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준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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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누구는 몸은 튼튼한데 멘탈이 약해서 탈이야. 이런 이야기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시죠? 흔히들 이렇게 신체와 정신을 구분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정신과 신체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정신건강과 신체질환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서 정신건강 전문가와 함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Q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정신질환만 다루는 줄 알았는데요, 신체질환도 정신건강의학에서 중요한가요?
A 우울증, 공황장애, 조울증, 강박장애 등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어떤 한 가지 원인이 아닌 신체적, 유전적, 사회적, 심리적 요인들이 서로 복잡하게 상호작용한 결과로 발생합니다. 반대로 내과나 외과적 질환을 가진 분들에서도 정신질환이 잘 발생하고 치료나 경과에 큰 영향을 미치기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에 협진을 요청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정신과 신체의 관계를 다루고 연구하는 정신신체의학이라는 학문이 발전하게 됐습니다. 미국정신의학회에서는 세부 전문 분야로도 승인을 받았고 한국정신신체의학회에서는 전문가 과정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Q 정신건강의 영향을 많이 받는 신체질환으로는 어떤 병이 있나요?
A 정신질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대표적인 신체질환으로는 심혈관질환을 들 수 있는데, 서로 양방향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1980년에 연구를 통해 공격적이고 참을성이 없으며 목표 지향적인 성격이 강한 사람들은 관상동맥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것이 밝혀졌고 이런 성격을 type A 성격이라고 부릅니다. 또, 우울증이 있으면 심근경색과 같은 허혈성 심장질환에 걸릴 위험이 1.5배 높습니다. 반대로 관상동맥질환을 갖고 계는 분들의 약 15~20% 정도는 우울증을 갖고 계신데 이렇게 우울증을 갖고 계시면 관상동맥질환의 예후가 좋지 않아서 사망률이 더 높기 때문에 반드시 심장질환과 별개로 우울증에 대한 치료도 받으시는 게 좋습니다.
Q 우울증 진단받을 정도로 심하지 않은, 예를 들면 외로운 사람들도 심장질환에 걸릴 위험이 더 높은가요?
A 그렇습니다. 심근경색, 부정맥, 심부전과 같은 중증의 심장질환이 있는 분들의 예후에 대한 연구 결과, 필요할 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분들은 사망 위험이 거의 2배나 높았습니다. 혹시 외롭게 사는 사람은 주변에서 담배를 끊으라거나 운동을 하라고 말해 줄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운동과 흡연, 식습관 같은 요인을 배제하고 분석을 한 결과로도 외로움은 사망률을 높이는 요인이었습니다. 외로움 자체가 하루에 담배를 15개피씩 피우는 것만큼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라고 합니다.
Q 외로움 자체가 건강에 해롭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그런데 외로우면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서 건강을 해치는 건가요?
A 우리 몸에는 의식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자율신경계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교감신경계는 우리가 감정적으로 흥분하거나 긴장하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근육으로 피를 많이 보내는데 이것을 투쟁-도피 반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외로움이 이 교감신경계를 활성화시키고 장기간 지속되면 신체 여러 기관에 해를 끼칩니다. 우리의 뇌는 외로울 때 주변과 타인을 더 위험하다고 인식합니다. 중립적인 표정을 위협적으로 인식하거나 차가운 표정을 적대적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외로울 때는 세상이 위협적으로 느껴져서 투쟁-도피모드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Q 사람의 뇌는 왜 외로울 때 세상을 위협적으로 느끼는 것일까요?
A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인류가 오랫동안 서로 의지하며 지구 상에서 생존해 왔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기원전 25만년경부터 인류의 역사로 본다면 전체의 95프로 이상이 수렵채집 사회였습니다. 인간이 자연재해와 굶주림,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으려면 타인과 함께 해야만 했고 혼자 있으면 죽을 확률이 높았을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그들의 후손이고 진화는 매우 느린 속도로 일어납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고 혼자서 모든 위험을 통제해야 한다면 계속해서 경계를 해야 하고 장시간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입니다. 결국 장기간의 스트레스가 심혈관 질환의 예후를 나쁘게 만든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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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외로움과 반대로, 끈끈한 관계가 건강에 이롭다는 증거도 있나요?
A 혹시 토끼효과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1978년에 한 연구팀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와 심장 건강 사이의 연관성을 입증하기 위해 동물실험을 했습니다. 토끼들에게 몇 달간 고지방 사료를 먹였더니 모두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졌는데 그중 일부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도 혈관에 지방이 쌓이지 않았습니다. 그 토끼들은 모두 한 연구원이 돌본 토끼들이었는데 이 연구원이 먹이를 줄 때 말도 걸고 껴안고 쓰다듬어 줬다고 합니다. 후속연구에서도 같은 결과가 재현됐는데요, 결국 애정을 받은 것이 토끼들의 혈관을 보호해 줬던 것입니다.
Q 혹시 사람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있나요?
A 네, 있습니다. 1960년대에 미국 펜실베니아에 로제토(Roseto)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작은 마을이 장수 마을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로제토는 인근 마을들에 비해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률이 절반 이하로 낮았기 때문입니다. 로제토 사람들이 주변 마을 사람들보다 건강한 비결을 찾기 위해 연구를 했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심근경색의 위험인자로 잘 알려진 고지방 식이, 음주, 흡연, 과체중 등 로제토 사람들은 오히려 건강하지 않은 생활습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오랜 연구 끝에 결국 사회문화적인 요인이 로제토 사람들의 건강 비결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마을은 95퍼센트 이상이 이탈리아 이민자였는데 새로 이민 온 사람들을 돕는 문화가 발달해 있었다고 합니다. 또, 이웃들과 잘 어울렸고 많은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약 40년 가까이 로제토 효과가 이어졌는데 그 이후로는 미국 다른 지역처럼 개인적인 문화로 바뀌면서 사망률에도 차이가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타인에 대한 신뢰가 로제토 사람들의 심장질환을 예방해 준 비결이었던 것이죠.
삼성양재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준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