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강이 참고한 4.3-5.18 기록집에 숨겨진 힘
[심규상 대전충청 기자]
▲ 한강 작가,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책들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진열되어 있다. 시민들이 추가로 진열된 소설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를 구입하고 있다. |
ⓒ 이정민 |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알려진 이후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실제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탄생시키기 위해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 등을, <작별하지 않는다>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4.3과 여성, 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 등을 참고했다.
마을이 사라지면 역사가 사라진다, 기록해야 하는 이유
박찬승 교수는 <마을로 간 한국전쟁>(돌베개, 2010)은 문헌조사와 구술 채록을 통해 한국전쟁기 지역의 마을들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의 배경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혼돈의 지역사회>(2023, 한양대학교출판부) 또한 오랫동안 지역사와 마을사를 미시적으로 접근해 삶의 역사로 재해석하는 학문적 성취를 남겼다.
그는 구술 채록을 중심으로 마을사를 연구하게 된 배경에 대해 "(1990년대) 목포대에 있을 때부터 수백 년 역사를 담고 있는 마을이 사라지면 역사가 사라진다는 생각에, 사라지기 전에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역사는 문헌으로 된 사료가 별로 없어 관련된 분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이런 구술이 바탕이 돼 책을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도 이런 미시적인 지역사와 마을사 연구가 축적돼 나왔다고 생각한다"며 "마을지 편찬부터 시작을 해서 지역사 자료들을 좀 더 축적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박찬승 한양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
ⓒ 한양대학교 역사관 유튜브 갈무리 |
"책을 보면 한강 작가가 5.18 연구소나 4.3 연구소 이런 데를 방문해 자료를 구했다는 얘기가 있다. 5.18 같은 경우는 이제 '광주 민중항쟁 사료전집'이라는 책과 4.3 관련해서는 4.3과 여성 관련 자료집 이야기가 나오더라. 한강 작가 스스로 당시 관계자들 인터뷰는 트라우마 같은 것을 또 건들기 싫어서 하지 않았다고 했고, 기왕에 나온 자료집들을 많이 참고했다고 돼 있어서 그렇게 판단한 거다."
- 오랫동안 지역사, 마을사 연구를 해 오신 입장에서 구술채록을 통한 지역사, 마을사 연구가 왜 중요하다고 보나?
"우리 역사에 거시사도 있지만 미시사도 있다. 서양에서는 미시사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이 되고 있다. 대개 미시사는 마을 단위로 해서 진행이 된다. 또 좋은 연구들이 많이 나왔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결국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도 이런 미시적인 지역사와 마을사 연구가 축적돼 나왔다는 점에서 마을지 편찬부터 시작을 해서 지역사 자료들을 축적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래야 미시사 관련한 좀 더 깊고 좋은 연구 결과가 나올 수 있다."
- 사학자이면서도 구술 채록을 특히 많이한 이유가 궁금하다.
"지역사는 문헌으로 된 사료가 별로 없어 연구자료가 굉장히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돌아다니면서 관련된 분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1990년대부터 전남 목포대하고 충남대학에 있을 때 주로 많이 다녔다. 인류학자들은 주로 생애사를 채록하는 식인데 저는 특정 사건과 관련한 증언을 많이 들었다. 이런 구술들이 바탕이 돼 책을 쓸 수 있었다."
- 목포대와 충남대는 얼마나 계셨나?
"목포대에 11년 있었고, 충남대에 3년 반 있었다. 특히 충남대에 있을 때 마을지 편찬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당시 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사업이었다. 도중 학교를 옮기게 돼 사회학과의 다른 교수께서 이어받아 완수했다. 마을지를 약 20권 정도 만들었다."
- 마을지 편찬 사업을 시작했던 이유는?
"전남 지역에서도 그런 걸 느꼈는데 점점 농촌이 공동화되고 피폐화되는 상황으로 가고 있어서 그게 참 안타까웠다. 수백 년 오랜 역사를 담고 있는 마을이 사라지면 역사가 사라지는 거다. 사라지기 전에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마을 중에서도 오래된 마을, 중요한 역사를 지닌 마을을 선정해서 그때 20개 마을의 편찬 사업을 했다."
▲ 충남대학교 마을연구단이 펴낸 '충남 지역 마을지 총서' 당진 합덕마을 편 표지. |
ⓒ (주)대원사 |
"목포대에 있을 때 도서문화연구소라고 있었는데 함께 마을을 공동 조사를 했다. 공동으로 진도에 들어가서 조사하다 보니까 전쟁당시 사건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를 하면서 마을 단위로 할 필요를 느꼈다. 당시 윤택림 교수, 김경학 교수(전남대)도 마을단위 연구를 하고 계셔서 그걸 보고 많이 배웠다."
- 마을의 전쟁사까지 연구한 게 특이하다.
" 조사를 한 마을들이 처음에는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과 관련된 마을이었다. 일제가강점기 때를 조사하다 보니 사건이 한국전쟁까지 이어졌다. 전쟁 때 큰 피해가 있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좀 집중적으로 더 조사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 최근에는 <혼돈의 지역사회>(2023.11. 발간)를 통해 문헌자료와 신문자료, 현지 조사, 구술 채록 등을 통해 전남 5곳 지역사회 변동을 두 권의 저서에 꼼꼼하게 정리·분석했다. 50여 년 세월 동안 특정 지역사회의 흐름과 지역 내 중심 세력이 어떻게 바뀌어 갔는가를 분석했다는 점이 무척 새로웠다. 또 연구자료를 보면 현황도 기록돼 있다.
"한 말부터 한국전쟁까지 그러니까 약 50~60년 정도 기간이다. 목포대에 있을 때 조사한 마을사 구술 자료가 풍부해 쓸 수 있었다. (나는) 과거 얘기만이 아닌 지금의 해당 마을의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서도 기록한다. 예를 들면 마을의 여러 조직을 다 조사하고 정리를 한 거다."
- 지역사, 마을사 연구 관련 아쉬운 점이나 바람이 있다면?
"요즘 지자체와 지역문화원 중심으로 그나마 지역사 조사연구를 많이 하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알기로는 제주도가 마을지 편찬 사업이 제일 활발했다. 2000년대 전후해서 팀을 짜서 마을마다 편찬했다. 한강 작가가 그 마을지를 봤는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제주도에서 그런 작업을 쭉 해온 건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경우에도 성북구 등에서 마을사 조사기록을 한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지역의 경우 모든 마을을 이렇게 조사 연구한 곳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인류학 하는 분들은 구술 채록에 관심을 갖고 한다. 역사를 연구하는 분들도 지역사, 마을사에 많은 관심을 두고 좀 더 많은 연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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