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명령 거부한 美장군…대한민국 군인, 헌법 1조 항상 새겨야 [엄효식이 소리내다]
부당 명령 따르면 책임 못 면해
군내 헌법 준수 교육 강화해야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에서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군인의 모습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만일 내가 저 자리에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수없이 되뇐다. 군 생활 중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는데, 1987년 6월 29일도 그런 날이었다.
소위로 임관하여 소대장으로 근무한 부대가 강원도의 특공연대였다. 수색과 정찰, 매복 작전 등을 수행하던 87년 4월 긴급 명령이 도착했다. 전국으로 확산하는 시위 지역에 투입될 수 있으니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야산에 있는 참나무로 진압봉을 만들고, 시위 진압 훈련을 반복했다. 후방 소식을 알 수 있는 것은 라디오밖에 없었는데, 들려오는 뉴스는 심각했다. ‘제발 안 갔으면 좋겠다’는 게 공통된 반응이었다. 누군가 “소대장님 어떻게 되는 겁니까”라고 물어왔지만 답변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6월 중순, 강원도의 한 대학교로 이동할 것이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그곳에서 우리 부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중대 본부 천막에서 갑자기 함성이 들려왔다. 6·29 선언이 나오고 출동 계획은 취소됐기 때문이다. 그때 부대가 투입됐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느 행로를 가고 있을까.
미 합참의장이 지켰던 헌법적 가치
지난해 9월 미군 내 1인자인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전역했다. 밀리 대장은 2019년 10월 육군참모총장 재직 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임기 4년의 합참의장에 취임했다. 2020년 5~6월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며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M)’를 외치는 시위대가 백악관 주변까지 몰려들자 트럼프 대통령은 군대 출동을 명령했다. 하지만 밀리 대장은 자신을 합참의장으로 발탁한 대통령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미군 지휘관들에게 지휘 서신을 보내 ‘미군의 임무는 대통령 일방적 지시에 복종하는 게 아니라 수정헌법의 가치(종교·언론·청원·출판·집회의 자유)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의 지휘 서신 일부를 보자.
“다양한 인종, 피부색, 신념으로 구성된 합동군의 일원으로서 여러분은 우리 헌법의 이상을 구현해야 합니다. 우리 군의 모든 지휘관과 장병은 우리가 국가의 가치를 수호하고, 항상 국가의 법과 우리만의 높은 행동 기준에 일치하도록 작전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

지난 12월 7일은 검찰의 수사를 받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6주기였다. 마지막 순간 ‘모든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나에게’라고 하면서 부하들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지만, 상부 지시에 따라 민간인 사찰을 한 부하들은 대부분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렇다면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가. 군형법 제47조는 ‘명령 위반’ 관련, 정당한 명령 또는 규칙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이를 위반하거나 준수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정당한 명령’이라는 문구는 장병들이 스스로 판단하기에 애매한 측면이 있다.
중요한 순간에 머뭇거림으로써 임무 수행을 망칠 수 있다. 명령받을 때마다 법적인 유불리를 고민하느라 시간을 허비해서는 정상적 작전을 수행할 수 없다. 또 모든 군인이 법률 참모를 두거나 개인 변호사와 계약을 하고 군 생활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쟁터는 그렇게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 비상식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적군을 향해 사격을 지시하는 것은 살인을 의미하고, 죽을 수도 있는데 부하들에게 목표물을 향해 전진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개인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정당한 명령에 대한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어려운 법적 용어를 따지거나 평가할 생각은 없다. 다만 상관의 명령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법적 절차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군인들도 알아야 한다. 불법적인 계엄군 출동 명령을 수명한 군인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민주공화국이란 헌법의 가치 지켜야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헌법이다.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헌법 준수를 맹세하는 것처럼, 장교는 임관 시 “나는 대한민국의 장교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헌법과 법규를 준수하며 부여된 직책과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외친다. 부사관이나 병사의 선서에서도 헌법 준수는 공통으로 포함되어 있는데, 군복을 입고 있는 누구나 반드시 간직해야 할 소명이다. 그러나 임관 이후 헌법에 대한 교육을 받거나 시대적 의미를 공유했던 경험은 별로 없다. 제식 훈련보다 먼저 교육받고 가슴에 새겨야 할 과목이 헌법이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천명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문장이 이어진다. 군인들이 명령의 정당성에 대한 판단이 어려울 경우, 헌법 1조를 기준으로 삼는 게 바람직하다.
12월 3일은 대한민국 국군, 군인들에게 치욕의 날이었지만, 거기에서 멈출 수 없다. 군대 없는 국가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믿음직한 군대로 일어서야 한다. 이번을 계기로 장군, 장교와 부사관을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헌법 교육이 이뤄지길 소망한다. 군도 거듭나야 한다. 국민께서도 잘못은 비판하되, 헌법을 준수하는 군이 되려는 노력에 대해선 따뜻한 마음으로 성원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엄효식 전 합참 공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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