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초등학생들의 '유느님 인터뷰 프로젝트' [복작복작 순창 사람들]

최육상 2022. 11. 2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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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감소율 전국 1위' 전북 순창군 초등학생들의 소망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최육상 기자]

 전북 순창초등학교 6학년 학생 21명은 '제발 유느님을 만나게 해 달라'며 종이학 1000마리를 접고 도화지에 만나고 싶은 이유를 적었다.
ⓒ 최육상
<오마이뉴스> 덕분에 큰 숙제를 맡게 됐다. '방송인 유재석'을 만나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생겼다. 나는 2021년 1월 중순, 나고 자란 서울을 떠나 부모님 고향인 전북 순창군에 정착하며 지역 주간신문 <열린순창>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정착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순창여자중학교 후문에 걸린 '한국은 5면이 바다' 현수막과 관련해 최순삼 교장과 학생회 임원 5명을 취재하고 <열린순창>에 보도했다.

이어 <오마이뉴스>에도 순창여중 기사를 수정, 보완해 송고했다. <오마이뉴스>에 그해 2월 5일 보도된 기사 '한국은 5면이 바다 순창여중 현수막 보셨나요'http://omn.kr/1rz6b가 포털사이트 메인에 걸리며 순창군민들 사이에 "순창여중 기사가 나왔다"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그날 이후 순창여중과 인연이 이어졌다. 2021년 5월, 최순삼 교장은 전라북도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순창여중 '미디어 리터러시(신문처럼 문자화된 기록물로 지식·정보를 얻고 이해하는 능력)' 기자동아리 교육을 내게 맡겼다. 나는 순창여중 학생들과 함께 기자교육을 진행하면서 지난해 연말 순창여중 학교신문 창간호 <자갈자갈>을 발행했다.

순창여중 기자교육은 올해도 학생들만 바뀐 채 지난 5월부터 시작해 연말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올해는 새롭게 전라북도순창교육지원청이 지원하는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기자단 교육도 맡게 됐다. 어린이기자단 교육 역시 지난 5월부터 연말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제발, '유느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

<오마이뉴스>에 보도된 "순창여중 현수막" 기사로 순창군에서 유명해진 덕분에 나는 학생들에게 팔자에 없는 '기자쌤'으로 불린다. 그런데, 올해 문제가 생겼다. 나는 <오마이뉴스>와 <열린순창> 기자 경험을 토대로 '기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에 대해 학생들에게 교육했다. 나는 "기자는 현장을 취재하는 사람으로, 독자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대신 취재하며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알려주는 사람"이라고 설명한 후 학생들에게 "혹시,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예상대로 여러 유명 아이돌의 이름이 거론됐다. 하지만,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꼽은 인터뷰 희망 대상자 1위는 BTS(방탄소년단)도 투바투(투모로우 바이 투게더)도 아닌 '방송인 유재석'이었다. 특히 초등학생들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봐 온 탓인지 13살 다운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제발, 유느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라고 간절하게 바랐다.

난감한 일이었지만 학생들의 소박한(?) 바람을 단번에 외면할 순 없는 노릇, 나는 학생들에게 "'유느님'을 만날 수 있는 방안을 어떻게든 함께 찾아보자"라고 답을 했다.

'유느님'에게 전할 종이학 1000마리 접어
 
 전북 순창초등학교 6학년 학생 21명은 '제발 유느님을 만나게 해 달라'며 종이학 1000마리를 접고 도화지에 만나고 싶은 이유를 적었다.
ⓒ 최육상
   
 전북 순창초등학교 6학년 학생 21명은 '제발 유느님을 만나게 해 달라'며 종이학 1000마리를 접고 도화지에 만나고 싶은 이유를 적었다.
ⓒ 최육상
유재석을 만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해 기대치가 낮아진 중학생들과 달리 초등학생들은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수업시간에 '유느님'을 만날 수 있는 방안을 짜내기 위한 시간을 내어주면 학생들은 진심으로 정성을 다 했다.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아이디어를 짜내고 "유느님을 만나면 선물하겠다"며 '종이학 1000마리'를 접기 시작했다. 처음 종이학을 접어보는 학생들은 방법을 익히느라 낑낑댔다. 학생들은 몇 날 며칠에 걸쳐 종이학 1000마리를 접어 내게 의기양양 내보였다. 학생들은 커다란 도화지에 유재석에게 전할 말을 적고 아기자기한 그림도 그려 넣었다.

'도대체 시골 농촌의 초등학생들이 이렇게 간절하게 방송인 유재석을 만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의아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구소멸위기에 놓인 시골 농촌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전북 순창군은 지난해 행정안전부가 지정, 고시한 전국 지자체 인구소멸위험지역 89곳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더욱이 통계청이 지난 7월 28일 발표한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순창군은 전국기초자치단체 중에서 인구증가율 -4.2%로 꼴찌를 기록했다. 다시 말해 순창군이 '인구감소율 전국 1위' 지자체라는 불명예를 안은 것이다.

순창군 전체 인구는 올해 8월 말 기준으로 2만 6743명이다. 순창군내 초·중·고 학생 수는 순창교육지원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4월 1일 기준으로 초등학생 897명, 중학생 601명, 고등학생 604명 등 총 2102명이다. 대도시 큰 학교 전교생 숫자 밖에 안 된다.

순창읍에 위치한 순창초등학교와 순창여자중학교 전교생은 각각 298명, 244명이다. 순창군내 전체 초등학생의 33%가량이 순창초등학교에, 전체 중학생의 40%가량이 순창여중을 다니고 있다. 인구가 적고 학생 수가 적다 보니 학년이 같은 학생들은 학교는 달라도 거의 대부분 서로를 아는 사이다.

학생들은 길거리를 오가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어른들도 "○○아, 어디 가니?"라고 다정하게 묻는다. 더불어 살아가는 시골 공동체 모습은 어디에서든 쉽게 마주하는 풍경이다.

사방에 자신을 알아보는 눈길이 있기에 학생들은 스스로 행동을 조심하고 인사성도 무척 밝고 순수하다. 초등학생들이 "유느님을 꼭 만나고 싶다"고 소망하는 건 간절하게 원하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순수한 믿음 때문이다.

'가장 가보고 싶은 곳'으로 방송국 꼽아

내가 지난해와 올해 기자교육을 함께 한 청소년 대다수는 '가장 가보고 싶은 곳'으로 '방송국'을 꼽았다. 광주나 전주에 있는 방송국이 아닌 아이돌이나 연예인을 많이 볼 수 있는 서울의 방송국을 가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순창군에서 체험 학습이나 기자단 탐방 교육을 위해 당일치기로 서울을 다녀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버스로 왕복 8시간 이상이 걸리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들은 '틱톡'으로 세상 정보를 접하고, 중학생들은 '유튜브'에서 세상을 들여다 보지만, 순창군 같은 시골 농촌에서 나고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문화 욕구 충족'은 가장 큰 문제로 보인다.

방송인 유재석씨에게 13살 순창초등학교 어린이기자단 학생들이 직접 밝힌 '유느님을 만나야 하는 이유'와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를 전한다.

"인기 많은 유재석님과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악수도 해보고 싶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종이학 1000마리를 드리고 싶다." (서정윤)

"제가 7살부터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을 너무너무 많이 보고 유재석님을 너무 존경하고 실제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MC가 되려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나요?" (전선우)

"대한민국을 빛내주셨고, 런닝맨도 정말 재밌게 봤고 너무 재밌으셔서 유느님을 만나보고 싶어요." (정시향)

"유재석님을 좋아하고 유퀴즈도 많이 보고, 학 1000마리도 접고 편지도 했으니까 순창에 와 주세요." (윤현준)

"무명 시절부터 엄청 노력해서 그 자리까지 올라가신 유재석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힘들 때마다 어떤 걸로 기분을 푸시나요?" (박정민)

"저는 유느님을 일요일 6시마다 런닝맨에서 아주 재밌게 봤습니다. 유느님을 실제로 보고 싶습니다. 유느님, 저 런닝맨 깜짝 출연 가능한가요?" (김규현)

"유명인 중에서 재미있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보고 싶다. 살아가면서 유재석님한테 가장 도움이 된 말들은 무엇인가요?" (설태혁)

"기자 수업을 통해 꼭 우리반 친구들과 유재석님을 만나 인터뷰하고 좋은 6학년을 마무리하고 싶다. 살아오신 인생 얘기도 꼭 들어보고 싶다." (공채경)

"유느님과 셀카를 찍고 싶고, 싸인도 받고 싶어요! 꼭 전라북도 순창으로 와 주세요!" (김연후)

이 글을 방송인 유재석씨가 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시골 농촌 청소년들의 바람이 유재석씨에게 전달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순창을 방문해 청소년들에게 '어린 날의 꿈'을 주제로 강연을 해줘도 좋고, 그냥 주제 없이 청소년들의 질문에 답을 해 줘도 좋다.
 
 전북 순창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방송인 유재석 하면 떠오르는 메뚜기, 라면, MBTI 등을 칠판에 그려넣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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