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침묵한 흑인소년은 어떻게 ‘공포의 상징’이 됐나
스타워스 다스베이더 목소리 연기로 유명
5살부터 말더듬증… 선생님이 말문 열어
9일(현지시간) 향년 93세로 세상을 떠난 할리우드 배우 제임스 얼 존스는 어린 시절 심한 말더듬증 탓에 10년간 거의 말을 하지 않았던 소년이었다고 한다. 이런 그가 영화 ‘스타워즈’에서 가장 강렬한 캐릭터 다스베이더나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 무파사의 목소리를 연기했다는 사실은 새삼스럽다.
어린 존스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키웠다. 외할머니는 손자가 아빠를 만나는 것을 금지했다. 존스가 1950년대 뉴욕으로 이사할 때까지 부자는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나중에 그들은 여러 연극에 함께 출연했다.
존스가 다섯 살 정도였을 때 외조부모는 미시시피에서 미시간에 있는 농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말더듬증으로 말하기를 멈춘 게 그 무렵이다. 이후 10년간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과묵한 소년’ 존스의 입을 열게 한 건 고등학교 영어교사였다. 교사는 존스가 직접 쓴 시를 반에서 낭송하게 했다. 그 후에도 존스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골라가며 말해야 했지만 이내 말더듬증을 극복하고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돌파구가 된 작품은 권투계를 소재로 인종차별 문제 등을 다룬 ‘위대한 희망(The Great White Hope)’이었다. 68년 10월 브로드웨이에 오른 이 연극에서 존스는 주인공인 흑인 헤비급 챔피언 잭 존슨을 연기했다. 작품은 이듬해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을 비롯해 여러 상을 받았다. 70년에는 영화로 제작됐다. 존스는 영화에서도 같은 배역을 맡았다.
존스는 수십년 동안 주요 연극에 출연하며 인기 있는 극장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햄릿’ ‘맥베스’ ‘리어왕’ ‘오셀로’에서 모두 주연을 맡은 사실만 보더라도 브로드웨이에서 그의 입지가 얼마나 단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77년에는 가수이자 배우, 작가, 인권운동가 등으로 활동했던 실존 인물 폴 로브슨(1898~1976)을 소재로 한 연극에서 주연을 맡았다. 존슨이 연기한 폴 로브슨은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활용해 인종차별에 맞선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 같은 해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TV 미니시리즈 ‘뿌리’에서는 원작자이기도 한 작가 알렉스 헤일리를 연기했다. 헤일리의 가족사를 바탕으로 노예제 등 미국 내 인종 문제를 다룬 작품이었다.
존스는 목소리만으로도 강한 존재감을 내뿜는 배우였다. 울림이 있는 저음은 선악을 넘나들며 신뢰감과 위압감을 선사했다. 스타워즈에서 공포와 의문을 자아내는 다스베이더, ‘라이온 킹’에서 주인공인 아들 심바에게 용기를 주는 아버지. 이들 캐릭터를 인상적으로 만든 건 존스의 목소리였다.
CNN방송이 수년간 뉴스 도입부에 내보낸 ‘디스 이즈 CNN(This is CNN)’도 존스의 목소리였다. 많은 TV 광고가 존스의 목소리를 원했다.
스타워즈가 크게 성공한 뒤 뒤 존스는 ‘다스베이더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로 자주 회자됐다. 정작 그는 자신의 이름을 영화 크레딧에 올리지도 않았다. 단순한 특수효과 작업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큰돈을 번 것도 아니었다. 제작비 약 1100만 달러(147억7190만원)가 투입된 첫 스타워즈에서 그가 받은 돈은 9000달러(약 1209만원)였다.
한번은 영국 BBC방송이 그에게 “다스베이더랑 너무 엮이는 게 불만스럽지 않으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존스는 웃으며 “그 신화, 그 컬트의 일원이 된 것이 좋다”고 답했다. 팬들이 다스베이더의 유명 대사 “나는 네 아버지다”를 해달라고 요청하면 존스는 기꺼이 응했다. 이 대사는 스타워즈에서 가장 인상적인 한마디였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위대한 희망’ 영화판으로 최우수 남우주연상에 후보로 지명됐다. 2011년에는 명예 오스카상을 받았다.
존스는 오랫동안 당뇨병을 앓아 왔다. 그는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그의 에이전트인 배리 맥퍼슨이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존스는 ‘오셀로’에 함께 출연한 줄리엔 마리 헨드릭스와 68년 결혼했다가 4년 만에 이혼한 뒤 배우 세실리아 하트와 82년 재혼했다. 하트는 2016년 먼저 별세했다. 이들 사이에는 외동아들 플린 얼 존스(42)가 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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