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 서식지 파괴하며 "상생" 자찬... 황당한 부산시
[박중록(습지와새들의친구 운영위원장)]
▲ 낙동강하구 '백조의 호수' 모습.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201-2호)인 큰고니의 핵심 서식지이다. |
ⓒ 습지와새들의친구 |
백조의 호수와 하늘연못은 동양최대의 철새도래지로, 문화재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179호)으로 지정된 낙동강하구의 내륙부 핵심 서식지다. 백조의 호수는 낙동강 하구의 겨울 대표새인 큰고니(천연기념물 제201-2호,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의 핵심서식지이고, 하늘연못은 보기드문 풍경을 지닌 초지에 발달한 못으로 국제적으로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대모잠자리의 국내 최대급 서식지다.
대모잠자리는 전세계적으로 동아시아에만 서식하는 종으로, 오래된 연못과 부근에 쉴 수 있는 초지가 함께 있는 곳을 서식지로 삼는다. 이웃 일본에서는 장기적으로 멸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된 바 있고, 특히 도시화가 진행된 도쿄에서는 2020년 멸종된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CR(Critically Endangered, 위급)로 등재된 야생에서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종이다.
세계적으로 대모잠자리는 멸종 가능성이 매우 높은 종이며 하늘연못에서의 분포 조사가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고려하면, 이곳은 국내 최대급을 넘어 국제적인 중요성을 갖는 지역일 가능성이 크다.
▲ 국제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대모잠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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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기는 백조의 호수도 마찬가지다. 이곳은 백조라는 말로 우리에게 친숙한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201-2호)인 큰고니의 핵심 서식지다. 대저대교는 서식지 가운데를 관통하여 큰고니가 서식하는 큰 서식지를 작은 서식지 둘로 분리한다. 생태학에서는 이를 서식지 파편화(단편화)라 한다. 우리 주변의 산들이 도로 건설 등으로 파편화되어 호랑이나 표범, 늑대가 사라졌듯이, 큰고니 또한 같은 운명을 따를 수밖에 없다.
큰고니는 날 수 있는 새 중 가장 크고 무거운 편에 속해, 앉고 뜨는데 큰 비행기 마냥 활주로가 필요하다.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이 새가 안정적으로 서식하기 위해서는 교량 간격이 적어도 4km는 유지돼야 한다. 교량이 건설되면 서식지 파편화가 일어나고 큰고니의 안정적인 서식이 불가능해진다.
부산시의 계획대로 된다면, 백조의 호수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환경부도 잘 알고 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선정 이유에서 밝혔듯 낙동강하구지키기전국시민행동(아래시민행동)은 지난 2019년, 부산시가 큰고니 서식지를 훼손하는 대저대교 환경영향평가서를 거짓으로 작성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계기로 60회의 민관 공동조사와 국가 전문검토기관의 평가가 있었고, 이를 종합해 2021년 6월 환경부는 4개의 대안노선을 제시하며 부산시에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할 것을 요청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최적대안노선을 찾자고 시민행동 대표단에 약속하면서 백조의 호수와 하늘연못을 지킬 수 있는 드문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박형준 시장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대안노선 수용을 거부하고 기존 노선안 건설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정권과 환경청장이 바뀌면서 환경부는 2021년 내린 결정을 뒤집고 부산시의 기존노선안 건설 환경영향평가를 올 1월 통과시켰다. 뒤이어 국가유산청 자연유산위원회도 7월 졸속 심사를 거쳐 건설을 승인했다. 자연유산위원회는 소위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학자와 전문가로 구성된다. 학자적 양심에 대한 기대를 했지만, 어림없었다.
환경영향평가가 거짓으로 작성돼 수사가 진행 중인 사실도 모르쇠했다. '이미 10개의 낙동강횡단교량이 있으며 교통서비스 수준도 안정적(LOS D)이다. 인구감소로 2016년 이후 계속 교통량이 줄고 있어 교량건설이 필요없다. 굳이 건설을 하려면 21년 환경부가 만든 대안을 택하면 된다.' 이런 공식적 문제제기와 관련 자료도, 법 규정도 대저대교 환경영향평가와 국가유산청 심의 과정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법도, 학자적 양심도, 최소한의 상식도 없는 깜깜한 어둠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그저 절감할 뿐이었다.
▲ 지난 23일 오전 대저생태공원에서 열린 대저대교 도로건설공사 기공식. |
ⓒ 박형준 부산시장 페이스북 |
또한 "법적 보전지역을 무력화시키는 자치단체와 국가기관의 행태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대저대교 대안 노선에 대해 환경청과 부산시의 수용을 촉구한다"라는 선정 취지를 밝히며 그간의 시민행동의 활동에 큰 위로의 힘을 보태줬다.
그러나 위로의 순간도 잠깐, '이곳만은 지키자' 수상 소식이 전해진 바로 다음날, 부산시는 대저대교 기공식을 거행했다. 23일 백조의 호수 부근에서 열린 대저대교 기공식에는 부산시장과 지역 정치인들, 주요 건설회사 관계자들이 모였다. 기공식에 이르기까지 핵심 역할을 한 주역들의 소개와 인사가 이어졌다. 국가유산청장과 환경부차관의 노력에도 감사하다는 인사가 있었고, 참석자들은 특히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치켜세웠다.
지속가능한 개발의 모범사례가 될 수 있었던 대안노선을 거부하고 기존노선안을 밀어붙인 주역들이 오히려 "사람과 환경이 공존·상생하는 지속가능한 개발의 표본"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늘어놨다. 이들이 과연 지속가능한 개발의 표본을 만들었는지, 난개발로 기후위기를 더욱 부추기며 자기 이익만 도모한 자들인지는 곧 백조의 호수와 하늘연못 대모잠자리의 운명과 함께 드러날 것이다.
시민행동은 지난 6년간 131일간의 환경청앞 농성, 83일간의 1인 시위, 60회에 육박하는 기자회견과 80회에 가까운 조사, 34회의 집회와 토론회 등의 행사를 개최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의 각종 행사를 개최하면서 낙동강하구 문화재보호구역의 핵심 자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마지막까지 백조의 호수와 하늘연못을 지키려 몸부림칠 것이다.
▲ 멸종위기에 처한 대모잠자리가 서식하는 낙동강하구 '하늘연못'. 낙동강하구지키기전국시민행동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 습지와새들의친구 |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습지와새들의친구 운영위원장, 낙동강하구지키기전국시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입니다. 이 글은 습지와새들의친구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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