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라렌으로 일본 도심 한복판 운전하기... "이게 되네?" [시승기]
이번 시승의 발단은 맥라렌 W1 인터뷰를 진행했던 헤더 피처(Heather Fitcher) 프로덕트 매니저의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그녀는 "맥라렌은 매일 즐길 수 있는 차를 만든다. 일반 도로와 트랙 모두 말이다. 소비자에게 친숙하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차를 만드는 것이 우리 목표다. 그것이 제대로 된 차다"라는 말을 했다.
처음에는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슈퍼카'라는 것은 극단적인 것을 추구하는 자동차다. 높은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 뒷좌석은 포기해야 한다. 낮고 넓어야 높은 성능을 받아낼 수 있기 때문에 타고 내리기 불편할 수밖에 없다. 또, 높은 성능만큼 시끄러울 수밖에 없고 연비도 나쁠 수밖에 없다. 그런 슈퍼카를 일상에서도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니!
그렇게 시작된 시승. 맥라렌에서는 750S와 아투라 쿠페를 준비해 줬다. 그리고 이번 시승은 맥라렌 역사상 '가장 느린' 시승이 될 예정이다.
아투라에 탑승한다. 다양한 슈퍼카를 접했지만, 맥라렌은 시야가 참 좋다. 시트는 바닥에 붙어 있는 것처럼 낮지만, 윈드실드 면적을 최대한 넓혀 전방 시야도 좋은 편이다. 얇게 설계된 A-필러 덕분에 측면 시야도 좋을 뿐만 아니라 적당히 큰 사이드미러도 답답함을 줄여준다.
전기모터는 95마력과 23.0kgf.m를 발휘한다. 1.5톤의 아투라 쿠페를 굴리기 충분한 힘이다. 가속페달을 완전히 끝까지 밟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 깊숙이 밟아도 엔진이 개입하지 않는다. 모터 토크도 좋은 편이기 때문에 가속페달을 밟는 대로 전기차 특유의 토크감도 느낄 수 있다.
스티어링휠이나 페달에서 느껴지는 감각에서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맥라렌 특유의 무거운 스티어링휠에 힘을 실어 밟아야 하는 브레이크 페달 성격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확실히 맥라렌은 일반 스포츠카보다 레이스카를 운전하는 감각을 구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편안한 승차감은 어느 정도 타협을 해야 한다. 푹신한 고급 세단이나 SUV와 전혀 다른 성격을 갖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서스펜션이 단단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탄력성은 있다. 차체를 탄탄하게 지지하면서 노면에서 발생하는 충격을 신경질적이지 않고 어느 정도 걸러낸 후 전달한다.
과속 방지턱이나 언덕에 있는 주차장을 오르내릴 때는 당연히 조심해야 한다. 방심하는 순간 바로 차량 범퍼나 하부를 긁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가장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는데, 차량 앞머리를 들어 올릴 수 있는 프런트 리프트 기능을 이용할 수 있어 어느 정도 해소 가능하다. 작동하는 속도도 꽤 빠른 편이기도 하다.
750S 스파이더로 옮겼다. 실제로 아투라와 큰 차이 나지 않지만, 한 체급 더 큰 차를 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차폭이 더 넓어졌다는 느낌이랄까?
750S로 시내 주행을 시작할 때 중점적으로 확인한 부분은 바로 변속기다. 750마력과 81.6kgf.m의 토크를 만들어내는 엔진의 힘을 변속기가 오롯이 받아내야 하는데, 성능 중심으로 튜닝된 변속기는 시내 주행 때 불편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듀얼클러치 변속기라면 그 부분이 더 부각된다.
하지만 필요 없는 걱정이었다. 가다 서다 하는 환경에서도 750S 스파이더의 듀얼클러치 변속기는 부드럽게 변속을 이어갔다. 울컥거림도 최대한 만들어내지 않고 일반 자동변속기처럼 변속하는 부분에서 세련미가 느껴졌을 정도.
터보랙 부분도 확인해 봤다. 750S에 탑재된 V8 4.0리터 트윈터보 엔진은 부스트 압력을 1.3바 이상 쓰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터보차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도심 주행 환경에서 얼마나 답답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투라를 경험하다가 750S 스파이더로 옮겨타니 불편한 점은 있었다. 750S 스파이더에도 오토스톱 기능이 탑재됐는데, 가다서다가 반복되면서 엔진이 켜지고 꺼지기가 반복되니 슬슬 피로감이 느껴졌다는 점이다. 확실히 도심 주행 때는 아투라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빛을 본다.
서스펜션의 성격 변화도 큰 편이다. 기본적으로 단단함을 중심으로 하지만 기본 모드에서는 어느 정도 탄력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나름 '승차감이 괜찮다'라고 느낄 수 있다. 대신 스포츠 모드에서는 차체의 흔들림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진다.
아투라와 750S 스파이더를 번갈아 타보니 헤더 피처 프로덕트 매니저가 어떤 부분을 강조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흔히 '맥라렌' 하면 무조건 달려야만 할 것 같은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넓은 폭의 범용성을 갖고 있었다.
물론 이 차를 갖고 캠핑을 즐기거나 마트 장보기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출퇴근부터 시작해서 도심과 도심을 이동하거나 외곽 드라이빙을 즐기는 수준은? 충분히 가능하다.
맥라렌이 정말 출퇴근용 차라는 뜻이 아니다. 꼭 빠르게 달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천천히 주행해도 맥라렌이 추구하는 성격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묵직하지만 정교한 스티어링 감각, 레이스카를 조작하는 듯한 브레이크 감각, 여기에 맥라렌만의 독특한 배기사운드 등 다른 차에서는 느끼기 힘든 매력적인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