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오기출 기자]
▲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 본부 앞에 유럽연합 깃발이 걸려 있다. |
ⓒ 연합뉴스 |
실제로 지난 1월 23일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는 <동아일보> 기사 "'계산법도 몰라요' EU 탄소배출 신고 1주 앞 기업들 혼란"에 대해 "정부는 탄소국경조정제도 관련 우리 기업 부담이 최소화되도록 관련 지원을 적극 시행중"이라는 보도설명자료를 발표했다.
8월 2일 <오마이뉴스> 기사 "무능한 윤정부… 조만간 한국 기업 수백 개 사라질 위기(https://omn.kr/29mty)"에 대해서도 산업부는 설명자료에서 ▲ 탄소국경세 도입 초기부터 우리 기업의 요구사항을 적극 개진하여 ▲ 한국 기업의 부담을 완화하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고 자랑했다. 정부가 2021년 7월 유럽연합 탄소국경세 초안 발표 때부터 기업의 요구를 적극 개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초기부터 반영해 왔다는 우리 기업의 요구는 무엇일까?
기업 부담 최소화 추구하는 한국 정부
그것은 '공짜 탄소' 혜택이다. 2021년 7월 27일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현 한국경제인협회)는 '유럽연합 탄소국경세 적용 면제국에 한국을 포함해 달라'는 내용으로 유럽연합 의회에 편지를 보냈다. 이유는 한국이 유럽연합과 유사한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를 운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경련은 1년 뒤인 2022년 9월 28일에도 유럽연합 의회에 다시 유사한 편지를 보냈다. 이렇게 해서라도 한국 기업들은 탄소국경세 면제를 통해 공짜 탄소 혜택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한국 정부는 기업 요구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을까? 2023년 11월 15일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는 보도자료에서 기재부 차관이 유럽연합 게라시모스 토마스 조세총국장을 만나 "한국이 엄격한 탄소배출권 거래제 운영 국가인 만큼 한국 기업에 불필요한 부담을 가중시키지 말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기재부는 토마스 총국장이 한국 정부와 기업들의 의견을 고려하겠다고 대답한 것에 희망을 둔 듯했다.
그런데 정부가 희망을 갖고 있는 유럽연합의 긍정적 고려는 기대할 것이 없다. 전경련의 탄소국경세 면제 요구에 유럽연합은 답을 하지 않았고, 정부의 기업 부담 최소화 요청도 진전이 없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탄소국경세 부과 기준인 탄소배출권 제도는 공짜 탄소를 없애 온실가스를 줄이는 게 목표다. 아울러 투명성, 완전성, 신뢰성 등의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 한국의 탄소배출권이 유럽연합과 호환되기 위해서는 이런 유럽연합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와 전경련이 주장하듯이 한국의 탄소배출권 제도가 엄격할까? 기업은 이 제도로 탄소 배출을 줄이고 있을까? 유럽연합으로 돌아간 토마스 조세총국장은 한국에 대해 사실상 무엇을 고려해야 했을까?
무엇보다 느슨한 탄소배출권 운영이 문제다. 한국은 약 700개의 온실가스 다(多)배출 기업을 대상으로 배출권 제도를 운영하지만, 정부가 대상 기업들의 탄소 배출량 이상으로 탄소 배출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별다른 감축 노력을 안 해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고, 심지어 허용 배출량을 다 채우지 못해 남는 배출권을 판매해 횡재수익까지 챙긴다는 점에서 허점투성이다.
기후환경단체 '플랜 1.5'의 보고서는 한국이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시작한 2015년부터 2023년까지 포스코 등 10개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들이 남는 탄소배출권을 팔아 약 4747억 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9월 3일 국회에서 개최된 배출권거래제 토론회에서 탄소배출권 컨설팅 기업 '에코아이'는 한국에서 이렇게 남아도는 탄소배출권 누적 잉여량이 2024년 9990만 톤이고, 내년에는 1억 3034만 톤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러다 보니 한국의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공짜 탄소와 횡재수익으로 국제 사회의 신뢰를 얻기가 힘들다.
▲ '해외 투자기관들이 기후 대응과 노동권에 대한 우려로 철강업체 포스코를 떠난다'고 보도한 3월 26일 자 영국의 <리스판서블 인베스터> |
ⓒ 리스판서블 인베스터 |
최근 15개 유럽 소재 기관투자자들이 기후 대책 미비 등으로 포스코홀딩스와 자회사들을 투자 대상에서 배제한 것이다. 2024년 포스코홀딩스에서 투자회수 결정을 한 네덜란드 자산 운영사 로베코는 포스코가 석탄을 단계적으로 폐기하는 계획을 세우지 못하자, 기후 기준 미달로 투자를 회수한다고 밝혔다. 이런 투자회수로 포스코홀딩스의 외국인 지분율은 2022년 9월 54%에서 2023년 9월에 절반인 28%로 떨어진 후 회복되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24일에는 2000년 이후 25년 동안 포스코와 전략적 제휴 계약을 맺었던 일본제철이 포스코홀딩스 주식 289만 4712주 전부를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포스코홀딩스의 3.42% 지분을 갖고 있던 대주주 일본제철은 1주도 남기지 않고 전부 매각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제철의 포스코 주식 매각이 미국과 인도 시장에 경영자원을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보도했다. 일본제철이 탈탄소, 탄소국경세, 투자회수, 미국 대선 결과 등으로 미래가 불확실해진 한국 시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통상 투자회수는 투자기관이 적극적으로 개입했음에도 해당 기업이 투자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만족시키지 못해 행사되는 최후의 수단이다.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공짜 탄소의 혜택을 포스코가 누리는 동안에 투자 자본들은 떠난 것이다. 이것은 유럽연합에서 시작해 미국과 영국, 일본 등으로 확산되는 탄소국경세의 공세에서 한국 제조업들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력한 공짜 탄소 대신 대담한 탈탄소 전환으로
지난 3월 8일 대한상공회의소는 390개 기업이 참여한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의 탄소중립 대응실태와 지원과제 조사'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탄소중립이 기업 경쟁력에 긍정적'이라고 한 기업이 올해 60.3%로, 2022년의 34.8%보다 많이 늘어났다. 그러나 응답한 89%의 기업들은 '탄소중립에 대응하려 해도 투자 리스크가 높아 망설인다'고 했다. 너무 낮은 탄소배출권 가격이 그 투자 리스크 중 하나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배출권 거래제 참여기업인 D사는 탄소 감축을 위해 지난 2년간 1000억 원 넘는 비용을 들여 감축 설비에 투자했다. 그런데 탄소배출권 가격이 1만 원 아래로 떨어지면서 회사 차원에서는 배출권 구매가 더 나은 선택이 되어 버렸고, 경영진도 이럴 거면 왜 투자했냐고 담당 부서를 추궁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탄소중립이 기업 경쟁력에 긍정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국의 제조업들이 대응을 안 하는 것은 공짜 탄소가 정치적, 경제적, 정신적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 정부는 9월 초 중국의 탄소배출권 거래제에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를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해당 품목들이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세 대상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의도는 명확하다, 중국 정부는 2026년까지 적응 기간을 거쳐 2027년부터 본격적으로 해당 품목에 탄소 가격을 부과한다고 했다.
그동안 높은 탄소세가 일본 산업에 끼칠 악영향을 고려해 탄소배출권 거래제에 신중했던 일본 정부 역시 2023년 7월 '녹색 전환 추진 전략'을 발표하면서 탄소가격제를 본격 도입하고 있다.
도쿄에 소재한 아시아개발은행연구원 백승주 전 부원장은 "일본 정부는 철강, 알루미늄 등 제조업의 녹색 전환을 위해 10년간 20조 엔(약 184조 원) 이상의 전환채권을 지원한다. 이 전환채권은 탄소가격제인 배출권 거래제와 연동되어 있다. 전환채권의 혜택을 얻기 위해 소극적이던 740개 이상의 일본 기업들이 이 배출권 거래제에 참여하고 있다"라고 했다.
이처럼 중국과 일본은 모두 자국의 제조업을 보호하기 위해 공짜 탄소 대신 탄소에 가격을 부과하고 있다.
한·중·일 중에서 한국만 기업 부담 최소화를 위해 공짜 탄소를 방치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민감한 상황에서 제조업 국가인데도 한국만 둔감하다. 한국도 적정한 탄소 가격 정책과 대담한 탈탄소 지원 전략을 병행해야 지금의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일본처럼 탄소가격제와 연동한 대규모 녹색전환채권 도입이 하나의 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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