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막 살걸" 대장염 수술이 터닝포인트 됐다…이제훈 깜짝 변신
전국 영화관 소개 '제훈씨네'
허혈성대장염 수술 후 결심
"사라져가는 영화관들,
관객 애정하는 공간으로 남길"
" “뉴욕 방문했을 때 오래된 필름 상영 극장들이 있는 게 너무 부러웠거든요. 우리나라에도 그런 공간이 남아있을까? 그런 궁금증이 생겨서 시작한 프로젝트죠.” "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영화관을 대체하고 있는 시대. 올여름 액션영화 ‘탈주’의 256만 흥행 주역 배우 이제훈(40)이 점차 사라져가는 전국의 명물 영화관을 직접 찾아 나서는 유튜버로 변신했다. 올 5월 MBC 드라마 ‘수사반장 1958’ 종영과 함께 문을 연 유튜브 채널 ‘제훈씨네’를 통해서다.
팬데믹 이후 어려움을 겪는 전국 독립‧예술영화관을 중심으로 강릉 다락방 영화관 무명부터 1935년 개관한 국내 두 번째 오래된 광주극장 등 9개 지역 20곳 가까운 영화관 및 문화공간, 독립‧단편영화 감독과 배우들을 소개해왔다. “조회수가 아닌 영화에 대한 진정성이 가득한 유튜브” “잘 몰랐던 독립영화관을 소개해줘서 감사하다” 등 댓글이 잇따른다.
이제훈, 철거된 원주 아카데미극장부터 간 까닭
이공계 대학을 다니다 연기의 꿈을 잊지 못해 24살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연극원 08학번)에 늦깎이 입학한 이제훈. 데뷔 초 ‘파수꾼’(2011) 등 독립영화가 낳은 스타로 부상했다. 신인 시절 광화문 미로스페이스(폐관)‧씨네큐브, 압구정CGV 아트하우스 등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그에게 '제훈씨네'는 꿈을 틔운 초심을 되짚는 의미도 있다.
“극장 가는 걸 좋아하고 영화를 많이 보다 보니 배우까지 꿈꾸게 됐다”는 그에게 사라져가는 극장을 기록하자는 발상은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보이지만, 살인적인 스케줄까지 감내하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데는 사연이 있다. 머릿속에 묵혀뒀던 구상이 급물살을 탄 건 지난해 10월 허혈성 대장염으로 응급수술을 받으면서다.
“사망 동의서에 사인하고 전신 마취하며 잠드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인생 막 살 걸,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 걸 그랬다’. 몸을 추스르자마자 '제훈씨네' 촬영을 시작했죠.”
Q : 첫 방문지를 원주로 정한 이유는.
“더 일찍 시작했다면 원주 아카데미극장을 기록에 남겼을 거잖아요. 극장이 유지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없어지더라도 극장을 사랑했던 분들이 영상으로 추억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죠.”
Q : 영화관이 사라진 거리를 본 감정은.
“독립영화관 뿐 아니라 지방은 멀티플렉스 극장도 없어지고 있더군요. 배우로서 영화 신작이 줄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니까, 위기 의식이 컸죠.”
Q : 영화관 선정 기준은.
“자주 가던 영화관, 추천 받은 곳도 있죠. 다양하게 선별해요. 평소 애니메이션을 잘 안 봤는데, 부천에서 독립 애니메이션 극장과 제작자 분들을 만나며 시야를 넓혔습니다.”
Q : 찾아간 영화관에서 직접 독립영화를 보고, 독립영화 감독‧배우, 영화관 운영자, 지역 예술인을 인터뷰하기도 하는데.
“좋은 영화에 대해, 또 극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같이 생각하고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Q :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관은.
“제주도 단편 영화관 숏트롱, 강릉 다락방 영화관 무명입니다. 그렇게 작은 공간에 좋은 영화로 관객을 불러온다는 게 대단했어요. 독립영화관은 수익 만으로 운영이 힘들어서 부업 하는 분도 많아요. 그저 영화가 좋아서 하는 그 마음에 힘을 보태고 싶죠.”
첫 극장 영화 '장군의 아들3'…"전국 영화관 100곳 이상 소개 목표"
이제훈에게 영화관은 “가장 꾸밈 없는 나 답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는 ‘장군의 아들 3’(1992). 극장에 빼곡한 뒤통수들, 관객들이 같이 웃고 긴장하는 분위기가 8살 꼬마의 눈에 신기하게 보였단다. ‘초록물고기’(1997, 이창동 감독)의 강렬한 감정이 스크린을 뚫고 나온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Q : 극장이 각별한 이유는.
“직업상 항상 남한테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게 되는데, 지칠 때마다 극장에 가면 나를 돌아보고 채워가게 돼요. 다르덴 형제, 켄 로치, 이창동, 홍상수 등 거장 감독 작품을 대리 경험하며 인생을 배웠어요. 또 독립영화는 세상을 깊게 보고 넓게 이해하게 해주죠.”
Q : 전국 영화관 100곳 이상 소개하는 게 목표라고.
“여느 유튜브 콘텐트의 20~30배 제작비를 들이고 있는데 그걸 감당하면서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해 호기롭게 '제훈씨네' 100편 촬영을 목표로 밝혔어요. 평생의 기록이 될 수도 있는 마라톤이죠. 배우 본업 틈틈이 계속해서, 시간이 지나 누군가 들춰봤을 때 ‘참 좋았다’고 공감하는 기록이 되면 좋겠습니다.”
3년 전 단편영화로 연출 데뷔한 이제훈은 감독으로서 차기작도 구상 중이다. 영화관을 직접 운영하는 꿈도 갖고 있다는 그는 “'제훈씨네'를 계기로 영화관이 사람들이 더 많이 찾고 애정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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