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1970년대 '코리아게이트' 주역 박동선씨 별세
1970년대 박정희 정권 당시 한·미 외교 관계에 마찰을 일으킨 '코리아 게이트'의 핵심인물인 박동선(89)씨가 19일 별세했다.
순천향대병원에 따르면 박씨는 이날 오후 6시 45분쯤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박씨가 지병을 앓고 있었고, 일주일 전쯤 상태가 악화돼 순천향대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산 상태였다고 전했다.
1935년 평남 순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17세 때 미국으로 가 조지타운대학을 졸업했다. 미국에서 미국산 쌀을 한국으로 수입하는 사업을 하던 그는 1960년대부터 워싱턴 시내에 '조지타운 클럽'이라는 고급 사교장을 운영했고, 이곳을 미국 유력 정치인들과 교류하는 장으로 활용하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높였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70년대 중반 미국 전·현직 의원 32명에게 85만 달러의 선거 자금을 제공한 '박동선 스캔들' 또는 '코리아 게이트'로 유명해졌다. 이 사건은 1976년 10월 24일 워싱턴 포스트(WP) 일요판의 톱을 장식했다. 당시 WP는 "박동선이라는 한국인이 한국 정부 지시에 따라 연간 5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 상당의 현금으로 90여명의 미국 정치인에 대해 매수 공작을 했다"고 보도했다.
결국 이 사건은 박씨가 미국 측으로부터 면책특권을 받는 조건으로 1978년 미국 공개청문회에서 선거자금을 제공한 사실을 증언하면서 일단락됐다. 당시 그는 자신의 행동이 모두 개인적이었을 뿐이라며 한국 정부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고, 이후 박씨에게 돈을 받은 일부 의원만 징계를 받았다.
이후 박씨는 2006년 1월, 뇌물수수 등 불법 로비 혐의로 미 FBI에 또다시 체포됐다. 그는 이라크 사담 후세인 시절 유엔을 상대로 '석유-식량' 프로그램 추진 과정에서 250만 달러의 로비 자금을 이라크로부터 받았고, 이 로비 자금의 일부가 한 유엔 관리를 상대로 쓰였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에 박씨는 멕시코에서 미 연방 경찰에게 체포돼 5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했고, 2008년 9월 조기 석방되어 귀국했다.
이와 관련해 박씨는 지난 2009년 11월 국내에서 열린 공개 강연에서 "나는 로비스트와 거리가 멀다"며 "우리나라가 너무도 살기 힘든 60∼70년대, 민간외교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던 시절, 한국의 고위급이 미국에 가도 과장급밖에 못 만나던 시절, 그 누구의 임명도 없이 스스로 민간외교를 펼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억울한 일로 따지만 10번, 20번 자살했을 것"이라며 "2005년에 이라크 난민을 도우려다 '불법 로비' 혐의를 받아 옥고를 치른 일은 참 가슴 아픈 일"이라고 주장했다. '코리아 게이트' 때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있어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지만, 이라크 사건 때는 고령인 데다가 한국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해 더욱 고통스러웠다는 것이다.
이후 박씨는 한동안 세간에 노출되지 않다가, 지난 2013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의 중문 번역판 출판기념회에 돌연 모습을 드러내 축사를 하기도 했다.
현예슬 기자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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