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라렌으로 일본 도심 한복판 운전하기... "이게 되네?" [시승기]

일본 시부야 한복판. 항상 차가 밀리는 도로 한가운데 맥라렌 750S 스파이더 운전석에 앉아 있다. 시선을 즐기기 위해서? 아니다. 슈퍼카로 시내 주행을 하면 얼마나 불편한지, 아니면 의외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번 시승의 발단은 맥라렌 W1 인터뷰를 진행했던 헤더 피처(Heather Fitcher) 프로덕트 매니저의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그녀는 "맥라렌은 매일 즐길 수 있는 차를 만든다. 일반 도로와 트랙 모두 말이다. 소비자에게 친숙하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차를 만드는 것이 우리 목표다. 그것이 제대로 된 차다"라는 말을 했다.

처음에는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슈퍼카'라는 것은 극단적인 것을 추구하는 자동차다. 높은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 뒷좌석은 포기해야 한다. 낮고 넓어야 높은 성능을 받아낼 수 있기 때문에 타고 내리기 불편할 수밖에 없다. 또, 높은 성능만큼 시끄러울 수밖에 없고 연비도 나쁠 수밖에 없다. 그런 슈퍼카를 일상에서도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니!

그렇게 시작된 시승. 맥라렌에서는 750S와 아투라 쿠페를 준비해 줬다. 그리고 이번 시승은 맥라렌 역사상 '가장 느린' 시승이 될 예정이다.

소리 없이 드러내는 존재감, 아투라 쿠페
먼저 탑승한 모델은 아투라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슈퍼카로 개발돼 거리가 가까운 시내 정도는 전기모터만으로 주행할 수 있다. EV 모드 주행거리는 31km. 당장 필자의 왕복 출퇴근 주행거리(29km) 보다 길다.

아투라에 탑승한다. 다양한 슈퍼카를 접했지만, 맥라렌은 시야가 참 좋다. 시트는 바닥에 붙어 있는 것처럼 낮지만, 윈드실드 면적을 최대한 넓혀 전방 시야도 좋은 편이다. 얇게 설계된 A-필러 덕분에 측면 시야도 좋을 뿐만 아니라 적당히 큰 사이드미러도 답답함을 줄여준다.

무엇보다 후방 시야까지 제대로 확보됐다는 점을 칭찬하고 싶다. 사실 슈퍼카에서 후방 시야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미드십 스포츠카 특성상 후방 시야를 확보했다고 해도 형식적인 경우도 많다. 그런데 아투라는 적어도 형식적인 후방 시야 수준은 넘어섰다. 사이드미러나 리어뷰 미러로 보이는 주위 환경이 일반적인 승용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야만 제대로 확보돼도 운전에 대한 부담감이 크게 줄어든다.

전기모터는 95마력과 23.0kgf.m를 발휘한다. 1.5톤의 아투라 쿠페를 굴리기 충분한 힘이다. 가속페달을 완전히 끝까지 밟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 깊숙이 밟아도 엔진이 개입하지 않는다. 모터 토크도 좋은 편이기 때문에 가속페달을 밟는 대로 전기차 특유의 토크감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조용하다는 것이 막히는 도로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해준다. 아무리 듣기 좋은 배기음이라고 해도 달리지 않고 시동 걸린 소리만 계속 들으면 탑승자가 피로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투라는 그런 스트레스 자체를 받을 일이 없다.

스티어링휠이나 페달에서 느껴지는 감각에서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맥라렌 특유의 무거운 스티어링휠에 힘을 실어 밟아야 하는 브레이크 페달 성격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확실히 맥라렌은 일반 스포츠카보다 레이스카를 운전하는 감각을 구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시내에서 못 탈 정도인가? 그것은 또 아니다. 슈퍼카라는 장르 특성상 운전자와 교감하는 부분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운전자와 자동차가 하나 되어 운전을 즐길 수 있다. 무게감이라는 특성이 다른 것일 뿐 운전 자체에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편안한 승차감은 어느 정도 타협을 해야 한다. 푹신한 고급 세단이나 SUV와 전혀 다른 성격을 갖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서스펜션이 단단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탄력성은 있다. 차체를 탄탄하게 지지하면서 노면에서 발생하는 충격을 신경질적이지 않고 어느 정도 걸러낸 후 전달한다.

과속 방지턱이나 언덕에 있는 주차장을 오르내릴 때는 당연히 조심해야 한다. 방심하는 순간 바로 차량 범퍼나 하부를 긁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가장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는데, 차량 앞머리를 들어 올릴 수 있는 프런트 리프트 기능을 이용할 수 있어 어느 정도 해소 가능하다. 작동하는 속도도 꽤 빠른 편이기도 하다.

움직이지 않아도 '포스'는 여전, 750S 스파이더

750S 스파이더로 옮겼다. 실제로 아투라와 큰 차이 나지 않지만, 한 체급 더 큰 차를 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차폭이 더 넓어졌다는 느낌이랄까?

맥라렌만의 시야는 여전히 훌륭하다. 전후좌우 어디를 봐도 막혀 있다는 느낌 없이 모두 다 잘 보이는 시야각으로 운전자를 안심시킨다. 물론 차를 긁으면 큰일 난다는 부담감은 있지만 말이다.

750S로 시내 주행을 시작할 때 중점적으로 확인한 부분은 바로 변속기다. 750마력과 81.6kgf.m의 토크를 만들어내는 엔진의 힘을 변속기가 오롯이 받아내야 하는데, 성능 중심으로 튜닝된 변속기는 시내 주행 때 불편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듀얼클러치 변속기라면 그 부분이 더 부각된다.

하지만 필요 없는 걱정이었다. 가다 서다 하는 환경에서도 750S 스파이더의 듀얼클러치 변속기는 부드럽게 변속을 이어갔다. 울컥거림도 최대한 만들어내지 않고 일반 자동변속기처럼 변속하는 부분에서 세련미가 느껴졌을 정도.

똑똑하기도 하다. 천천히 이동할 때는 기어 단수를 빨리 올려 엔진 회전수를 낮춰줬고, 가속페달을 조금 깊게 밟으면 바로 기어 단수를 내려 언제든 달릴 준비를 마쳤다. 달리다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바로바로 기어 단수를 내려주면서 엔진브레이크와 재가속 준비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터보랙 부분도 확인해 봤다. 750S에 탑재된 V8 4.0리터 트윈터보 엔진은 부스트 압력을 1.3바 이상 쓰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터보차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도심 주행 환경에서 얼마나 답답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답답함이랄 것이 없었다. 먼저 배기량이 4리터로 엔진 자체만으로 넉넉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로 750S 스파이더의 공차중량은 1438kg으로 가볍기 때문에 가속 자체가 너무도 쉽게 이뤄졌다. 제대로 달리는 환경에서 터보랙이 조금 느껴질 뿐 일반 시내 환경에서는 터보랙 없이 부드러운 운전이 가능했다.

아투라를 경험하다가 750S 스파이더로 옮겨타니 불편한 점은 있었다. 750S 스파이더에도 오토스톱 기능이 탑재됐는데, 가다서다가 반복되면서 엔진이 켜지고 꺼지기가 반복되니 슬슬 피로감이 느껴졌다는 점이다. 확실히 도심 주행 때는 아투라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빛을 본다.

엔진이 작동하면 당연히 시끄럽다. 엔진이 등 뒤에 있을 뿐만 아니라 플랫-플레인 크랭크 샤프트 방식을 쓰는 엔진답게 아이들 회전수도 높은 편이다. 슈퍼카 답게 배기 사운드도 강조돼서 음색은 더 크다. 그렇지만 다행히 창문을 닫고 있는 환경에서는 동승자와 편안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숙함이 유지된다. 대신 창문을 내리거나 톱을 열면 시동만 걸려있어도 어지간한 차 가속하는 소리보다 큰 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스펜션의 성격 변화도 큰 편이다. 기본적으로 단단함을 중심으로 하지만 기본 모드에서는 어느 정도 탄력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나름 '승차감이 괜찮다'라고 느낄 수 있다. 대신 스포츠 모드에서는 차체의 흔들림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진다.

일상 이동 수단부터 트랙까지 폭 넓은 활용성을 보여준 맥라렌

아투라와 750S 스파이더를 번갈아 타보니 헤더 피처 프로덕트 매니저가 어떤 부분을 강조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흔히 '맥라렌' 하면 무조건 달려야만 할 것 같은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넓은 폭의 범용성을 갖고 있었다.

물론 이 차를 갖고 캠핑을 즐기거나 마트 장보기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출퇴근부터 시작해서 도심과 도심을 이동하거나 외곽 드라이빙을 즐기는 수준은? 충분히 가능하다.

맥라렌이 정말 출퇴근용 차라는 뜻이 아니다. 꼭 빠르게 달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천천히 주행해도 맥라렌이 추구하는 성격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묵직하지만 정교한 스티어링 감각, 레이스카를 조작하는 듯한 브레이크 감각, 여기에 맥라렌만의 독특한 배기사운드 등 다른 차에서는 느끼기 힘든 매력적인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