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스물에 클래식 노벨상"…세계 음악계 '임윤찬 신드롬'

김호정, 김지선 2024. 10. 3.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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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생애 최초로 발매한 독주 음반 두 장이 세계적 권위의 상에 후보로 나란히 올랐다. 자기 자신과 경쟁한 끝에 ‘클래식의 노벨상’을 받았다.

피아니스트 임윤찬(20)이 2일(현지시간) 영국의 ‘그라모폰 클래식 뮤직 어워즈’ 피아노 부문과 젊은 예술가 부문에서 수상했다. 피아노 부문의 상은 올 4월 발매한 쇼팽의 연습곡 24곡을 녹음한 음반으로 받았다.

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그라모폰의 피아노 부문, 젊은 예술가 상을 들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윤찬. 사진 연합뉴스


올해 피아노 부문에는 세 장의 음반이 후보로 올랐다. 그 중 두 장이 임윤찬의 것이었다.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12곡)을 녹음한 지난해의 음반 또한 후보로 지명됐기 때문이다.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준결승의 라이브 녹음이다. 나머지 한 후보는 폴란드 피아니스트 표트르 안데르체프스키의 음반이었다. 임윤찬은 그라모폰상을 받은 최초의 한국 피아니스트가 됐다.

이번 수상은 한국 뿐 아니라 클래식 음악계 전체의 이변이다. 임윤찬은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으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린 지 불과 2년이다. 그런 그가 국제적으로 발매한 최초의 독주 음반들로 후보에 오르고 상을 받았다.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과 쇼팽 연습곡 음반은 임윤찬의 솔로 연주가 담긴 첫 월드와이드 발매반이다.

한 연주자의 두 음반이 같은 부문에 올라간 일도 이례적이었다. 그라모폰 측은 시상식에 앞서 후보를 소개하며 “임윤찬이 두 장의 앨범을 최종 후보에 올린 것은 놀라운 업적”이라고 표현했다. 게다가 두 음반 모두 피아니스트들에게 정점의 기교와 음악성을 요구하는 작품이었다. 그라모폰 측은 이번 수상에 대해 “임윤찬은 경이로운 기술이 뒷받침되는 천부적 재능과 탐구적 음악가 정신을 지닌 피아니스트”라고 평했다.

2일(현지시간) 그라모폰 클래식 뮤직 어워즈의 시상식에서 축하 연주를 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윤찬. 사진 연합뉴스

그라모폰상은 클래식 음반으로 받을 수 있는 최고 권위의 상이다. 영국의 클래식 음반 전문 잡지인 그라모폰이 1977년부터 해마다 시상하고 있다. 올해는 피아노ㆍ관현악ㆍ오페라ㆍ실내악ㆍ합창음악ㆍ협주곡 등 12개 부문에서 최고의 음반을 선정했다. 여기에 특별상을 올해 최고의 예술가, 음반 레이블, 젊은 예술가에게 수여했다. 대중음악 시상식인 그래미에 비유되기도 하고, 비평가ㆍ음악가 등의 투표를 거친다는 점에서 ‘클래식의 오스카’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클래식 장르에서만 시상하고, 독보적인 권위를 지켜왔다는 점에서 ‘클래식의 노벨상’이라 할만하다.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마우리치오 폴리니, 알프레드 브렌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주빈 메타,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등 각 부문의 역대 수상자가 화려하다. 한국인 음악가 중에는 바이올리스트 정경화(1990년 실내악, 1994년 협주곡), 첼리스트 장한나(2003년 협주곡)의 수상 이력이 있다. 젊은 예술가 부문에서는 미국 국적의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장영주)이 1993년 12세에 수상했다.


수상 조짐 선명했던 임윤찬


임윤찬의 음반은 발매될 때마다 해외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번 수상작인 쇼팽 에튀드 앨범이 나오자 그라모폰은 “유연하고 여유로운 테크닉이 빛을 발하며, 그에게 이 작품들은 어떤 어려움도 주지 않는다”고 평했으며 올 5월의 음반으로 선정하고 표지에 임윤찬의 사진을 실었다. 가디언은 “천재적 재능을 가진 젊은 피아니스트가 특별한 존재임을 확인시켜준 앨범”이라며 별 5개 만점을 매겼다. 뉴욕타임스는 “건반 거장들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목표인 듯한데 어려운 일로 보이지 않는다”며 “라이브 공연의 흥분을 거의 잃지 않으면서 더 많이 제어하며 투명성과 세련미를 더한다. 승리다”라고 평했다.

이번에 후보에 함께 올랐던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에도 호평이 이어졌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최고의 클래식 음반 25선 안에 이 음반을 포함시켰다. 그라모폰도 지난해 9월의 앨범으로 리스트 음반을 꼽았다.


겸손 수수한 수상소감 화제


이런 뜨거운 분위기에 비해 임윤찬의 반응은 담담한 편이다. 그는 3일 중앙일보에 보낸 수상 소감에서 “이런 큰 상은 제 가족, 선생님, 에이전시, 위대한 예술가들, 그리고 제 친구들이 받아야 한다”고 했다. “제가 태어나서 처음 접한 음악인 부모님의 말투로 시작해, 제 눈으로 본 모든 것, 그리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것, 배운 것 이 모든 것들이 제 음악에 녹아있습니다.” 그는 또 “저와 제 음악은 제 주변 사람들에게 매우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은 모든 것들이 연결돼있기 때문에 음악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제가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듣고 느낀 것들을 포함해 사소한 모든 것이 표현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수상이나 호평에 대한 공을 자신의 바깥으로 돌리는 것은 임윤찬 특유의 태도다. 그는 지난 5월 출연한 JTBC ‘고전적 하루’에서도 뉴욕타임스가 자신의 리스트 음반을 최고의 앨범으로 꼽은 데 대해 “리스트가 너무 좋은 곡을 썼고, 나는 그걸 연주했을 뿐이다. 리스트의 위대함에 감동을 받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임윤찬은 2일 그라모폰의 시상식에 참석했지만 수상에 대한 별도의 코멘트는 하지 않았다. 대신 리스트의 ‘순례의 해’ 2년(이탈리아) 중 페트라르카 소네트 104번을 연주했다. 그는 11~12월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한 후 한국에 들어와 12월에 도이치 캄머 필하모닉과 함께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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