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 지원책 잇따르지만…“배후진료 시급”
신대현 2024. 9. 16. 06:02
정부가 응급실 유지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지만 응급의료 공백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응급 처치 후 배후진료가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인한 의료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응급의료센터 운영이 차질을 빚고 있다. 정부는 본인부담률을 90%로 올려 경증환자가 응급실을 이용하지 않도록 하고, 현장 의료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응급의료 문제를 해소할 방침이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경기도 소재 종합병원 소아외과 A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현재 응급실은 입구는 있지만 출구가 없는 상태라고 평가했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환자를 받아도 배후진료 의사가 없어 최종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A교수는 “응급실 유지 대책을 내놓는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라며 “배후진료가 이뤄지지 않아 환자를 받고 싶어도 못 받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중증 외상환자가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응급의학과 전문의뿐만 아니라 긴급 처치 후 수술을 할 수 있는 외과 전문의가 있어야 한다. 심근경색 환자가 이송되면 심장내과 또는 흉부외과 전문의가 있어야 적절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 후속 진료를 하거나 수술할 의사가 없으면 환자를 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소아 환자의 경우 각 진료과별 소아 치료에 특화돼 있는 세부·분과 전문의가 필요하지만 병원에 딱 한 명 있거나 아예 없는 현장이 대부분이다. 소아외과는 아이의 생명·건강과 직결된 필수의료 분야임에도 고질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정년 은퇴를 앞둔 의사는 계속 늘고 있지만, 매년 소아외과 전문의를 지원하는 수는 1~2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현재 전국에서 활동하는 소아외과 의사는 약 50명 정도로 추정된다. 소아외과는 항문 및 식도 폐쇄 등 다양한 선천성 기형부터 탈장, 외상, 종양, 장기 이식에 이르는 소아 환자 처치에 특화돼 있다.
배후진료가 불가능해 응급실 수용이 거부되거나 재이송되는 사례는 끊이질 않는다. 병원들이 환자 수용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문의 부재’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소방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공의 이탈이 시작된 2월19일부터 8월25일까지 190일 동안 119구급대가 한 번 이상 거부당해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긴 재이송은 총 3071건이다. 이 중 전문의가 없어 발생한 재이송이 가장 많은 1216건으로 전체의 40%를 차지했다. 최근 충북 청주에서 생후 4개월 된 남아가 탈장과 요로감염 증세를 보여 11개 병원을 전전하다가 신고 3시간여 만에 130㎞가량 떨어진 서울의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은 일도 전문의 부재 때문이었다.
A교수는 “소아외과 전문의가 1명만 있는 병원이 전국적으로 70%에 달한다. 전공의도 없는데 어떻게 홀로 365일 24시간 자신의 가정과 삶을 포기한 채 병원을 지킬 수 있겠는가”라며 “청주 탈장 아이의 경우 소아외과 뿐만 아니라 소아비뇨기과, 소아마취과 의사가 필요했다. 배후진료가 무너진 상태에서 어느 병원이라도 환자를 받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짚었다.
아픈 아이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들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전국 국립대 어린이병원 6곳의 운영 현황을 확인한 결과 의정갈등 사태 이후 부산대·전북대·전남대 어린이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보는 전문의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대 어린이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올해 초 36명에서 현재 34명으로 줄었다. 전남대 어린이병원은 신생아분과 전문의가 1명만 근무하고 있어 신생아중환자실을 축소 운영 중이다. 전북대 어린이병원도 지난 2월 말 20명이었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현재 18명이 됐다.
소아응급의료 전문의들 사이에선 불안감이 높아진다. 대한소아응급의학회 관계자는 “추석 연휴 소아 응급실은 평소보다 많은 환자가 몰려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며 “아이가 갑작스럽게 열이 날 경우를 대비해 해열제를 미리 준비해두고, 야간에는 응급실 방문 전 119 상담을 통해 중증 응급 환자인지 먼저 확인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년 퇴임한 고령 의사가 진료를 보고 당직을 서야 할 만큼 지역 소아 진료 환경은 열악하다. A교수는 “서울대병원에서 은퇴한 소아외과 교수가 다른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보고 있다”며 “레지던트 때 환자를 보느라 우리 아이 돌잔치도 못 갔다. 낮은 수가에도 자부심 하나로 버텼다. 지금 젊은 의사들은 소아 세부분과 전공을 아무도 안 하려고 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발가락 하나만 다쳐도 걷는 게 힘든 것처럼 의료시스템도 어디 한 군데가 잘못되면 정상 기능을 하지 못한다”며 “정부가 의료개혁을 하고자 한다면 차근차근 하나씩 바꿔나가야 했다. 의료 환경을 정상으로 돌이키려면 정책을 과감히 수정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배후진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추석 연휴 동안 응급실 진료 후 수술·처치·마취 등 행위에 대한 수가를 기존 가산 150%에서 주간은 200%, 야간과 휴일은 300%까지 더해주기로 했다. 공중보건의사, 군의관 파견도 이어간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3일 비상진료 대응 관련 브리핑에서 “파견 나간 인력들은 모두 응급진료 또는 배후진료에 참여하고 있다”며 “개별 의료기관과 소통을 긴밀히 유지하면서 응급의료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 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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