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핑'은 안돼…13살의 투자·결혼·은퇴 체험기[필수! 금융교육]⑧
과소비 금물…주식·ETF로 돈 불리기
남은 돈 없으면 파산, 청소당번 당첨
“저희 조가 프랑스에 투자하기로 한 이유는요. 유명한 기업이 많고 나라가 망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22일 오후 방문한 경기 화성 효행초등학교 6학년 4반 교실. 2학기 동안 진행할 ‘국가 상장지수펀드(ETF)’ 모의투자에 앞서 23명의 학생이 각자 투자할 나라를 소개하고 있다. 한 발표자가 “이 그래프는 어느 나라의 주가지수일까요?”라고 질문을 던지자 열댓 명의 학생들이 손을 높이 들었고 교실 곳곳에서 “한국!” “미국!” “땡!” 등의 목소리가 들렸다. OX 퀴즈가 나오면 머리 위로 크게 모양을 만들기도 했다.
초등학교 사회 교육과정 중 ‘세계 여러 나라’ 단원에서 국가별 경제 규모와 대표 기업은 물론 최근 3년간 또는 10년간 주가지수까지 함께 공부하는 모습이다. 자칫 어렵고 지루할 수 있는 ‘돈’ 공부에도 학생들의 눈이 반짝이는 이유는 연간 학급 활동이 금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까닭이다. 학생들은 매주 주급으로 받는 50만원 안팎의 학급화폐를 모으고 굴리면서 앞으로 50여년의 금융 생활을 미리 경험해 보는 중이다.
‘13살의 노후대비’라는 이름의 이 경제교실 프로그램은 한 달마다 5살씩 나이를 먹으며 경제·금융을 간접 체험하는 프로젝트다. 새학기가 시작하는 3월부터 12월까지 9개월간 급여·투자·저축·소비 등을 생생히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우수성과 창의성을 인정받아 2021년 금융감독원장상도 받았다.
6학년 4반 학생들의 목표는 연말까지 나이가 드는 동안 ‘파산’하지 않는 것이다. 지난 3월만 해도 13살이던 학생들이 4월 18살이 돼 군대에 갔다. 반 토막이 난 주급을 보면서 질병·은퇴에 따른 소득감소의 가능성을 몸소 배웠다. 23살로 자란 5월부터는 대학·결혼·노후대비 등을 경험하고 있다. 대학을 택하면 학자금 대출 300만원을 갚아야 하지만 책 4권을 읽고 독서록을 쓴 뒤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다. 결혼식을 올린 학생들은 오는 12월 58살의 나이로 은퇴하기까지 경제공동체로서 돈을 함께 모은다. 친한 친구들로부터 축의금을 받을 수도 있다.
더욱 든든한 은퇴자금을 위해 학생들은 이른바 ‘통장 쪼개기’를 통해 돈을 불린다. 투자 통장의 경우 부모님과 투자전략을 고민한 후 1학기는 주식, 2학기는 ETF를 선택해 모의투자에 나선다. 같은 투자처를 고른 친구들끼리 모여 한 주간 해당 기업·국가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조사하는 활동도 있다. 학생들은 이 시간을 ‘주주총회’라고 부른다.
제2의 워런 버핏이 꿈이라는 김예은양(13)은 “우리 반에서 수익률 10등이다. 애플과 인텔에 투자한 덕분”이라며 “발표하면서 공부하다 보니 배우는 것이 많아졌다고 느낀다”고 전했다.
반장 정예담양(13)은 “삼성전자와 쿠팡에 총 184만원을 투자했는데 (수익률이) -18%까지 떨어졌다”며 “앞으로는 기업이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다. 주식보다 ETF 투자가 안전해 보인다”고 말했다.
투자 리스크(위험)가 부담스럽다면 저축 통장으로 복리 효과를 경험해도 된다. 이때 예·적금 금리는 ‘한국은행 총재’ 역할을 맡은 학생이 주사위를 던져서 결정한다. 모은 돈이 1000만원이 넘는다는 서인혁군(13)은 투자에서 낭패를 본 후 저축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주급의 70% 정도는 저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벌어들인 학급화폐로 학생들은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다. 6학년 4반의 인기 판매품은 젤리와 청소·독서록 면제권이다. 500만~600만원의 거금을 내면 교실 내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는 ‘내 집 마련’ 서비스도 살 수 있다. 다만 과소비로 파산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오는 12월에 모아둔 돈이 없는 학생들은 교사와 함께 교실 청소를 해야 한다.
13살의 노후대비를 4년째 운영하는 김지환 교사는 이 프로젝트를 만든 이유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동안 재테크에 도전했지만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전혀 적용할 수 없었다”며 “수요·공급 같은 경제학 이론만 알려줄 것이 아니라 공교육에서 금융을 제대로, 꾸준히 다룬다면 효과가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방학 때 학교에 나와 칠판에 정리하면서 프로젝트 개발을 시작했고, 요즘은 초등·중등교사 1000여명이 모인 경제교육연구회에서 활동하며 프로젝트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수업 시간이 부족할 수 있지만 최대한 교과목과 연계할 수 있다. 수학 ‘비와 비율’ 단원과 연계해 금리·이자율을, 체육 시간 ‘좀비 술래잡기’ 활동을 통해 복리 효과를 가르친다”며 “학생들이 주급을 받으려면 ‘밤에 라면 먹지 않기’ ‘동생이랑 싸우지 않기’ 등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 평가해야 하기 때문에 인성교육의 측면도 있다”도 조언했다.
학교는 돈 이야기를 터부시한다고 알려졌지만 김 교사의 주변 반응은 긍정적이다. 그는 “4년간 민원을 단 한 번도 받은 적 없다. 학교 현장이 많이 바뀌었다”며 “최근에는 학생들도 모의투자를 할 수 있도록 금융 애플리케이션(앱)이 편리해졌고, 어떤 부모님은 나중에 (재테크를) 잘해야 하니 미리 연습해 보라고 모의투자를 권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화성=전영주 기자 ange@asiae.co.kr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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