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돈푸는 中, 시진핑의 U턴?
5% 성장을 약속한 중국이 본격적인 경기부양 패키지를 내놓기 시작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금리를 내리고 주택구매 규제를 완화한 것은 물론, 지원금을 풀고 대규모 재정지출 확대도 예고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질문이 따라붙는다. 오랜 기간 단기 경기부양에 부정적이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진짜 정책기조 전환에 나선 것인가. 갑자기 그의 생각이 바뀐 이유는 무엇인가. 과연 이번 경기부양 패키지가 과연 중국 경제를 궤도에 올려놓기에 충분할 것인가. 줄곧 눌려있던 중국 증시는 반짝 화답하다 다시 주춤한 상태다. 조만간 발표될 구체적인 재정 지원 규모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한 달간 경기부양책 쏟아낸 中
중국 정부는 국경절 연휴(1~7일)를 일주일가량 앞둔 지난달 말부터 유동성 공급, 금리 인하, 증시 안정화 자금 투입 등을 골자로 한 부양책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중국인민은행,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 등 3대 금융당국이 지난달 24일 합동으로 내놓은 통화 완화, 부동산 시장 지원, 증시 부양책은 시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인민은행이 주가 부양을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3대 금융당국이 전방위적 정책수단을 동원했다는 것 자체도 이례적이지만, 경기부양책에 줄곧 '낭비'일 뿐이라고 부정적 입장을 내비쳐온 시 주석이 기조를 바꿨다는 이유에서였다.
시 주석은 불과 이틀 뒤 중앙정치국 회의도 깜짝 주재했다. 부동산, 소비, 자본시장을 되살릴 것을 촉구한 시 주석의 메시지는 그만큼 경제성장에 사활을 걸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됐고, 오랜 기간 하락세를 이어온 시장은 즉각 환호했다. 국경절 연휴 돌입 전날인 지난달 30일 상하이종합지수는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일일 상승폭을 찍었다. 2억명 이상의 부추(중국판 개미)들이 증시로 몰려들며 같은 달 27일에는 주택거래 시스템 이용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를 막기 위해 단행했던 2008년 4조위안 규모의 경기부양책과 같은 대규모 부양책의 필요성을 예고한 것"이라며 지난 한 달간 CSI300지수와 상하이종합지수가 두 자릿수 뛰었다는 점을 주목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민은행이 주식 매수를 장려하는 전례 없는 조치"라면서 "앞서 중국 경제에 타격을 준 코로나19 봉쇄를 해제할 때와 마찬가지로 경제정책의 전환도 갑작스럽게 이뤄졌다"고 전했다.
지난 한 달간 공개된 부양책은 유동성 공급과 증시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구체적으로 중국 당국이 지급준비율(RRR)을 0.5%포인트 인하하는 것만 해도 시장에는 1조위안(약 190조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정책금리인 7일물·14일물 역환매조건부채권(역레포) 및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 금리까지 낮췄다. 5000억위안 규모의 인민은행·기관투자자 간 스와프 프로그램을 통해 상장기업의 자사주 매입, 지분 확대도 지원한다.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내수를 진작하고 증시를 떠받치겠다는 구상이다. 이와 함께 중국 정부는 부진한 부동산 시장에서도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프로젝트 등을 대상으로 한 조단위 자금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5% 빨간불에 시진핑 책임론 의식했나
중국 당국의 경기부양 패키지 발표에 주요 외신들은 "마침내"라는 평가를 쏟아내고 있다. 그간 전문가들 사이에서 중국 경제가 다시 '글로벌 성장엔진'의 지위를 되찾기 위해서는 과감한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는 관측이 잇따랐음에도, 시 주석은 단기적 경기부양책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쳐왔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정부는 경제를 돕기 위해 (지원책이) 부족한 것보다, 과도한 것을 두려워해 왔다"라면서 "시진핑은 가계에 대한 직접적 지원이 자립심을 훼손해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봐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간 경제성장률 5% 달성에 빨간불이 켜진 가운데 정부부채, 인구 감소, 청년실업률 상승, 미국과의 무역갈등 등 전방위 압박이 심화하자, 공식 석상에서 느긋한 자신감을 내비쳐왔던 시 주석으로서도 경제운용 책임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중국 경제성장률은 4.6%에 그쳤다. 1~3분기 누적 성장률 또한 4.8%에 머물며 5%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쏟아진다.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19%에 육박하며, 2년 연속 디플레이션도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1990년대 부동산 거품이 터진 후 일본이 겪은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을 중국에 빗대기도 한다.
매튜스 아시아펀드의 앤디 로스먼 투자전략가는 "시진핑이 이제 중국 경제가 잘못된 길에 있음을 인식했다"며 "실용적인 방향의, 진로 수정이 시급하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라고 경기부양 패키지 발표 배경을 분석했다. 미트레이드는 "중국 주도부가 더는 부동산 침체와 부채 증가세를 무시할 수 없었다"면서 "시진핑의 갑작스러운 유턴은 이제 세계 2대 경제를 구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무디스는 경기부양책 공개 후 올해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4.8%에서 4.95%로 상향하며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재정부양 규모에 눈길..."게임체인저 안될 것" 지적도
관건은 향후 공개될 재정부양책의 규모다. 중국 정부는 법적 절차를 거친 후 특별국채 발행 등을 포함한 재정 지원 규모를 확정, 발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단순히 금리를 내리고 유동성을 공급한다고 해서 경기가 즉각 살아나기 어려운 만큼 직접적인 재정지출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이르면 이달 말 열리는 최고의사결정기구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국 정책기조 전반에 여파가 불가피한 미국 대선이 오는 11월5일 예정돼있는 만큼 그 이후로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느냐를 확인한 뒤 움직일 수 있다는 관측이다.
현지에서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침체를 막기 위해 단행했던 2008년의 대규모 부양책 이상의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경기부양책은 4조위안 규모였다. 중국 정부 고문으로 활동 중인 사회과학원 산하 세계경제정치연구소의 장빈 부소장은 앞서 한 웨비나에서 국채와 지방 특수목적채권, 예산 범위 밖 국채 매각을 통해 내년에 12조위안 규모의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내년 중국 경제성장률 목표치 5%를 고려했을 때 이 같은 규모의 부채 발생이 필연적이라는 분석이다. SCMP는 "최종 부양책 규모에 대한 추측 게임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전인대 회의는 정책 변화의 정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재정부양책 규모가 수조위안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이 잇따르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구체적인 수치를 전혀 제시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도 제기되고 있다. 맥쿼리 캐피털의 래리 후 중국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앞서 투자자 메모를 통해 "그들로선 숫자를 내놓을 필요가 없다"면서 "중국에서는 재정, 통화, 산업정책의 경계가 종종 모호하기 때문에 숫자를 내놓기 자체가 어렵다"고 평가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재정부양책의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단기 부양책을 꺼려온 시진핑 주석의 정책기조가 진짜 바뀐 것인지, 이번 발표가 민간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지 여부라고 지목했다. 하이빈 주 JP모건 중국 수석 경제학자는 "정책전환을 볼 수 있지만 180도 전환은 아니다"라며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지, 중국이 (경제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단계인지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라고 지적했다.
UBS투자은행의 타오 왕 중국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시장에 중요한 신뢰감을 불어넣고 경제를 안정시키는 데 도움 줄 수 있다"면서도 "재정 및 신뢰 측면에서 정말 큰 추진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피에르 올리비에 구린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역시 중국의 세부 경기부양책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가계, 기업의 신뢰가 하락하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실질적 성장을 끌어올리기엔 충분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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