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프레스턴이 '낙후도시'에서 '살기 좋은 도시'가 된 이유
[희망제작소]
청년들이 떠나고 주민들은 늙어가는 지역을 위해 경제를 바꿔야 한다고 외치며 한국을 방문한 지역경제 전문가가 있다. 희망제작소가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서울, 경기, 대전, 전남 영암군 등지에서 개최한 '지속가능한 로컬, 민주주의 경제모델 구축 국제포럼'에 참석차 방문한 미국 싱크탱크 '협력하는민주주의'(The Democracy Collaborative) CWB 글로벌리더 닐 매킨로이(Neil McInroy)다.
▲ 미국의 싱크탱크 '협력하는민주주의'의 닐 매킨로이 CWB 글로벌리더 |
ⓒ 희망제작소 |
- 2012년 무렵 시작되어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크게 개선시킨 결과로 주목받아온 프레스턴시의 지역공동체자산구축(CWB) 모델의 성공요인은 무엇인가?
"프레스턴의 성공요인은 우선 작은 도시 규모를 꼽을 수 있다. 영국에서 CWB 프로그램을처음 시도할 당시 북아일랜드의 대도시인 벨파스트Belfast, 프레스턴 인근의 맨체스터Manchester 같은 큰 도시들도 검토했다. 그에 비해, 프레스턴은 당시 인구 12만 명의 소도시라 테스트베드 같았다.
▲ 희망제작소가 지난 3일 닐 매킨로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이은경 희망제작소 소장, 닐 매킨로이, 배규식 희망제작소 부이사장(사진 좌측부터) |
ⓒ 희망제작소 |
▲ 매튜 브라운 프레스턴 시의회 의장이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지역순환경제 국제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
ⓒ 희망제작소 |
"프레스턴에서 2016~2017년에 좋은 결과가 나오고 영국의 다른 도시에서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CWB의 여러 측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5개 기둥(Five Pillars) 영역을 고안해 방법론을 고도화했다. 이는 2018년 스코틀랜드 노스에이셔(North Ayshire)에 처음 적용됐고 이후 수십 개 지역의 CWB 프로젝트에 활용하고 있다.
▲ CLES 공동체 자산 구축 전략의 다섯 가지 기둥 *출처: CLES/PCC, 2019, pp.8-9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 CLES, Preston City Council. (2019). How we built community wealth in Preston: achievement and lessons. CLES |
ⓒ CLES |
- 지역에서 CWB모델을 적용해 지역공동체 중심의 경제전략을 세우고자 한다면 먼저 5개 기둥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파악해야 한다고 보나?
"그렇다. 최우선적으로 해당 지역에서 5개 기둥의 현황이 어떤지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그 지역의 조달 지출 현황이 어떠한지, 생활임금 정책이 있는지, 지역화폐가 잘 운영되는지, 협동조합이 몇 개나 있으며, 토지와 물적 자산에 대한 주민들의 민주적 소유권은 있는지 등. 그러한 흐름과 현황을 분석하고, 5개 기둥에 해당하는 활동을 더 많이 하기 위해 앞으로 할 일들을 찾아내는 거다.
▲ 닐 매킨로이가 지난 9월 30일 전남 영암군에서 개최된 '지역순환 국제포럼'에서 '공동체자산구축'(CWB)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
ⓒ 희망제작소 |
"2018년에 스코틀랜드 노스에이셔North Ayshire 시의회 의장인 조 컬러닌Joe Cullinane이 'CWB를 훨씬 더 깊고 강하게 추진해보고 싶다. 우리 지역 예산은 프레스턴의 5배고, 더 큰 영역의 정책 권한을 갖고 있으니 그에 맞는 실행 계획을 세워달라'고 제안했다.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두자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차원에서 CWB 정책을 채택하기로 했다.
특히, 스코틀랜드에는 '커뮤니티 플래닝 파트너십'이 15년 동안 운영되어 왔는데, 여기에 이미 모든 앵커들이 포함돼 있어 CWB 정책 추진에 매우 유리한 구도를 가지고 있었다. 웰빙경제 Wellbeing Eeonomy 실행전략으로 CWB 정책을 도입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CWB 전략 실행계획 수립을 의무화하는 기본법안을 내년 6월 통과시킬 예정이다."
- 스코틀랜드가 이렇게 전폭적으로 CWB 정책을 도입한 배경은?
▲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은 파이프Fife 지역이다. 자치정부의 수도인 에든버러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코스로 유명한 세인트앤드류스St. Andrews가 거기 있다. 만약 누군가가 CWB 모델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회적기업을 성장시키고 있으며 협력 지원 시스템을 갖춰 3년 만에 정말 빠르게 성장했다. |
ⓒ www.scotland.org |
- 앵커의 지출을 지역 조달로 전환하고자 할 때, 지역 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중소기업들이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준비가 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조달 계약 규모를 키우는 게 어렵기 때문인데, 이는 CWB 한국모델에 대한 고민 지점 중 하나다.
"매우 어렵지만 중요한 지점이다. 우리의 CWB 전략은 언제나 무한 규모확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를 길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예컨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미드빌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우리가 CWB 실행계획을 세웠는데, 그곳은 규모는 작지만 고품질의 지퍼를 만드는 중소기업들의 터전이었다. 그런데 이런 중소기업들이 록히드나 보잉 같은 대기업에 줄줄이 인수되고 자산이 추출되자 직원들의 소유권과 지역내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CWB를 도입했다.
중소기업도 충분히 계약에 참여해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공공기관 조달의 경우 계약규모를 더 작게 만들어야 한다. '언번들링'(unbundling)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더라도 동등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중소기업 우선구매라든지 장애인고용기업 계약 비율 준수와 같은 규정은 우대 또는 특혜 계약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성장을 장려하는 일이다."
- 기존 조달에 참여하는 계약업체, 기득권을 가진 업체들의 저항이나 반발이 있을텐데, 프레스턴이나 다른 지역, 도시에서는 어떻게 극복했나?
"프레스턴에서도 큰 규모의 기업들이 여전히 조달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많은 대규모 건설계약은 대기업이나 지역의 기득권자에게 돌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역경제 개발사업에 더 많은 업체들이 경쟁력을 갖추고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단순히 '지역에 있는' 농장이고 업체라서 계약을 주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접근이다. 그들도 경쟁에 참여해서 계약을 따낼 수 있도록 해야한다. 경쟁력을 기르고 역량을 갖추도록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부와 자산을 지역으로 옮기는 CWB라는 대담한 전환에서 로컬은 프록시(대리자)다. 즉, 로컬은 부의 순환 가능성이 더 높고, 지역주민을 고용할 가능성이 더 크며, 지역 공급망을 보유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의미지 로컬 현지업체가 항상 최고라는 뜻은 아니다. 또한 지역이 반드시 모든 자원을 현지화(localization)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 반대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
▲ 닐 매킨로이가 지난 2일 대전에서 지역순환경제 국제포럼의 일환으로 열린 사회적경제활동가와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 희망제작소 |
"모든 앵커는 투자하고, 고용하고, 토지와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CWB는 앵커들의 투자와 고용, 보유한 자산이 공익을 위해 활용될 수 있도록 촉진하는 전략이다. 또한 앵커는 그 자체로 '장소성'과 장소의 '리듬'을 만든다. 앵커는 지역의 중요한 경제주체로서 문화적·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이는 CWB 전략을 확산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 현재 한국은 지방도시들의 청년 인구유출과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 CWB 전략이 대응책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인구감소는 지역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상이다. 효과적이지 않은 경제전략이 물리적, 공간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할까. 인구감소는 그래서 권력과 경제의 통제권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더 많이 가지면, 그 지역을 떠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
이번에 한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한국형 CWB 모델을 만들고 있는 전남 영암군을 방문했을 때 청년들이 지역에 정주하지 않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청년들을 유인하는 핵심방법 중 하나가 그들에게 지역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더 많이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토지 소유권, 직원 소유권, 공동체소유권, 기업에 대한 지분 등과 같은 경제활동 권리가 높아지면 자신들의 직업과 지역에 더 큰 의미가 생길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희망제작소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이 기사는 희망제작소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해당 인터뷰는 이은경 희망제작소 소장과 배규식 부이사장이 함께 진행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강이 7년간 떠나지 못한 곳...우린 외국인들에게 뭐라 할까
- [단독] 열 달째 식물인간 원 일병, 협박 간부 '무죄'에 울부짖은 아버지
-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 미국에서 39년간 한글로만 붓글씨, 왜 그랬냐면
- "최현석 셰프 출연 번복, 잠수도..." '흑백요리사' 섭외 비하인드
- 서울교육감 뽑는 날 개봉... 날짜부터 의미심장한 영화
- 흉물되고 주변 슬럼화, 장기 방치 공공기관 건물 '골치'
- "명백한 블랙리스트" 영진위원 징계 시도 논란 일파만파
- 법원서 자료유출, 전직 판사가 낸 증거에 찍힌 '내부용' 문구
- [오마이포토2024] 문재인 전 대통령, '이정이 어머니' 빈소에 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