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아버지 간호한 좌파딸... 우리 가족도 '결의' 했습니다
[장순심 기자]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부터는 대화의 기회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서로의 마음을 터놓는 대화의 기회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각자 모임으로 인해 귀가가 늦는 날은 일상적인 인사조차도 실종된다. 명목상 한 집에 사는 것일 뿐 생활은 사실상 독립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딸과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근황 이야기를 하다 어쩌다 순식간에 정치적인 이야기로 화제가 넘어갔다. 이전 같았으면 정치에 혐오와 염증을 드러내며 정색을 해도 몇 번은 했을 텐데, 그날은 엄마 아빠의 정치 이야기가 하루이틀도 아니지 않냐며 괜찮다고 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너그럽게 정치적 견해를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대화를 시작한 의도와는 다르게 그놈의 정치 때문에 서로의 사적인 대화는 시작도 못하고 그날의 대화는 끝이 났다.
완벽하게 대척점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부부와 아이들은 정치적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다. 몇 번의 대화 경험을 통해 적어도 아이들과의 정치적 견해에 있어 '나는 우리 세대가 가지고 있는 극단적인 감정들을 경계하'는 편이기도 하다. 아무 말 대잔치로 혹여 대화가 차단되거나 감정을 원색적으로 드러내는 과잉이 우리 가족 사이에도 벌어질까 두려워서다.
▲ 책표지 |
ⓒ 메디치미디어 |
이 책은 70대 우파 아버지를 간병하게 된 40대 좌파 딸의 웃음과 감동의 돌봄 에세이이다. 이 책은 '정치 갈등'보다는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국가와 사회가 맡아야 할 노인, 환자, 요양 관련 복지를 온전하게 가족의 희생과 헌신에 맡겨 버린 의료 현실에 대한 체험을 말한다.
나 또한 남편이 암수술을 한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당시 꽤 진행된 병증에도 불구하고 수술과 치료의 과정은 큰 충격 없이 지나갔다. 물론 지금도 추적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남편 수술 이후로 그 짧은 기간 동안 우리 가족에게는 친정 오빠의 발병과 죽음, 두 시누이의 암수술이 있었다. 현재는 시어머니의 암수술에 이은 방사선 치료가 진행 중이다.
▲ 의료대란으로 인해 전국 응급실 운영이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12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의료진 인력부족 관련 안내문이 띄워져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은 이달 9∼10일 협의회에 참여하는 전국 수련병원 중 53곳의 응급실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급실 의사가 42% 급감했으며 이에 따라 병원 7곳은 부분 폐쇄를 고려하고 있다고 12일 밝혔다. 2024.9.12 |
ⓒ 연합뉴스 |
문제는 이 병동이란 곳이 원칙적으로 보호자가 있으면 안 되니 혼잡하지 않은 2인 병실에 입원하는 게 좋겠단다. 그곳엔 환자용 침상이 둘, 보호자를 위한 간이 침상은 고사하고 의자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작 비어있는 다른 침대에는 보호자가 눕거나 기대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간호사는 엄중하게 말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환자의 돌봄과 관련해서 가족들은 어떤 안내도 받지 못했다. 단지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는 말뿐이었는데, 우리에게 엄격한 얼굴로 설명했던 간호사들은 그날 저녁에 모두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전문적인 분야일수록 그 분야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전문 지식이 없는 데다 쉽게 알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누구나 치료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우선한다면, 치료 받는 대상을 위해서 설계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소외가 최소화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겪고 있는 이 구조는 환자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해 움직이도록 설계된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불필요한 것들을 줄이면,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책 2부 '보호 받지 못하는 환자의 권리' 중)
이후로도 병원에 갈 때마다 늘 변수가 생겼다. 예약된 검사와 치료 시간도 널뛰기를 하듯 변경됐고, 오래 기다리는 건 당연했다. 오전 치료가 오후로 변경되는 것도 아무런 예고 없이 진행되었으며 오전 퇴원 예정이었던 것이 오후 4시 이후 퇴원이 가능한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이게 의료대란 때문인지 원래 병원의 시스템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 과정에 있어 환자나 보호자가 우선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아버지의 의료비와 관련해 고민하며 느끼는 문제는 환자를 둔 가족이라면 모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의료비가 '공평할 수 있다는 착각'은 정말 착각이다. 공평이란 모두가 같은 마음일 때 가능할 것이다.
마음의 차이가 있는 사람에게 가장 얘기하기 싫고 불편한 것이 돈 이야기이면서, 그럼에도 가장 절실한 것이 또 돈 이야기다. 간병비, 병원비, 그 밖의 일일이 언급하기도 자잘한 비용들은 거의 전부 돈과 연결되며, 그 탓에 사람을 옹졸하게 만들고는 한다.
추석 때 온 가족이 한 약속, '절대 아프면 안 된다'는 것
병도 무섭고 병원도 무섭고 병원비는 더 무서운 세상이 아닐 수 없다.
▲ 정부 "경증환자,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가면 본인부담 늘린다" 정부가 중증·응급환자의 진료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장 의료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경증 환자를 지역 병의원으로 분산하는 대책을 발표한 8월 22일 오후 환자와 보호자가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실로 들어가고 있다. |
ⓒ 연합뉴스 |
한국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 보장 제도의 대부분은 65세를 시작 연령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노인들이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노인의 시작 연령은 이보다 높은 70세로 인식한다고 한다. 이러한 나이나 특별한 병증과는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노인장애'는 이어지고 있다.
'노인장애'라는 말이 있다. 나이가 들면 그 자체로 장애를 가지게 된다는 말이다. 나이가 들면 눈이 침침해지고, 귀가 어두워지고, 행동이 둔해지고, 미각이 둔감해진다. 자주 사레에 걸리다 삼킴장애를 겪기도 하고, 배뇨장애도 나타난다. 수면장애는 너무 흔한 일이다. 언어장애와 인지장애가 차차 심해지고, 관절이나 척추, 근육이 서서히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면서 거동장애를 겪기도 한다. 병에 걸리지 않아도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겪는 문제다. 누구나 시간 속에서 늙어간다. 내가 늙어 겪게 될 자연스러운 모습을 미리 혐오하지는 않았으면 한다.(책 2부 'Moving is Life' 중)
초고령사회(Super-aged Society)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7월에 65세 이상 인구가 천만 명(19.51%)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올해 말에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 세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저자의 아버지와 마찬가지의 삶을 살아왔다. '노년의 삶이 어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있었겠지만 이렇게 일찍 은퇴해 집으로 돌아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고 더구나 죽음은 '상상해보지 않은 영역'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 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도 부족했다. 그런 상태로 노년이 되어가고 있다.
아버지의 간병 일기를 쓰며, 저자는 책에서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이 선진국 어느 나라보다도 좋은 것 같다는 말을 한다. 다른 나라의 사람에게 자랑으로 말할 수 있을 만큼 한국 의료보험은 체계적이고 국가 차원의 시스템은 모두가 감탄할 만하다고 평한다.
그런데 그래서 최근 갑작스러운 의사 정원 확대로 인한 파업과 전문의들의 이탈, 응급 의료 붕괴에 이어 의료 민영화 얘기까지 심심찮게 등장하는 상황은 더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아마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시스템을 이미 경험해 보았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의료 개혁'이라는 게 안정적인 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잘 운영되는 시스템을 보완하고 채우는 개혁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우파 아버지도 부탁하고 교통사고로 실려오는 20대 청년도 부탁하고, 곧 태어나는 신생아와 '노인장애'가 시작된 좌파 부부도 의탁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고통에는, 사람이 아픈 데는 좌우도 이념도 구분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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