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700억! 프랑스 농협 건물을 친환경으로 바꾼 한국인 건축가 [에코인터뷰]
남겨진 보통의 것들을 다시 쓴다.
파리 올림픽 스타디움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국인 건축가 유산. 친환경 스타디움의 개념을 접목한 이번 스타디움 건설에 사실 그는 20~30%만 참여했다.
하지만 그가 전두지휘 한 작품은 따로 있다. 바로 프랑스 북부 도시 ‘릴’의 농협 건물을 ‘친환경스럽게’ 탈바꿈한 것이다.
실천적인 부분 강조로 프랑스인 마음 사로잡은 그의 계획
그에게 먼저 릴 건축 프로젝트 소개를 부탁했다.
“한국으로 치면 농협 건물이죠. 크레딧 아그리콜(Credit Agricole)이라는 프랑스 은행의 릴 지점 건물을 새로 리모델링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릴 센터 공원 앞에 7채의 건물이 L자로 이어져 있습니다. 연면적은 18,000 제곱미터로, 릴 도시 측면에서는 꽤 큰 규모의 사업입니다. 크레딧 아그리콜과 같은 건물을 사용하던 Tisserin 부동산 투자회사가 연합하여 추진한 프로젝트입니다. 또한, 이들의 자회사이자 건축 프로젝트 시행사무소인 Nacarat 오피스와 저희 사무소(SCAU)가 공동으로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해당 프로젝트의 팀장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팀장으로 릴 프로젝트 시작부터 설계까지 주도했다. 백지장에 공모전 참여부터 그려나갔다.
“크레딧 아그리콜 측에서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저희 작업이 당선된 이유는 단순히 디자인의 큰 방향성만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저희는 파사드 청소 계획까지 고려하여 디자인했습니다. 이는 처음에는 웃긴 접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저희에게는 건축물의 유지 관리 측면도 중요한 디자인 요소였기 때문에 진지하게 임했습니다. 실제로 청소 케이블 카까지 도면에 그려 넣었습니다. 구체적인 재료에 대한 고민, 조감도에 재료를 정확하게 적용한 디자인, 재료의 조달 방식부터 실제 공사가 완료되는 일련의 시나리오까지 모두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제시된 결과물이었습니다. 기존의 공모전들이 많은 나라에서 디자인의 큰 방향을 제시하는 탑-다운 방식이었다면, 이번 공모전은 실천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바텀-업 방식이었습니다. 현재 공모전 작업을 마치고 이제 실시 설계 단계에 진입하고 있는 중입니다."
건축 '남겨진 보통의 것들을 다시 쓴다'
그는 700억 원 규모에 달하는 릴 프로젝트의 가장 큰 친환경적인 부분은 건물을 재활용하는데에 있다고 말한다.
“릴 프로젝트는 기존 건물의 철거를 최소화하는 측면에서 이미 친환경 건축 행위의 큰 부분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새로 규정된 환경법에 따라 낮은 열효율을 지닌 건물의 파사드를 변경하고, 추후 사용자 증가에 따른 계단실과 엘리베이터실의 법적 대수선을 제외하면 건물을 사실상 통째로 다시 쓰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회의 때 저희들끼리 간단하게 '포장지'라는 단어를 종종 사용했지만, 물론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외벽을 철거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대수선 프로젝트의 경우 건축법상 수직으로 일부 증축이 가능했기에 추가 하중을 고려하여 구조체를 보강해야 하는지 그대로 써도 되는지에 대한 일종의 '진단 작업'이 정확하게 선행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친환경 규제에 걸맞은 재료들을 높은 수준의 에너지 라벨에 맞추어 설계한다는 것은 곧 예산의 문제에 직결되었습니다. 이처럼, 도시 한가운데에 큰 규모로 자리 잡고 있던 60-70년대 건물의 리모델링 작업에서 인상 깊었던 저희의 제안은 바로 '남겨진 보통의 것들을 다시 쓰자'였습니다.”
건축 재료를 재활용한다? 순환경제는 기후 위기와 탄소 중립 시대 핵심 열쇠다. 그것이 건축에서도 가능하다니. 흥미로웠다. 좀 더 깊이 있게 듣고 싶었다.
사실, 직원들은 걱정이 앞섰습니다.
“재활용이라는 개념을 설계에 반영한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에 다른 사무소들도 얼마든지 생각했을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었습니다. 게다가, 회사의 매출액이 결정되는 큰 규모의 공모전에서 이를 실천에 옮기는 데에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외벽의 타일을 재활용할 때, 이를 써도 되는지에 대한 진단 작업 또한 추가되어야 하는 사항인데 이 부분까지 우리가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등등 사실 조심스러웠습니다만 저의경우 "진단작업이 수행되고 난 다음에 걱정해도 늦지 않을 사항이다"는 말로 직원들을 설득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다니고 있는 사무소는 수년 전부터 기존에 있었던 것을 어떻게 다시 써보자는 철학을 실제로 적용하고자 노력해 왔기에 빠르게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누구든지 생각할 수 있지만, 실천에 대한 사항을 건축적으로 표현해 낸 작업은 다행히도 저희 사무소가 유일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건축가 듀오 라카통과 바살의 지속가능 건축 흥행몰이 이후 부수지 않고 짓는다는 개념에 적극 지원중이다. 입주자들을 쫓아내지 않고 더 좋은 환경에서 여러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원을 해결하고 행적적인 소모를 줄임으로써 다른 부분에 더 집중할 수 있기에 정부로써는 미소가 지어지는 도시 개발 방식이었다. 이번 릴 프로젝트도 기존에 있었던 건축물을 다 그대로 쓴다는 개념이었다. 그렇기에 프랑스 정부에겐 땡큐였다,
“그러고 보면 라카통 바살의 계획안이 주목받기 시작한 근래부터 정부의 의지가 빠른 속도로 개선되는 모습을 보면 한국처럼 이들에게도 정책적 탄력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합니다. 일단 다 다시 쓴다고 하니까 (내심 미심쩍어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정부 측에서도 대단히 좋게 보고 있어요. 통상 건축물의 변경이 발생하면, 프랑스에는 ABF라는 '프랑스 건축물 관리부'의 심의가 필요합니다. 실제 건축물의 디자인적인 요소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도 하는데, 다행히도 그분들이 건축물의 기존 재료를 그대로 다시 쓰겠다는 실천 사항을 좋게 보아주셔서 설계에 큰 강제 변경사항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하)”
ABF와 세 달에 한번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은 재활용 건축을 실제 행동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여졌다.
“재활용을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동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 건축주, SCAU 소장, 그리고 당시 건축 공무원들과의 전체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일단 만들고 보자'는 의지는 기존의 미학적이고 학술적인 관점에서는 '유희적'이라는 표현으로도 다루고 싶지 않을 만큼 별 볼 일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떻습니까. 탁상공론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어느 나라나 존재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그 총대를 매어주기를 서로 미루는 모습도 똑같습니다. 저희 사무소는 탁상공론을 다른 장르라고 규정했습니다. 마음이 일단 편안해졌습니다. (웃음) 그러다 보니 너무 어렵고 복잡하게 접근하려는 의지가 도리어 환경에 대한 생각을 더 뒷전으로 미루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그들의 그 의지라는 것이 종국에는 환경에 대한 걱정보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걱정이 더 우선하고 있다는 것이 저희의 정직한 판단이었습니다.”
'그 못생긴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프랑스 친환경 건축의 핵심 동력
유산 건축가가 릴 프로젝트를 주도하면서 느낀 친환경 건축은 바로 지금 현실에서부터 시작하는 데 있었다.
“60~70년대 프랑스에서 지어진 건물들은 프랑스 정부에서도 '내놓은 집 자식'처럼 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학사 과정 중에도 많은 학교에서 해당 건물들을 철거하고 새로운 도시계획을 진행하자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당시 시장에 건설 자금이 막대하게 풀리면서 구도심 인근의 뉴타운 사업뿐만 아니라 구도심 내부에 건물들이 빠르게 올라갔습니다. 비교적 조악한 외관을 가졌지만, '코끼리 다리와 같은' 높은 안전율로 설계된 구조체들은 되려 오늘날 수많은 건물들의 재활용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프랑스를 관광하는 사람들은 사실 전체 프랑스 건축의 일부만 경험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건물들이 프랑스의 수도권 인프라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못생겼으니 부수고 다시 시작할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이는 건축물의 재활용 가능성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 못생긴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의지가 오늘날 프랑스의 친환경 건축 활동의 핵심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프랑스 문화부와 저희의 공통된 의지입니다.
프랑스는 더 이상 파리 시내의 오스만 건물처럼 화려한 건축물을 만들지 못할 수 있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이야기에 맞춰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프랑스의 친환경 건축은 기존 건물의 재활용과 재사용을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건축주의 용기와 실천을 통해 가능해졌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하자는 의지는 릴 프로젝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릴 시에서도 재료를 다시 찍는다고 하니 적극 찬성했다. 릴 건물도 사실 검은색과 청록색, 흰색으로 소위 말하는 예쁜 건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 있는 부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정부의 의지가 친환경과 연결되는 것이었다.
"해외의 좋은 사례에 대한 열망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설계 작업 시 당면하는 과제 중 하나입니다. 사실 이 프로젝트의 경우 건물을 일정 부분 재활용하면 프랑스 정부는 공사비 총액의 상당 부분을 공제해 주기 때문에, 프랑스 최대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해당 은행 입장에서는 홍보적인 측면에서도 건물을 더 화려하고 뛰어난 스펙의 재료들로 얼마든지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기존에 있는 건물들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며 창을 조금 크게 낸 정도입니다.
공모전 당선 이후 건축주와의 회의에서 지사 건축에 무리한 금액을 출자하는 것이 주주들과 고객들, 나아가 주민들에게 좋지 않게 비칠 수 있다는 것이 건축주의 현실적인 고민이었습니다. 물론, 규모 대비 700억이라는 건축비용은 작은 비용은 아니지만, 추후 비용이 오르더라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다는 점이 사업 주체에게 힘을 실어주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현실적인 부분에서 복잡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내에서 최선을 다해 뭔가를 해보겠다는 의지가 건축주의 행동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습니다. 라카통과 바살이라는 작은 건축사무소가 쏘아 올린 실천과 그 의지가 오늘날 프랑스의 친환경 건축을 이끌고 있다는 점은 다른 나라에도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물론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고품질의 장수명 건축물을 통해 전체 건축물의 사용 사이클을 고려한 하이엔드급 친환경 건축 시장이 존재하지만, 고스펙을 요구하는 친환경 라벨 인증에 위축되지 않고 낮은 비용에서부터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결단과 용기도 어느 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에코저널리스트 쿠 ecopresso23@gmail.com (취재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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