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미술 속 비천은 하늘을 나는 신적 존재로, 주악·공양·산화비천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됐습니다. 비천은 구름을 타고 날고자 했던 인간의 염원을 담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 K-드라마·영화의 독창적 상상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정책주간지 'K-공감'을 확인하세요.
천국보다 아름다운 새보다 자유로운
비천의 연주

K-드라마는 이제 세계인이 좋아하는 장르가 됐습니다. 비결은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이라는 주제를 한국인이 아니면 결코 만들 수 없는 지역적인 특수성으로 버무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재 상영 중인 ‘귀궁’과 ‘천국보다 아름다운’이란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나라든 귀신 이야기가 없는 곳이 없지만 ‘귀궁’에는 오직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토착적인 귀신이 등장합니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는 불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현대판 천국과 지옥이 등장합니다. 두 작품 모두 한국인이 아니면 만들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독창적입니다.
‘목제주악비천여신상(木製奏樂飛天女神像)’은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는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입니다. ‘목제’로 만든 ‘주악비천여신상’은 악기를 연주하는 여자비천상입니다. 하지만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신의 세계에서는 성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비천’은 천의(天衣)를 날리면서 날고 있는 천인이란 뜻으로 비천인(飛天人), 비행천인(飛行天人)의 약칭입니다. 천인은 불교적인 용어인데 도교에서의 진인(眞人)이나 신인(神人), 혹은 서양의 천사와 유사합니다. 천의는 천인이나 선녀가 입는 옷을 뜻하니 천인은 지상에 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천상계의 존재입니다. 비천이 하늘을 날 수 있는 비결은 천의에 있는데 천의가 바로 천사의 날개에 해당됩니다.
‘목제주악비천여신상’을 보면 목제의 둔탁함 대신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듯한 유려함이 느껴집니다. 주악비천은 지금 피리와 비파를 연주하고 있는데 그 소리는 속세에서는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황홀합니다. 주악비천의 악기는 연주하지 않아도 스스로 울리는 신비스러운 물건이고 들고 있지 않아도 허공에 저절로 매달려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천의무봉의 악기를 연주하며 부처님의 장엄함과 훌륭함을 찬탄합니다. 서양의 예수님과 동양의 부처님은 인류문화를 풍요롭게 꽃피게 만든 양대 축입니다.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는 비천은 주악비천, 산화비천(散華飛天), 공양비천(供養飛天) 등이 있습니다. 주악비천은 악기로, 산화비천은 진귀한 꽃으로, 공양비천은 향로·보배 등의 귀한 공양물로 부처님의 장엄함을 드러냅니다. 현존하는 통일신라 최대의 범종인 성덕대왕신종과 당시 여러 기와에는 공양비천이 새겨져 있으며 고려시대의 ‘관경16관변상도’에는 산화비천이 그려져 있습니다.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은 동경의 대상이 됩니다. 높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를 보며 견우와 직녀 설화를 만들었습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세계까지 안내한다는 상상 또한 새에 대한 동경에서 시작됐습니다. 날고 싶은 욕망은 새뿐만 아니라 구름을 볼 때도 계속됐습니다. 만약 사람이 구름을 탄다면 새가 되지 않더라도 어디든 원하는 곳까지 날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엉뚱한 발상에서 탄생한 존재가 비천입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 구름을 타거나 옷자락을 펄럭이는 것만으로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생각은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실현 불가능한 소망으로 몽상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예술의 세계와 상상력의 세계에서는 가능합니다. 그런 몽상이 없었더라면 주악비천이나 천사와 관련된 예술 작품은 결코 탄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돈이 되지 않더라도 하늘을 날고 싶다는 엉뚱한 욕망을 무한한 상상력으로 확장시킬 때 우리의 의식세계는 더욱 풍성해집니다. 어디 의식세계뿐이겠는가. 지금은 돈이 되는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돼 세계인을 홀리고 있지 않은가요.

조정육 미술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