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해도 늘 '읽씹'이었는데... 알바에게 면접비 준 곳

이서홍 2024. 9. 12. 1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해진 문자 '읽씹'... '추후 협의'에 담긴 불편한 의미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서홍 기자]

 아르바이트 면접 후 받은 면접비.
ⓒ 이서홍
20대 초반, 다양한 경험을 하기 좋을 때라고 모두 이야기한다.

현재 나이 만 스물 둘인 나도 이에 동의한다. 이 나이가 아니라면, 더 이상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힘들 테니 말이다. 또한 젊은 시절의 아르바이트 경험은 나중에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을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구석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스무 살에 대형 음식점 뷔페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다. 그 뒤에도 카페, 헬스장, 식당 등 많지는 않지만 조금씩 견문을 넓혀나가며 여러 일을 경험해봤다.

일을 한 경험보다 더 많은 것은 '지원 경험'이다. 어떤 때는 하루에 3~4통씩 지원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나는 나름 신중하게 결정하는 편인데도 지금까지 수십 번 자기소개를 작성하고 보내기를 반복했다.
 며칠 전 아르바이트 지원을 위해 보낸 문자.
ⓒ 이서홍
아르바이트는 주로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 찾아본다.

사이트 내에서 지원이 가능한 경우라면 기존에 작성한 이력서에 간단한 자기소개를 덧붙여 지원하면 된다. 하지만 사업자가 문자 지원을 희망한다면, 직접 사업자의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야 한다. 대부분 간단한 내용을 원하기 때문에 이력서의 자기소개처럼 구구절절 나를 소개할 필요는 없다.

다만 짧으면서도 임팩트 있게 나를 어필해야 한다는 것이 포인트다. 나는 때때로 이력서를 사진 파일로 저장해서 함께 보내기도 하는데, 그런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요즘은 나의 지원 문자를 확인해 주기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 지금까지 수없이 고민하고 보낸 문자는 80% 이상이 '읽씹'('문자를 읽고도 답이 없었다'는 것의 준말)이었다. 아니, 어쩌면 아예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추후 협의'가 대체 무슨 의미일까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 지원한 내역. 모두 나의 지원을 확인했지만 답변은 없었다.
ⓒ 이서홍
나는 나름 정성을 들여 지원한다고 생각한다. 사업자의 입장에서 성의 없는 한두 줄 문자는 당연히 대응하기 싫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정성이 늘 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지원이 이미 마감되었습니다"라든가 "저희와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라는 식의 아주 짧은 답장도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이제는 답 없는 자기소개, 답 없는 지원이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또 하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공고 내용이 매우 대충인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알바는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럼에도 아르바이트 면접 지원 전, 내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바로 공고 내용이다. 사업자가 한두 줄 지원 문자를 받기 싫은 것처럼, 지원자 역시 성의 없는 공고 내용을 보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특히 개인적으로 가장 불편한 것은 '협의'라는 글자이다. '추후 협의'가 대체 뭘까.

좋게 생각하면 상당히 '열린 기회'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 단어에 내포된 의미가 결코 지원자를 위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필요한 순간에 근무해 주는 사람이 좋겠지만, 근로자는 약속된 시간에 맡은 일을 하고 싶을 뿐이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몇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 '협의'라는 것은, (물론 근로자의 의견도 반영하겠지만) 대개의 경우엔 사업자의 입김이 세게 들어가게 된다. 즉 사업자가 원하는 조건에 나를 맞춰야만 원만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애초에 사업자가 원하는 시간, 업무 내용 등을 명확하게 적은 곳에만 지원한다. 나에게는 이 협의가 참 어렵기 때문이다.

처음 받아본 면접비... 편견이 깨졌다
 면접 당일 저녁에 받은 문자.
ⓒ 이서홍
얼마 전 드디어 나의 지원에 답이 왔었다. 면접을 약속하고, 당일 너무 설렌 탓에 20분이나 일찍 찾아갔다. 대표님은 커피 한 잔을 건네며 나를 맞이해 주었고 나도 밝은 미소로 인사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

면접은 꽤 길어졌다. 점심 약속이 있었던 나는 약속 시간을 미룬 채 거의 1시간 정도 되는 면접을 진행했다. 면접이 종료된 후 자리에서 일어나는 내게 대표님이 봉투 하나를 건넸다. 작지만 여기까지 와주었으니, 면접비를 넣었다고 하셨다.

나는 깜짝 놀란 탓에 "감사합니다. 저 면접비는 처음 받아봐요"라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지금까지 면접하러 가면 공고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않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개인 일정도 취소하고 면접을 갔는데, 내가 지원한 파트는 이미 사람을 구했다면서 혹시 다른 시간대에 일할 수 있느냐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런 내게 봉투에 고이 담은 면접비라니. 비용과는 별개로 너무 감사하고 소중했다. 남들은 별거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수많은 앞서의 그 '읽씹'들 끝에 찾아온 면접비는 왜인지 그동안의 내 정성을 인정받는 느낌이기도 했다.

아쉽게도 내 근무 가능 기간이 애매한 탓에 함께 일할 수는 없었지만, 대표님은 탈락 문자마저도 장문으로 보내주었다. 나 같은 인재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 매우 아쉽다는 칭찬의 말도 넣어서 말이다.

그동안 사업자는 지원자를 성의 없게 대한다고만 여겨왔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을 직접 마주한 셈이었다. 굳어질 뻔한 내 편견을 깨는 좋은 사례였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답 없는 지원 내역을 볼 때면 다시금 속이 쓰리기도 하다.

탈락 사유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사과도 필요 없다(애초에 미안할 일이 아니니 말이다). 단지, 나의 지원에 대해 간단한 인사 혹은 대답이라도 해준다면 나는 미련 없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연락이 올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르바이트생을 모집 중인 사업자라면, 딱 한 마디라도 좋으니 시간을 내 지원한 지원자에게 갑과 을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서 답장을 해줬으면 좋겠다. 지원자는 그 한 마디에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을 꼭 알아줬으면 한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