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조사 대상... 이태원 판결, 참사 책임 묻는 유일한 길 아냐"

김화빈 2024. 10. 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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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송기춘 이태원참사 특조위 위원장 "민·형사 책임보다 폭 넓게 진상 조사할 것"

[김화빈, 권우성 기자]

▲  송기춘 이태원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 권우성

"형사 판결만이 참사 책임을 묻는 유일한 길은 아닙니다. 특조위 조사를 통해 참사에 얽힌 다양한 책임을 언급하고 정부에 (대책) 이행을 요구하겠습니다."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를 받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에게 무죄 선고가 떨어진 이튿날, 송기춘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아래 특조위)' 위원장이 1호 진상규명 조사신청서를 들고 찾아온 유족들에게 건넨 다짐이다.

참사 2주기를 한 달여 앞뒀지만, 그간 사실관계를 전방위로 살피는 조사가 아닌 수사만 이뤄져 왔다. 유족이 건넨 조사신청서에는 159명의 희생자가 왜 이태원 골목에서 숨져야 했는지, 왜 인파 밀집을 예견하지 못했는지, 경찰과 구급활동 대응에 문제는 없었는지 등 9개 과제가 담겼다.

그러나 특조위가 당면한 현실은 첩첩산중이다. 여야 합의 과정서 특별법 초안에 있던 '불송치·수사 중지 사건에 대한 자료제출 요구권',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권'은 삭제됐다. 활동 기간도 최대 1년 3개월이다. 훌륭한 조사관 채용, 시행령과 예산안 확보에서도 정부 협조가 필수적이다.

지난 2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중구 특조위 사무실에서 송기춘 위원장과 만나 가시밭길이 예상되는 특조위 활동 방향과 목표에 대해 물었다. 송 위원장은 "우리 사회는 유족들이 궁금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라 기소된 당사자들의 형사 책임 인정에 관한 제한된 사실관계만 다뤄왔다"라며 "특조위는 형사·민사책임보다 조사 범위를 훨씬 더 확장해 우리 공동체가 아파하는 부분을 명확히 밝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송기춘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서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장(장관급)으로 임명돼 2년 넘게 활동하며 1700여 건에 달하는 진정 사건을 다룬 바 있다. 현재는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있다. 아래는 송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자발적 협조 이끌되 정부는 예산·인력·시행령으로 뒷받침해야"

▲  송기춘 이태원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 권우성

- '1호 진상규명 조사신청서'에 담긴 유족들의 요구가 무엇을 의미한다고 보나.

"검경에서 이뤄진 수사는 유족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을 소홀히 다뤘다. 그래서 유족들이 희생자들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생활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고, 남겨진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껴야만 하는 상황도 반복됐다. 특조위는 형사·민사 책임보다 훨씬 더 조사 대상과 범위를 열어 놓고 공동체 구성원들이 아파하는 부분을 명확히 조사해 정치·도덕적 책임 등을 밝히겠다."

- 수사보다 폭넓은 조사를 해야 하지만, 검경과 달리 강제로 자료를 받아낼 방법은 없다.

"특조위 활동에서 강제적 방법을 쓰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기관일수록 자발적인 협조,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자료 제공이 활동의 성패를 좌우한다. 만약 강제적인 권한을 발동하고 고발하면 협조를 구하는 길이 오히려 막힐 수 있다.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진실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낙관적 태도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간 참사의 진실이 드러나지 않아 오히려 본인이나 (자신이 속한) 기관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참사를 밝히려는 사람들,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들이 나서주기를 기대하는 측면도 있다."

- 특조위 운영기반인 시행령 제정과 예산 배정에서 정부의 협조가 필요한데, 정부 여당은 특조위 위원들 임명에 늑장을 부리기도 했다.

"대통령이 공포한 특별법 제4조는 '국가가 진상규명과 피해자의 권리보장을 위한 업무수행에 적극 협조하고 필요한 예산상의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가 특조위 활동을 충분히 담보할 수 있는 예산과 인력을 법에 따라 확보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 특조위가 참사를 조사하는 원칙에 윤석열 대통령도 포함되나.

"포함하는 것이 원칙이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서 대통령실과 국정상황실은 조사 대상이었고, 관련 자료도 제출했다. 참사 진행·수습과정에서 일정 부분 관여·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조사 대상이다. 조사를 통해 책임 유무와 경중을 따질 것이고, 책임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과도한 비방·비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특조위 위원 9명 중 5명이 변호사인데 처벌 중심으로 조사가 흘러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온다.

"법률상 혐의가 입증되는지를 따지는 법조인 시각으로 참사를 조사한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위원회가 수사기관은 아니며, 조사과정에서도 변호사들이 현행법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이를 돌파할 수 있는 나름의 논리나 해결책을 찾을 것이란 기대 또한 할 수 있다. 변호사인 위원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하면서 서로 열린 시각으로 진상을 조사할 수 있도록 누차 당부드릴 것이고, 이를 위한 워크숍 등 여러 활동도 진행할 예정이다."

"다시는 이태원 참사 반복 않도록 역사적 사명 완수할 것"

▲  송기춘 이태원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 권우성

- 우리 사회에 수많은 참사가 있었고 이를 규명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성공적인 활동은 손에 꼽는다.

"사실관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조사관들의 헌신, 충분한 자료 확보를 통한 진상규명이 성패를 가른다고 본다. 앞으로 1년간 특조위는 이태원 참사에 대해 이미 가졌던 선입견과 판단을 접어두고, 새롭게 입수된 자료를 토대로 사실을 재구성하고 사실 여부를 재검토할 것이다. 수사 기관, 법원, 정부를 통해 한 번 이뤄진 평가 또한 재검토할 것이다. 대한민국 안전 체계가 확실히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도록, 특조위에 부여된 역사적 사명을 완수할 것이다."

- 특조위 활동은 사실상 '권고' 수준이어서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조위가 하는 권고가 반드시 이행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저 활동 결과를 보고서에 담아 대통령과 국회에 제출할 뿐이다. 그렇다고 권고가 힘이 없는 게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권고를 한다. 그리고 결정의 내용이 상당 부분 실현된다. 헌법재판소가 구속력 있는 결정으로 인권의 최소한을 말한다면 인권위는 권고로서 인권의 최대한을 말한다. 우리 특조위가 헌신적인 활동으로 책임소재를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해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다면 특조위 보고서에 담긴 권고는 강제성 있는 어떤 결정보다 힘을 발휘할 것이다."

- 이태원 참사 2주년이 다가오고 있는데 특조위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지.

"그간 참사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이 있었고, 언론도 이를 부추겼다. 이태원이라는 지역과 젊은 세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사회적으로 부족했다. 한동안 유족들이 프레임에 갇혀 가족이 이태원 참사로 죽었다는 소식을 가까운 이들에게 알리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렇게 2년, 남은 이들이 홀로 아픔을 삭이는 방식으로 우리 사회가 참사를 기억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특조위가 치열한 활동을 통해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골목에서 발생한 참사는 누구라도 일상을 살다가 겪을 수 있는 것이고 희생자들이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를 통해 유족을 비롯해 당시 참사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아픔에 공개적으로 공유·공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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