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고려아연 vs 영풍 경영권 분쟁…기-승-전-법(法)?
캐스팅보터 영풍정밀, 대항 공개매수도 시작
영풍·MBK, '가처분·형사 고소' 반발
"자사주 매입, 주주 아닌 최윤범 이익 위한 것"
경영권을 두고 지분경쟁을 벌이고 있는 영풍·MBK파트너스 연합과 고려아연의 장외 공방이 법률 싸움으로 확대되고 있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등의 효력을 두고 서로 상반된 법적 유권해석을 내놓으면서 양측의 반론이 이어지고 여기의 반박과 재반박이 이어지는 식이다. 실제 이번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양측이 상대방을 상대로 제기한 각종 소송은 배임과 허위사실 유포 등 10여건 넘는다. 경영권 분쟁 이후에도 치열한 법적 다툼이 예고된 가운데, 지금까지의 양측의 주요 쟁점을 살펴봤다.
쟁점1. 자사주 공개매수 배임 vs 묘수
고려아연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2조7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공개매수를 추진하면서 배임 여부가 경영권 분쟁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일반적으로 주주가 아닌 회사 경영진을 위한 자기주식(자사주) 취득은 배임죄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자사주를 취득하기 위해선 미리 수량과 기간을 정해놓고 시장에서 매입해야 한다.
MBK파트너스·영풍은 이에 대해 "2일 법원으로부터 기각된 가처분과 이번 가처분은 성격이 다른 별개의 소송"이라며 "이미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공개매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 자금을 활용해 자사주를 고가에 매입할 경우, 경영권 분쟁 종식 이후 주가가 하락하는 것이 불가피하기에 배임 이슈가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고려아연이 진행하는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은 고려아연 상장 이래 역대 최고가다.
이철송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자기주식을 취득할 때 적정한 가격을 초과한 가격으로 평가해 취득하거나 처분한다면 회사에 손실을 초래하므로 상법 제399조에 따라 이사의 손해배상 책임이 추궁될 수 있고, 다른 요건을 충족한다면 형법 제355조에 따라 배임죄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MBK·영풍은 전날 자사주 공개매수를 결의한 최 회장을 비롯한 이사진을 형사 고소하기도 했다.
반면 고려아연은 전날 법원이 영풍·MBK 연합이 제기한 자기주식 취득 금지, 공개 매수 기간 자기주식 취득의 위법성, 배임 소지, 시세조종 등의 모든 주장을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고려아연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낸 자기주식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이 지난 2일 법원에서 기각됐는데, 영풍은 같은 날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절차를 중지해 달라는 가처분을 또다시 제기했다"며 "시세조종과 시장 교란 의도를 가진 악의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부장판사 김상훈)는 전날 MBK·영풍이 최 회장 등을 상대로 낸 '자사주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고려아연은 법원 판결 직후 이사회를 열어 자사주 공개매수를 결의하고 사모펀드 베인캐피탈과 함께 4일부터 23일까지 총 3조1000억 원을 투입해 주당 83만 원에 발행주식 총수의 18%를 공개 매수한다고 밝혔다.
쟁점2. 자사주 매입한도 6조 vs 568억
고려아연은 2일 총 320만9009주(15.5%), 약 2조7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공개매수 계획을 공시했다. 상법과 자본시장법 등에 따르면 회사가 자기주식을 취득할 때 취득가액 총액은 배당가능이익 한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배당가능이익 한도는 순자산에서 자본금과 결산기까지 적립된 자본준비금·이익준비금, 결산기에 적립해야 할 이익준비금, 미실현이익 등을 차감해서 산정된 금액이다. 이는 실제 계좌에 현금으로 적립해 둔 금액이 아니라 회계상 개념이다. MBK는 이것이 586억원, 고려아연은 약 6조1000억원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금액이 크게 차이나는 건 '임의적립금'의 배당가능이익 포함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MBK·영풍은 고려아연 정관에 따라 이사회 결의로 허용되는 자사주 취득 금액은 차기이월이익잉여금 2693억원 중 올해 중간 배당금 및 이익잉여금 적립액을 제외한 586억원 범위에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 임의적립금을 배당가능이익으로 전환할 수도 있으나 이는 이사회가 아닌 주총 결의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고려아연은 이사회 결의로 6조원 규모의 배당가능이익 한도 내에서 자사주 취득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배당가능이익 한도는 상법에서 공제를 의무화한 항목들만 차감하면 되고, 자사주 매입은 배당가능이익 한도 내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취지다. 법률상 배당 재원 규제를 위반한 자사주 매입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례가 있는 터라 양측의 법정 공방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쟁점3. 영풍정밀 공개매수 가격 vs 물량
MBK·영풍의 영풍정밀 주식 공개매수 결과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향방을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영풍정밀은 고려아연의 지분 1.85%를 보유하고 있다. 영풍·MBK파트너스가 영풍정밀 경영권을 확보하면 최 회장 입장에서는 고려아연 의결권을 3.7% 넘겨주는 것과 같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무게추가 기울어질 수도 있는 수준이다. 현재 최 회장 측은 최창규 회장과 최윤범 회장 등을 포함해 영풍정밀 지분 35.45%를 보유하고 있다. 장형진 영풍 고문 등의 지분율(21.25%) 대비 10%포인트 이상 높다.
이에 MBK·영풍은 지난달 13일부터 이달 6일까지 영풍정밀의 공개 매수를 진행하고 있다. MBK·영풍의 공개 매수가는 최초 주당 2만원이었지만 분쟁이 격화하면서 현재 2만5000원까지 가격이 올라갔다. 지난 2일 현재 영풍정밀 주가는 2만5450원이다. 2일부터 대항 공개 매수를 시작한 고려아연이 제시한 가격은 3만원이다. 다만 목표 매수 물량으로 제시한 주식 수는 393만7500주다. 이는 발행주식총수의 25.0%에 해당한다.
고려아연은 공개 매수에 응모한 주식 수가 매수 예정 수량을 초과하면 목표 물량만큼만 안분비례(비율대로 똑같이 나눔)해 매수할 예정이다. 즉 MBK·영풍은 공매 매수에 응한 잔여 주식을 전부 사들일 계획이지만, 고려아연은 일부만 매수하는 셈이다.
단순 계산으로 영풍정밀 주식 1000주를 보유한 투자자는 57.6%의 확률에 따라 일부만 3만원에 팔 수 있다. 예컨대 영풍정밀 주식 1000주를 보유한 투자자의 경우, 전량을 MBK의 공개매수에 응하면 2500만원을 얻게 되지만, 최 회장 공개매수에 응하면 기대수익은 약 2150만원(직전 3개월 동안 가중산술평균주가 9952원 계산)이다. 고려아연이 공개매수를 마치는 오는 21일 이후 주가가 급락할 수 있어 일부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공개매수는 장외거래라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기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은 보통 장내에서 매도하고 통상 아비트라지(차익 거래)를 노리는 기관이 공개매수에 응하는 경우가 많다. 영풍정밀은 기타주주 대부분이 기관투자자인 고려아연과 달리 개인투자자들이 많이 보유한 종목으로 알려져 있다. 영풍정밀의 공개매수는 4일에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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