빈약한 수준이다. 심지어 고용노동부는 올해 남녀고용평등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그동안 직종별·직급별로 수집하던 성별 임금 현황 정보를 전체 남녀 평균만 제출하도록 바꿨다. 성별 임금 격차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연히 직종별·직급별 격차에 대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이제는 세부사항을 뭉뚱그려 단지 전체 평균만 비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가려진" 데이터로는 구조적 불평등이 은폐될 뿐 아니라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할 수 없게 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사각지대"에 놓이고 방임될 것이다. 정부는 구조적 불평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이전에 자료를 제대로 수집하고 투명하게 공개하길 바란다.
세심한 검토나 의견 수렴 없이 진행되고 있는 여성가족부 폐지는 물론이고, 여성과 소수자를 상대로 한 억압적 정책은 단순히 '정책 기조의 변화' 혹은 '보수적 정책'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명백히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정책이다. 젠더 영역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국가폭력으로 개념화할 수 있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 김정희원 /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
ⓒ 김정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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