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12월 1일, MBC 창사 20주년을 기념해 열린 ‘제5회 MBC 대학가요제’.

수많은 참가자들 사이 수줍은 기타 하나로 무대에 오른 한양대학교 상경대 1학년 정오차의 ‘바윗돌’이 대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그러나 눈물겹도록 진한 이 노래에 얽힌 진짜 이야기는 그 후에 알려지게 되는데요.

정오차가 ‘바윗돌’을 만들게 된 건 1년 전,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친구를 잃은 슬픔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희생된 분들의 묘지 중에는 제대로 된 비석 하나 없이 방치된 경우가 많았고, 정오차가 직접 찾은 친구의 무덤 역시 황폐한 땅 위에 덩그러니 놓인 돌 하나만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는 황량한 묘지와 비석을 ‘바윗돌’로 형상화했고, 안타까운 그 마음이 고스란히 기타 선율과 가사에 실려 ‘바윗돌’이라는 노래가 되었죠.

당시 대학가요제의 대상을 차지한 사람은 음반을 내고 방송 활동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는데요. 정오차 역시 수상 후 TV, 라디오 등 다양한 매체에 초청받아 ‘바윗돌’을 부를 기회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정오차는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 직후,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바윗돌’의 의미를 이렇게 밝혔는데요.
“무서웠던 시기였어요. 희생자들의 묘는 황폐했고, 그걸 ‘바윗돌’로 형상화했어요. 그 바윗돌이 굴러 민주화의 새 시대를 여는 데 쓰이길 바랐습니다”
이 짧은 인터뷰 한 마디가 파장을 일으켰고 이후 거센 후폭풍이 몰아치고 맙니다.

당시는 신군부 정권이 집권 중이었고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하며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왜곡하고 있던 암흑기였습니다.
정오차의 발언이 알려지자 정권은 곧바로 ‘바윗돌’에 불온한 메시지가 담겼다며 방송 금지곡으로 지정했습니다. 게다가 이미 제작된 음반은 전량 압수 되어 불태워졌고
‘바윗돌’은 대학가요제 역사상 두 번째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뒤, 유튜브에 올라온 ‘바윗돌’ 영상이 다시 회자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며 댓글이 하나둘 달리기 시작했죠.
“이런 노래가 금지곡이었다니…
너무 가슴 아프다”,
“지금이라도 이 노래 더 많이 들려서, 활동하실 수 있게 해드리자”
댓글에는 이처럼 뒤늦은 공감과 위로가 묻어 나오고 있습니다.
정오차 님의 ‘바윗돌’ 유튜브 영상이 회자되면서, 최근 근황을 궁금해하는 이들도 많아졌습니다.
가장 최근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건 ‘2014 대학가요제 FOREVER’ 공연이었는데요.
이 특별 공연에서 다시 한번 ‘바윗돌’을 열창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무대를 끝으로 별다른 공식 활동은 전해지지 않고 있어,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다시 무대에서 뵐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정말 다시 한번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싶네요~
앞으로도 정오차의 진심이 담긴 이 노래가,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따뜻하게 닿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