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 "방시혁 심기 거슬렀다고 공개처형…영화 JSA 떠올랐다" [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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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
K팝의 마녀인가, 풍운아인가. 민희진 어도어 전 대표는 지금 K팝에서 가장 논쟁적 인물이다. 2022년 민 전 대표가 제작한 뉴진스가 데뷔와 동시에 정상에 오르며 그녀는 일약 K팝을 대표하는 스타 제작자로 떠올랐다. 평사원에서 대표로 승승장구한 그녀는 K팝의 블루칩이라는 찬사도 받았다. 그랬던 그녀는 자신이 키운 어도어의 대표이사에서 해임됐고, 이제 어도어의 경영권을 놓고 하이브와 전쟁 중이다. 그녀가 뉴진스를 방패로 세워 잇속을 차리려 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녀의 진심은 뭘까.
전쟁의 시작은 지난 4월 22일. 하이브가 내부감사 결과 민희진 전 대표를 비롯한 어도어 경영진이 하이브에서 독립해 어도어 경영권을 탈취하는 방안을 시도했다고 발표하면서다. 민 전 대표는 이후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반박했고 양측은 법적 대결로 돌입했다.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지난 11일 뉴진스의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서였다. 뉴진스 멤버 민지는 "하이브는 25일까지 민 전 대표님을 복귀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어도어는 이날 이사회를 열어 민 전 대표의 사내이사 임기 연장을 추진하는 절충안을 내놨지만, 민 전 대표는 "대표이사 복귀"를 요구하며 일축했다. 도리어 하이브 측의 의도적인 ‘뉴진스 죽이기’ 의혹까지 추가로 떠오르며 양측의 전선은 더욱 격화됐다. 지난 14일과 25일 민 대표를 서울 마포구의 작업실에서 두 차례 만나 그녀의 입장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뉴진스가 최종시한으로 제시한 25일이 됐지만, 하이브에서는 답이 없다. 이후 계획은 독립인가?
“뉴진스도, 부모들도, 나도 지속적인 괴롭힘에 시달려왔지만, 그동안 우린 단 한번도 하이브를 나가겠다고 한 적이 없다. 지속적으로 제발 우리에게 관심을 끊고,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두라고 했을 뿐이다. 하이브는 4월 22일 불법 감사 시작부터 허위사실을 기반으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내가 쉽지 않은 싸움을 왜 지속하고 있으며 또 가처분 신청은 굳이 왜 했겠나?”
Q : 8월 어도어가 이사회를 열어 주주간 계약해지를 통보하고 대표이사를 교체했다. 어도어 측은 “민희진 전 대표가 희망한 날짜였고,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고 했다.
“협의된 안건이 아니다. 이사회 불과 3일 전에 통보 받았다. 출장이 있어 이사회 일정을 변경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됐다. 화상으로 참석해 해임안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프로듀싱 업무를 맡기겠다고 일방 통보하고 의결이 강행됐다. 이사회는 나를 포함해 5명으로, 하이브 측이 4인이기 때문에 막을 수가 없었다.”
Q : 대표이사 해임 사유가 뭔가
“납득할 뚜렷한 사유가 없었다. 상호 신뢰관계에 문제가 생겼다는 지점을 강조하더라. 하이브의 최초 투자비는 160억원이다. 어도어는 2022년 뉴진스가 데뷔한 뒤 2023년 1분기에 흑자전환했다. 2023년말 당기순익은 265억원으로 투자금을 넘어섰고, 뉴진스라는 브랜드로 회사에 무형의 가치를 남겼다. 하이브 산하 레이블 중 가장 성장세가 컸다. 그럼에도 하이브는 현재 업계 경험이 없는 인사를 새 대표로 세우고 이사진을 구성했다. 무엇보다 내가 하이브(당시 빅히트)에 합류할 당시 방시혁 의장이 먼저 제안하고 약속했던 ‘민희진 레이블’에 대한 독립성 보장 내용과도 전혀 다르다. 이는 당시 카카오톡 대화 기록으로도 남아 있다.”
하이브와 민 전 대표가 맺은 주주간 계약에서는 2026년 11월까지 대표이사 임기가 보장되고, 이후 민 전 대표는 자신이 보유한 어도어 주식의 75%를 하이브에 매각하는 풋옵션(주식매도청구권)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하이브는 지난달 27일 민 전 대표를 대표이사에서 해임하면서 양측 간 체결한 주주간계약이 더이상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Q : 하이브는 민 전 대표가 경영권 찬탈을 시도했다고 주장한다.
“하이브가 법원에 제출한 소장엔 ‘찬탈’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다. 법원에는 차마 제출할 수 없는 여론 호도용 감정적 용어다. 난 8월 27일까지 어도어의 대표이사였다. 경영권을 탈취한다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그들은 허구의 소설로 여론전부터 시작했다.”
Q : 하이브와 갈등을 벌이는 것이 수백 억원대에 달하는 풋옵션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돈이 목적이라면 이렇게 괴롭고 지리한 싸움을 감당해야 할 이유가 없다. 애초에 하이브의 행태에 이의 제기하지 않고 조용히 입 다물고 있었다면 수령할 수 있는 금액이 상당했다. 5월 나를 해임하려 했던 임시주총에 대한 가처분 승소 이후 하이브로부터 돈을 줄테니 받고 나가라는 협상안이 변호사를 통해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돈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거절했다.”
민 전 대표는 하이브의 또 다른 레이블 빌리프랩에서 지난해 데뷔한 걸그룹 아일릿이 뉴진스의 콘셉트, 이미지, 콘텐츠, 홍보 등 제작포뮬러 등을 카피했다고 문제를 수 차례 제기했다고 한다. 민 전 대표는 그것이 하이브가 자신을 공격한 이유라고 주장했다.
Q : 이번 사태가 벌어진 이유가 뭐라고 보나
“사태의 본질은 회사 발전이나 시스템 개선 같은 거창한 이유가 아니다. 자회사 사장이 모 회사의 심기를 대놓고 거스른데 대한 공개 처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블랙 코미디 같은 사건을 겪으면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떠올랐다. 겉으로는 엄중하고 거창한 분단의 참극으로 비춰졌지만 실상은 지극히 인간적 갈등에서 비롯된 우발적 감정으로 빚어진 촌극. 지금 이 상황도 그렇다.”
Q : 어도어를 하이브에서 독립시키려 했다고 한다. 배임이라는 혐의도 제기했다.
“하이브가 가진 어도어 지분이 80%고, 내가 가진 지분은 17.8%다. 어떻게 독립을 시도하나. 하이브의 이익과 어도어의 이익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월급 사장이 계약 기간 동안 개인의 이득을 안전히 보장 받기 위해서, 모회사의 눈치를 보며 뉴진스가 받는 불이익에 대해 항의하고 개선하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어도어에 대한 배임 아닌가.”
Q : 첫 번째 기자회견에서 발언과 패션 등이 모두 화제가 됐다. 전략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나는 외워서 말하는 타입이 아니다. 짜여진 각본이라면 프로듀서가 아니라 연기자를 했을 거다. 기자회견은 당일 오전 내가 결정했다. 변호사들도 처음엔 반대했다.”
이런 가운데 25일 한 매체는 하이브 측이 지난 7월 뉴진스의 일본 활동 관련 기사에 대해 음반 판매량을 정정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Q : 하이브에서 뉴진스의 성과를 낮춰 써달라는 식으로 언론에 요구했다는 의혹이 나와 논란이 커졌다.
“해당 기자에게 뉴진스 ‘슈퍼내추럴’의 일본 판매량을 5만장이라고 왜곡했다. 기사 작성 다음날인 7월 18일 일본에서 10만장 이상 판매고를 올린 아티스트에게 수여되는 골드 레코드 인증도 받았는데, 어떻게 그 전날 5만장 뿐이었겠나. 이런 건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다 말할 수 없지만, 한 예를 들자면, 최근 빌보드 컬럼니스트 제프 벤자민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하이브의 PR 대행인 TAG라는 회사에서 나에 대한 비방이 가득한 자료를 보내줬는데, 내용이 너무 편향적이고 뭔가 이상하여, 나에게 사실 확인을 하고 싶다고 했다. 겉으로는 프로듀서를 5년으로 제안했다며 홍보하면서 뒤로는 해외 매체에까지 비방 자료를 뿌리는 회사를 어느 누가 믿을 수 있겠나.”
Q : 하이브 측은 “당시 미디어가 밀착 취재할 수 있도록 인력을 현지 파견하는 등 뉴진스를 적극 지원했다”며 반박했다.
“이런 말장난이 정말 지겹다. 하이브 측이 한 일은 산하 레이블에 일괄 적용되는 프레스석 오픈에 관련한 내용이다. 레이블(어도어)에서 수수료를 내고 사용하는 서비스인데, 생색을 내며 지원했다고 표현하나? 게다가 당시 한국과 일본의 취재 기자들과 별도로 인사하는 자리는 내가 요청해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최초 요청 사항은 뉴진스와 내가 함께 하는 인사자리였다. 그런데 하이브 PR에서는 선례가 없다, 동선이 어렵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그래서 나 혼자 기자석을 돌며 인사했다. 일본까지 취재하러 와준 기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Q :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뉴진스는) 7년 짜리 큰 그림이 있다, 매년 매 앨범으로 놀라게 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이번 갈등으로 차질은 없나?
“큰 차질이 있다. 한국팬을 위해 기획했던 깜짝 팬미팅을 진행하던 중에 해임되었다. 부대표들도 하루아침에 업무에서 배제되고 차단됐다. 다음 음반 작업도 중단된 상태다. 너무나 안타깝다. 이것 또한 하이브가 뉴진스에 대해 벌인 업무방해다.”
Q : 뉴진스 멤버들이 복귀를 강력히 요구하는 등 관계가 각별한 것 같다.
“제작자로서 어린 아티스트들을 어떤 방식으로 리드하는 것이 그들의 인생을 위해 좋을지 고민이 컸다. 그런 고민에서 나온 뉴진스는 내 머리와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나 마찬가지다. 좋은 것은 다 해주고 싶은 마음 외에도, 제작자로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대안적 관계를 제시하고 싶은 바람도 컸다. 이 도전과 시도를 쉽게 포기하기 싫다.”
민 전 대표는 SM엔터테인먼트에 그래픽 아티스트로 입사해 이사까지 승진하며 엔터업계의 ‘흙수저 신화’로도 불린다. 레드벨벳, 샤이니 등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세계관 도입이나 키치적이고 비유적 상징 등으로 호평을 받았다. K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했다는 평가다.
Q : 뉴진스는 ‘걸크러시’를 앞세운 최근 흐름을 역행했는데도 성공했다.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와 청순한 소녀 이미지로 성공을 거뒀다.
“성공의 개념을 단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남이 했던 방식으로는 남다른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기획자이자 제작자로서 정말 하고 싶은 걸 실현해보고 싶었다. 뉴진스라는 팀에는 20여년 간 업에 종사하며 느낀 개선하고 지향하고 싶었던 바를 모두 담고 싶었다. 경영과 프로듀싱을 통합했기에 가능했다.”
Q : 제작자로서 영감을 주로 얻는 것은 무엇을 통해서인가.
“어렸을 때 집의 모든 벽면이 책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부모님이 맞벌이로 바쁘셨는데, 그에 대한 보상으로 책을 좋아했던 제게 매일같이 새로운 책을 사다주셨다. 덕분에 초등학생 때부터 책장에 꽂혀 있던 안톤 체홉이나 셰익스피어, 카프카 등을 자연스럽게 접했다. 또 아버지의 LP덕에 조지오 모로더나 프란시스 레이를 알게 되었고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같은 뮤지션의 음악에 빠져 살았다. 밤늦게까지 영화를 보는 내게 부모님은 ‘공부해라’든지 어떤 잔소리도 하지 않으셨다.”
Q : SM엔터테인먼트에 입사했으니 아이돌이나 가요에 관심이 많을 줄 알았다.
“전혀. 사실 입사하기 전 까지는 아이돌에 관심을 가져본 일이 없다. 가요라면 예전 노래들, 빛과소금, 산울림, 김현철이나 인디 음악에 관심이 있었다. SM엔터테인먼트에 입사했던 건 거대 시장에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내 포부를 펼쳐보이고 싶어서였다.”
2002년부터 K팝을 지켜봐왔던 그녀는 K팝 성공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4월 기자회견에서도 '팬덤에만 의존하는 상술이나 초동 부풀리기(밀어내기)’ 등을 언급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Q : K팝이 황금기를 맞이했는데, 지속가능성에 의문부호가 계속 따라다닌다.
“문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이 만들어 가는’ 일이다. ‘산업’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태생적 본질을 잃는 것은 어리석다. 허울만 좋은 시스템은 듣기엔 그럴 듯 할 수 있으나 자칫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 말장난에 그칠 수도 있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결국 ‘진심’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무형의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홀대받기 쉬운데, 돌이켜 보면 언제나 세상을 바꾼 결정적 한방은 전부 그것에서 비롯됐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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