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옆에 갤러리를 열다, '무늬와 공간' 대표 임창준 원장

치과 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하지만 갤러리가 있는 치과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사진을 사랑하는 치과의사가 개관한 작은 갤러리 ‘무늬와 공간’에는 긍정적이고 편안한 에너지가 가득하다.
ⓒden
임창준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
이엔이치과의원 원장
갤러리 ‘무늬와 공간’ 대표

치과의사이자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은 언제부터 찍기 시작했나
본과 시절 절친한 친구가 사진반장이었다. 그 친구의 권유로 사진반에 들어가 레인지파인더로 스트레이트 사진을 많이 찍었다. 본격적으로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0여 년 전이다. 요즘 작가들은 어떤 작품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작품 세계를 확장하고 싶어 중앙대학교 사진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작품 주제가 궁금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영원’이라는 키워드가 지니는 함의를 탐구한다. 종교적 주제는 물론 태곳적부터 존재해 온 돌과 암석, 선조들의 흔적인 고인돌 등을 촬영하고 있다. 이를 테마로 개인전도 여러 번 열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상고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갤러리를 열게 된 계기는?
치과 진료를 무서워하거나 꺼리는 사람이 참 많다. 내원하는 환자들의 긴장을 완화하고 싶어 치과 입구 대기실에 내가 찍은 작품을 크게 걸어 뒀었다. 의외로 환자들의 반응이 좋아 아예 갤러리 형태로 공간을 확장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앞부터 치과 입구까지 여유 공간을 활용하고, 원장실을 3분의 1로 줄여 전시를 할 만한 공간을 마련했다.

갤러리에 ‘무늬와 공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빈 캔버스에 마음껏 무늬를 그려나가듯 사진, 회화, 도예 등 예술 작품으로 얼마든지 채워나갈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이 공간에 전시된 작품들이 관람객들의 마음에 치유의 무늬를 남겼으면 좋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갤러리가 있는 치과는 흔치 않다. 방문객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처음에는 환자들이 조금 어색해했는데, 지금은 무슨 전시를 여는지 궁금해 치과를 찾는다고 한다. 진료를 받기 전에 걱정이나 긴장을 내려놓는 데 도움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기분이 매우 좋다. 치과 내원 겸 갤러리에 오는 분이 대부분이지만, SNS를 보고 갤러리 방문을 목적으로 찾아오는 분도 점차 늘고 있다. 그분들은 치과 옆에 갤러리 가 있다는 것, 그런데 그 공간이 너무나 잘 꾸려져 있다는 것에 놀란다.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날, 갤러리에서는 이의준 작가의 개인전 '궁을 거닐다 II, On and Between'이 열리고 있었다. ⓒden

이제까지 어떤 전시가 열렸나?
개막전으로 김광수 작가의 사진전 <설탕 유희>를 열었고, 박하선 작가의 <변방에 뜬 달을 보다>, 홍익대학교 대학원 이원철·윤정미 교수, 중앙대학교 사진아카데미, 임수식 교수와 양재문 작가 등의 사진전 외에 박재영·김형년 작가의 서예가 있는 사진전 <세월유수>, 박창환 작가의 회화전 <그 감촉> 등을 전시했다. 특히 2023년도에는 총 4회에 걸쳐 특별 기획전 <예술을 통한 치유> 시리즈를 전시했다. 금년에는 <어르신>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다.

처음부터 사진 갤러리를 염두에 두고 공간을 기획했나?
기본적으로 사진 전문 갤러리를 생각했는데, 여러 전시를 준비하다 보니 예술 작품을 폭넓게 다루고 싶어졌다. 사진을 중심으로 전시를 기획하되 회화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 작품 전시도 개최하고 있다.

6월에는 어떤 전시가 예정돼 있나?
5월 23일부터 6월 5일까지는 ‘누미(Numi)’라는 예명으로 알려진 이경희 작가의 누드 드로잉을 소개하는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이후 6월 7일부터 19일까지는 내 사진전을 기획하고 있다. 생명 창조의 과정을 담은 돌 사진 작품을 소개할 예정이다. 6월 20일부터 7월 2일까지는 가상 세계를 사진으로 표현한 김동식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전시 작가 선정은 어떻게 하나?

무늬와 공간에서 열리는 전시는 대부분 회원전이다. SNS로 작품을 본 뒤 메시지를 보내 컨택하거나, 갤러리로 직접 연락을 주신 분들의 포트폴리오를 체크한다. 그리고 작가와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며 작품 주제나 가치관이 우리 공간과 잘 맞는지 살핀 뒤 작가 회원 가입을 제의한다. 작가 회원이 되면 기본적으로 일주일간 전시를 할 수 있다. 단순히 공간만 대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공간과 잘 맞는 작품을 전시하고 싶어 이런 제도를 도입했다.

갤러리 한편에 마련된 사무실 겸 휴식 공간. 도록과 작품 자료들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den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와 소통’이다. 이 공간을 방문하는 이들이 치유의 에너지를 받아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개관 때부터 한 번도 빠짐없이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마련해 왔다. 이 시간에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보이차를 낸다. 작가와의 대화에 참여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사전 예약을 받고 있다.

상근 전시기획자나 직원이 있나?
파트 타임 홍보 담당자와 큐레이터가 있다. 작가 섭외 등은 대부분 대표인 내가 직접 한다. 낮에는 진료를 하고, 진료 시간이 끝나면 작가를 섭외하거나 소개 글을 쓰며 전시 준비를 한다. 작가 섭외나 전시 기획 등을 거의 도맡아 하다 보니 바쁜 건 사실이다.

작가들의 작품 판매도 이루어지나?
작품 판매를 하고는 있는데, 구입을 주저하는 사람이 많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선보인 작품이 잘 판매되지 않으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마음에 드는 작품을 구입하고 일상에서 예술 작품을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어 작가들의 작업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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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개관 당시 3년간은 적자가 나더라도 공간이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갤러리를 연 지 이제 2년 반이 지났는데, 경영 측면에선 적자지만 많은 발전을 한 건 사실이다. 예전보다 갤러리 이름이 더 많이 알려졌고, 방문객은 물론 전시를 하고 싶다고 연락해 오는 작가도 늘었다. 현실의 벽을 어떻게 하면 넘을 수 있을지 계속 고민 중이다.

갤러리를 계속 운영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개인과 사회의 상처를 보듬는 예술의 힘을 전파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는 자긍심이 아닐까. 경영상의 어려움도 있고 전시를 기획하는 것이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이 공간이 누군가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 더 좋은 전시를 선보이고 싶은 욕심이 난다.

앞으로 갤러리를 어떻게 꾸려갈 예정인가?
좋은 작가를 많이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을 통해 평범한 모든 사람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전시를 꾸준히 여는 것이 목표다. 이 공간이 누구나 부담 없이 들러 마음의 평화를 얻어갈 수 있는 편안한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갤러리 운영 시 기억해야 할 것

➀ 뚜렷한 목적 의식이 있어야 한다
갤러리를 운영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철학이다. 갤러리를 왜 열고 싶은지, 어떤 방향으로 꾸려나가고 싶은지에 관한 목적의식과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➁ 창고와 사무실 공간 확보는 필수다
공간 구성 시에는 창고와 함께 전시 작가를 위한 사무실이나 휴식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좋다.

➂ 작가와 충분한 대화를 하라

초대 작가를 섭외할 때에는 반드시 포트폴리오나 전시 작품을 확인하고,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다. 대화를 통해 삶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이 갤러리 운영 철학과 잘 맞는지 검토한다.

ㅣ 덴 매거진 2024년 6월호
에디터 김보미 (jany6993@mcircle.biz)
사진 송승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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