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중공군 50명 사살한 '한국전 영웅' 미야무라 히로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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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에서 홀로 중공군 50명 이상을 사살한 '전쟁 영웅' 미야무라 히로시 예비역 하사가 별세했다.
미국계 일본인인 미야무라는 6·25전쟁 참전 용사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전공을 올린 것으로 평가된다.
미야무라는 수류탄에 맞아 부상을 당한 뒤 중공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미야무라는 한국전쟁 후 조국으로 돌아와 자동차 정비사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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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에서 홀로 중공군 50명 이상을 사살한 '전쟁 영웅' 미야무라 히로시 예비역 하사가 별세했다. 향년 97세.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의회 명예 훈장 협회를 인용해 미야무라 하사가 전날 애리조나주(州) 피닉스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미국계 일본인인 미야무라는 6·25전쟁 참전 용사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전공을 올린 것으로 평가된다.
미야무라는 1944년 징집되어 일본계 미국인 부대인 제442연대 전투팀에 배속된 후 1946년 제대했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현역병으로 소집됐다.
한국전 당시 미야무라는 상병 계급으로 분대장을 맡았다. 그는 1951년 4월 24일 밤 연천 대전리 인근에서 미군의 기지를 방어하던 중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았다.
야간 공격에 분대원들이 부상을 입자 그는 이송을 지시한 후 홀로 자리를 지켰다. 그는 총검을 이용해 중공군 10명을 사살했다. 이어 진지로 복귀해 기관총과 수류탄 등으로 더 많은 중공군을 사살했다.
미국 의회 명예훈장 공적서에는 "미야무라는 탄약이 고갈되기 전에 50명 이상의 적을 죽였고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라고 기록됐다.
미야무라는 수류탄에 맞아 부상을 당한 뒤 중공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이후 28개월이 지난 1953년 8월 20일, 휴전이 성사된 뒤에 풀려났다.
이후 그는 당시 미국 백악관의 주인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의회 명예훈장을 받았다. 우리 정부도 지난 2014년 미야무라 하사를 초청해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다.
미야무라는 생전 인터뷰에서 "난 내 부하들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며 "내가 영웅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회고했다.
미야무라는 한국전쟁 후 조국으로 돌아와 자동차 정비사로 일했다. 그의 손녀는 미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일리노이주 공군 기지에서 장교로 복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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