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시작한 트럼프, 이건 꼭 봐야 합니다

김동근 2026. 4. 6. 11:0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리뷰] 영화 <힌드의 목소리>

[김동근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누군가가 서로를 향해 미사일을 쏘고, 공습을 감행하고, 보복을 말하며 다음 공격을 예고한다. 최근에도 이란과 이스라엘, 그리고 미국 사이의 긴장은 전쟁의 불씨를 더욱 크게 키우고 있다.

누군가는 지도 위의 점 하나를 지우듯 특정 지역을 공격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명분있는 공격이라 부르지만, 그 사이에서 실제로 죽어가는 것은 언제나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다. 얼마 전에는 이란의 학교가 공격당해 어린아이들이 집단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이건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계속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란과 미국, 그리고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수많은 전쟁들이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전쟁이 멈추길 바라지만, 전쟁은 언제나 너무 많은 이해관계와 권력의 손을 붙잡고 있다. 그래서 쉽게 끝나지 않는다.

거대한 결정은 늘 윗사람들이 내리지만, 그 결과를 몸으로 견디는 건 결국 이름 없는 소시민들이다. 그들은 전쟁을 시작하지도 않았고, 전쟁으로 얻을 것도 없다. 그저 하루를 살아내려 했을 뿐인데,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가족이 사라지고, 아이들이 총성과 폭격 속에 던져진다. 전쟁은 그렇게 권력자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하나씩 파괴하며 진행된다.

영화 <힌드의 목소리>는 바로 그 잔혹한 현실의 한가운데에서 시작한다. 가자지구에 대피 명령이 떨어진 날, 적신월사(이슬람권의 적십자사)에 6살 아이의 구조 요청이 접수된다. 가족과 함께 피난하던 중 총격을 당한 차 안에 홀로 남겨진 아이, 힌드의 구조요청이었다. 영화는 그 구조 요청이 접수된 이후 몇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을 그대로 따라간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영화 속에 실제 적신월사 직원들과 힌드의 통화 음성이 삽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음성은 연기가 아니고, 실제로 지옥 한복판에서 살아남고 싶어 했던 아이의 떨리는 목소리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전쟁의 파편을 보여주는 다큐에 더 가깝다. 어쩌면 이만큼 전쟁의 폐해를 현장감 있게 담아낸 영화는 쉽게 떠올리기 어려울 것이다.

[첫 번째 감정] 힌드의 두려움
 영화 <힌드의 목소리> 장면
ⓒ (주)더콘텐츠온
6살 아이 힌드는 적신월사 직원들과 통화하며 계속해서 자신을 데리러 와 달라고 말한다. 그 목소리는 너무 작고, 너무 얇고, 너무 떨려서 오히려 더 또렷하고 절박하게 들린다. 아이는 처음에는 주변 가족들이 자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그건 아이가 이미 알고 있는 진실을 직접 표출하기 싫어서 고른 표현처럼 느껴진다.

아이는 주변의 가족들이 모두 죽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걸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기 싫었을 뿐이다. 차 안에는 죽은 가족들이 있고, 바깥에서는 탱크 소리와 총소리가 들린다. 겨우 여섯 살인 아이에게 그 공간은 얼마나 큰 공포였을까.

영화가 잔인한 건, 그 두려움을 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힌드는 울부짖지도 않고, 영화는 감정을 자극하는 음악으로 관객을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대신 영화는 차 안의 어둠과, 들려오는 총성, 그리고 통화 너머로 떨리는 목소리만을 들려준다. 그 침묵은 참 견디기 어렵다.

영화 중반, 적신월사 직원 중 한 명이 힌드에게 편안한 장면을 떠올려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바닷가에서 노는 모습, 파도가 밀려오는 모습, 시원한 바람이 부는 순간을 떠올려보라고 아이를 달랜다. 그런데 그 장면은 이상하게도 위로보다 더 깊은 슬픔으로 다가온다. 아이는 지금 총성과 죽음 사이에 갇혀 있는데, 어른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상상 속의 평화를 꺼내 진정시켜야 한다. 당장 해줄 것이 그것밖에 없다.

그리고 끝까지 힌드는 반복 해서 말한다. 제발 자신을 구해달라고. 누군가 와달라고. 이제는 더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순간에도, 아이는 계속해서 구조를 요청한다. 어른들이 자꾸 기다리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주변은 더 어두워지고, 총소리는 더 차갑게 들린다.

이 영화가 무서운 건, 힌드의 두려움을 거대한 사건으로 만들지 않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끝까지 유지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공기는 더 건조하고, 더 참혹하다. 전쟁이 주는 두려움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바로 그 아이의 숨죽인 공포를 끝까지 붙잡고 놓지 않는다.

[두 번째 감정] 적신월사 직원들의 간절함
 영화 <힌드의 목소리> 장면
ⓒ (주)더콘텐츠온
힌드를 구하러 가는 데 걸리는 예상 시간은 고작 8분이었다. 그 아이는 사실 너무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구급차만 출발할 수 있다면, 어쩌면 살아서 데려올 수도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전쟁은 늘 물리적 거리보다 더 큰 장벽을 만든다.

그 당시 가자지구는 통행이 자유롭지 않은 전쟁 지역으로 지정되었고, 구급차가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러 기관과 정부, 군의 승인과 조정이 필요했다. 적신월사,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그리고 각종 국제 조정 체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아이는 8분 거리에 있었지만, 그 8분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몇 시간의 허락과 조정이 필요했다.

적신월사 직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려 한다. 누군가는 승인 절차를 밟고, 누군가는 현장과 연결하고, 누군가는 아이와 계속 통화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의견 충돌도 생긴다. 그냥 지금 당장 들어가서 구해야 한다는 쪽과, 반드시 조정을 거쳐야 한다는 쪽이 부딪힌다.

하지만 그 충돌은 누가 덜 절실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모두가 너무 절실하기 때문에 생기는 충돌이다. 왜냐하면 승인 없이 구하러 갔다가 구조대원들까지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구조하는 사람의 목숨조차 담보로 걸게 만든다.

그래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적신월사 직원들의 얼굴은 무척 고통스럽다. 그들은 돌아가며 힌드와 통화하고, 울면서도 아이를 달래고, 기도하듯 말을 건넨다. 지금 당장 뛰어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들의 표정과 눈물이 화면을 채운다. 눈물을 닦으며 차분한 척 목소리를 유지하지만, 그 안의 절망은 너무 분명하다. 겨우 8분 거리에 있는 작은 아이 하나를 구하러 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들에게 얼마나 큰 무력감으로 남았을까.

영화는 전쟁이 사람들의 간절함을 어떻게 짓눌러버리는지를 너무 정확하게 보여준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단지 슬픔 때문만이 아니라, 구조할 수 있음에도 구조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무력감까지 함께 담고 있다.

[세 번째 감정] 전쟁의 잔혹함
 영화 <힌드의 목소리> 장면
ⓒ (주)더콘텐츠온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전쟁 자체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는 없다. 힌드를 구하기 위한 조정에는 몇 시간이 걸렸다. 그 몇 시간 동안 아이는 차 안에서 총과 탱크의 위협을 견뎌야 했다. 울먹이는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그 아이는 정치도 모르고, 국경도 모르고, 이념도 모른다. 그저 살아남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전쟁은 그런 아이를 가장 먼저 겨냥한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전쟁의 잔혹함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전쟁은 절대 권력자들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전쟁은 늘 가장 약한 사람들을 관통한다.

적신월사 직원들도, 힌드도, 그들의 가족도 아무 잘못이 없다. 그들은 그저 갑작스러운 공격을 피하려 했고, 살아남기 위해 움직였고, 서로를 구하려 했을 뿐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옆에서 보거나, 죽어가는 걸 보는 그들은 그 슬픈 고통을 그저 받아낼 뿐이다.

영화는 그런 아픔을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담담하게 보여줘서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그들이 생명을 잃는 것이 도대체 누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 죽음들이 전쟁을 끝낼까. 절대 아니다. 전쟁은 그렇게 수 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우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음날로 넘어간다.

힌드의 목소리는 그 참혹함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한다. 아이의 목소리 안에는 그저 무서워서 벗어나고 싶고, 누군가 자신을 구하러 와주기를 바라는 아주 작은 인간의 본능만이 남아 있다. 그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적신월사의 직원들은 실바늘 같은 구조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건다.

하지만 수 시간동안 조정과 승인을 받은 구조 작전조차 실패할 확률이 높다. 전쟁은 사람을 한순간에 죽이는 것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끝없이 짓누르고, 무너뜨리고, 인간이 인간을 지킬 수 없게 만드는 방식으로도 잔혹하다.

적어도 이 목소리는 들어야 한다

현재 세계는 전쟁 뉴스가 계속 업데이트 되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향한 공격과 강경한 발언으로 다시 세계를 혼란 속에 밀어 넣고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또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다. 그 안에는 분명 아이들도 있다.

그 아이 중 누군가는 지금도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두려움에 떨면서, 누군가가 와주길 바라면서, 전화기 너머로 살고 싶다고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목소리를 얼마나 오래 기억하는가. 전쟁이 뉴스의 헤드라인에서 밀려나면, 그 목소리들도 너무 쉽게 사라져 버릴 것이다.

영화 <힌드의 목소리>가 중요한 이유는 전쟁의 파편들 속을 들여다보게 해줘서다. 이 영화는 실제 힌드의 통화 음성과 적신월사 직원들의 목소리를 영화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관객은 단순히 사건의 관찰자가 아니라, 거의 그 전화선 옆에 서 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된다. 그 목소리들 안에는 두려움, 긴박함, 무력감, 간절함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들이 느끼는 지옥이 무엇인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어쩌면 이 목소리들은 가장 먼저 전쟁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들려줘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치적 명분과 군사적 계산을 말하기 전에, 그들이 먼저 들어야 하는 건 한 아이가 '제발 데리러 와 달라'고 말하는 그 목소리 아닐까.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충분히 강력한 반전 영화다. 존재 자체가 이미 하나의 저항처럼 느껴진다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은 <피부를 판 남자> <올파의 딸들> 같은 작품에서 보여줬던 방식처럼, 이번에도 그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든다. 배우들 역시 마치 실제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처럼 절박하게 연기한다. 그들은 누군가를 연기하기보다, 그날의 시간을 재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음성과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이 겹칠 때, 영화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거의 집단적인 애도의 공간이 된다.

이 작품은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 부문 후보에도 오르며 국제적으로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개봉예정인 <힌드의 목소리>는 반드시 봐야 할 영화다. 전쟁의 영향을 받는 우리 모두에게, 추천한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기보다,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현실을 끝내 보게 만든다. 그리고 때로 영화가 해야 하는 일은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 이 목소리는 트럼프 같은 권력자들이 가장 먼저 들어야 할 목소리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