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의 외모는 아빠를 닮고, 성격은 엄마를 닮는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이다. 하지만 유전학적으로 따지면, 부모 중 누구의 영향이 더 큰지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최근 유전학과 뇌과학 연구가 밝혀낸 사실에 따르면, 유전자의 발현 강도는 단순히 절반씩이 아니라 유전자마다 다르게 작용한다. 어떤 형질은 부계(아버지) 쪽이, 또 어떤 형질은 모계(어머니) 쪽이 더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 그 차이를 이해하면 ‘유전의 힘’이 얼마나 섬세한지 알 수 있다.
부계 유전이 강하게 작용하는 형질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는 주로 성장과 체격, 대사 기능에 깊이 관여한다. 대표적인 예가 IGF2(인슐린유사성장인자2) 유전자다. 이 유전자는 태아의 성장 속도를 결정짓는 핵심 인자로, 아버지 쪽 유전자가 활발히 작동할수록 태아 체중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어머니 쪽 IGF2는 대부분 ‘메틸화’되어 억제된다. 즉, 아버지 유전자는 아이가 더 크게 자라도록 밀어붙이고, 어머니 유전자는 지나친 성장을 억제해 균형을 잡는 셈이다.
또한 키, 골격, 근육량, 기초대사율도 부계 유전의 영향이 크다. 특히 성장호르몬 수용체(GHR)와 근육 단백질 합성에 관여하는 MSTN 유전자는 아버지 쪽에서 활성이 높게 나타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에서는 아버지의 체격이 큰 가정일수록 아이의 성장판 길이와 뼈 밀도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게 나타났다.

모계 유전이 주도하는 영역
반대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는 지능, 감정 조절, 기억력, 뇌 발달과 밀접하다. 특히 뇌의 해마와 전전두엽에 작용하는 유전자는 대부분 모계 유전자의 영향을 더 받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인간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오직 어머니를 통해서만 전해지기 때문이다. 뇌세포는 에너지 소모가 많은 조직이므로 미토콘드리아의 효율이 곧 학습 능력, 집중력, 기억력에 영향을 준다.
또한 X염색체에 위치한 유전자는 어머니 쪽에서 두 배로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 염색체에는 인지능력, 공감력, 정서 안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하버드대 발달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아동의 언어 능력과 감정 표현력은 어머니의 교육 수준 및 X염색체 유전자의 발현 정도와 가장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결국 “누가 더 강하다”보다 “어떤 형질이냐”가 핵심
유전자는 형질별로 발현이 다르다. 키나 체격처럼 생물학적 성장에 관련된 형질은 부계 유전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강하고, 뇌 기능과 성격, 감정 표현은 모계 유전의 비중이 더 크다. 그러나 이 모든 유전적 경향은 환경의 개입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일란성 쌍둥이조차 성장 환경에 따라 키는 5cm, IQ는 10점 이상 차이 날 수 있다는 결과가 있다. 즉, 유전은 설계도이지만, 결과는 환경이 그리는 완성본이다.

유전의 균형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
최근 유전학에서는 ‘게놈 각인(genomic imprinting)’이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동일한 유전자라도 부모 중 어느 쪽에서 왔는지에 따라 발현 강도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아버지 쪽 유전자가 활성화되는 성장 관련 유전자와 달리, 어머니 쪽 유전자가 우세하게 작용하는 뇌 발달 유전자들이 존재한다. 결국 인간의 발달은 두 유전자의 균형과 조화로 이루어진다.
또한 후천적 요인인 후성유전학(epigenetics)도 중요하다. 식습관, 수면, 스트레스, 운동이 DNA의 발현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흡연하거나 비만이면 정자 DNA의 메틸화가 변화해 아이의 대사 질환 위험이 높아지고, 어머니가 임신 중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아이의 스트레스 반응 유전자가 과민하게 작동한다.

유전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다. 아버지의 유전자는 몸의 틀을 만들고, 어머니의 유전자는 그 틀에 감정과 사고를 채운다. 누가 더 강하다고 단정하기보다는, 각각의 역할이 조화롭게 발현될 때 아이의 성장과 발달이 최적화된다. 결국 부모의 유전은 각각 절반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는 두 개의 엔진이다. 한쪽의 힘만으로는 비행기가 뜨지 않듯, 유전도 균형이 맞을 때 비로소 완전한 인간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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