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체험학습을 교사 혼자 책임지는 나라는 없다
[이경아 기자]
수학여행과 현장체험학습이 학교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일부 학교는 숙박형 체험학습(수학여행)을 교내 프로그램이나 비숙박형 활동으로 대체하고 있고, 아예 체험학습 자체를 하지 않는 학교도 늘고 있다. 과거에는 교육 과정의 자연스러운 일부였던 체험학습이 이제는 교사들에게 '사고 나면 책임지는 위험한 업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안전 우려가 아니다. 사고 발생 시 운영·안전·법률 책임이 사실상 교사 개인에게 집중되는 구조에 있다. 2022년 속초 현장체험학습 사고 이후 학교 현장의 분위기는 급격히 달라졌다. 교사들은 "충분히 안전 교육을 했더라도 사고가 발생하면 결국 교사가 형사 책임을 떠안게 된다"는 불안을 갖게 되었고, 그 결과 체험학습은 교육 활동이라기보다 법적 위험이 큰 업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현재 학교 현장체험학습은 프로그램 기획, 계약, 사전 답사, 숙소·식당 선정, 안전 계획 수립, 차량 점검, 보험 확인, 학부모 민원 대응, 사고 대응까지 대부분을 교사가 직접 수행하는 구조다. 교사는 교육 전문가이지 여행 운영 전문가도, 산업 안전 전문가도, 응급 관리 전문가도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제도는 교사에게 사실상 여행사·안전관리기관·법률책임자의 역할까지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결국 지금의 위기는 '체험학습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어떤 책임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의 문제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교사들이 게을러서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 세상에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안전 관리 책임을 왜 교사에게 떠넘기느냐"고 지적한 것도 바로 이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 것이다.
해외 주요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해 왔다. 영국은 정부 인증제와 전문 기관 중심 체계를 통해 체험학습의 숙박·교통·보험·안전관리 기준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학교는 인증된 기관을 활용하고, 교사는 교육 활동과 학생 인솔에 집중한다. 일본 역시 교육 여행을 지역관광·문화체험·지역경제와 결합한 공공 시스템으로 운영하며 지자체와 관광 기관, 전문 업체가 함께 역할을 분담한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개별 학교와 교사의 책임감에 의존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교사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체험학습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국가 차원의 '학교 체험학습 통합플랫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학교가 학년·교과·예산·안전등급 등을 입력하면 인증된 체험학습 프로그램과 숙박·이동·안전관리 정보를 통합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 급식이 영양 교사가 식단을 구성하고 공공 조달·계약 체계 속에서 운영되듯, 체험학습 역시 교사는 교육 과정 설계와 학생 지도에 집중하고 운영·안전은 인증된 전문 기관이 담당하는 구조로 전환되어야 한다.
문체부와 지자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역 관광 정책과 연계한 체험학습 생태계를 구축하면 학생들은 지역 문화와 생태·역사·산업을 직접 경험할 수 있고, 지역은 안정적인 교육 여행 수요를 확보할 수 있다. 인구 감소 지역과 농산어촌에도 새로운 활력을 제공할 수 있다. 체험학습은 단순한 학교 행사가 아니라 교육·지역관광·지역경제를 연결하는 공공 인프라가 될 수 있다.
학부모 동의 체계 역시 바뀌어야 한다. 단순한 '면책 동의서' 논란을 넘어 위험 고지와 책임 한계, 역할 분담 중심의 참여 동의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해외 사례처럼 이동·숙박·보험·응급대응·건강정보 등을 충분히 공유하고, 학교·운영기관·학부모가 위험과 책임 범위를 함께 확인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 책임 범위의 재정립이다.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아닌 경우까지 교사 개인에게 형사 책임이 집중되는 구조는 결국 체험학습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청 법률 지원 전담 체계와 소송 대응 지원, 교원배상책임보험과 학교안전공제 체계 강화도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학교 밖 배움과 공동체 경험은 여전히 중요하다. 문제는 체험학습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교사 개인의 희생과 책임감에 의존하는 체험학습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이제는 정부와 교육청, 지자체와 전문 기관이 역할을 분담해 함께 책임지는 운영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교사를 지키는 것이 결국 안전한 체험학습을 지키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학생들의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민주연구원 정책브리핑 <학생과 교사의 안전을 함께 지키는 현장체험학습 개편>의 내용을 글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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