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곯는 버스 운전사들.."맹탕국, 그마저도 줄줄" 논란의 급식

이수민 2022. 4. 2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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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고 싶지가 않다니까요. 차라리 2700원짜리 식권과 라면을 바꿔 먹고 말지.”

건더기 없는 국물과 반찬 3개 등이 전부인 버스기사들의 식판. 사진 서울시버스노조


버스 운전사 A씨는 올해 초 서울의 한 차고지 내 식당에서 밥을 먹던 중 두 눈을 의심했다. 밥알 사이에서 쌀포대 자루로 보이는 작고 흰 천 조각이 나와서다. 그는 회차 대기 시간 30분 안에 조금이라도 더 허기를 채우고 싶었지만 식사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A씨는 “위생문제는 물론이고 심지어 식판이 깨져 국물이 줄줄 샐 때도 있다”며 “그간 노조원들이 서울시와 사측(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에 여러 번 문제를 제기했지만 바뀌는 건 없다”고 했다.

서울시버스노조와 사측이 26일 파업을 앞두고 ‘5% 임금 인상’에 극적 합의했으나 “운전기사 ‘부실 급식’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흰 밥에 김치류 반찬 3개…“차라리 라면을”


올해 초 운전사 A씨가 구내식당에서 식사하다 찍은 식판 모습. 밥에 쌀 포대 조각처럼 보이는 이물질이 들어 있다. 사진 서울시버스노조
27일 노조가 중앙일보에 공개한 사진 속 식판에는 흰 밥과 김치류 반찬 3개만 배식될 때도 있었다. 국은 노조 측의 설명처럼 건더기 없는 맹탕처럼 보였다. 반찬은 김치와 어묵·단무지·두붓국 등이 대부분이며, 육류가 나오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한 노조원은 서울시버스노동자와 관련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된장국은 너무 짜다. 나머지 반찬은 수준 이하”라고 하소연했다.

부실한 급식 때문에 아예 끼니를 거르거나 라면으로 때우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게 노조 측의 설명이다. A씨가 문제를 제기한 구내식당 또한 식권 한장에 라면 한 개 또는 삶은 계란 3개를 팔고 있다. A씨는 “식권 한장의 가격이 2700원이어서 라면과 바꿔 먹긴 아깝지만 그래도 급식을 먹는 것보단 낫다는 동료들이 많다”며 “가뜩이나 식사가 부실한데 위탁업체에서 라면, 삶은 계란까지 비싸게 팔아 이윤을 남기는 것 같다”고 했다.


운전사들 “된장국 짜고, 반찬은 수준 이하”


서울시 한 공립초등학교 급식 사진. 학교 홈페이지 캡처
수년째 부실 급식 논란이 이어지게 된 데는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된 식대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서울 시내버스 노동자들의 밥값은 서울시가 65개 버스회사들에게 지급하는 재정지원금에 포함돼 있다. 서울시는 표준운송원가를 책정해 지원하는데 이때 식대는 운전직 인건비의 ‘기타 복리’ 항목으로 들어간다. 표준운송원가란 버스 한 대를 하루 동안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총비용을 말한다.

2020년 서울시가 공개한 ‘시내버스 표준원가에 따른 운송비용 정산지침’에 따르면 버스 한 대당 기타 복리는 2020년 12월 현재 1만1236원이다. 버스 한 대당 운전사가 2.85명인 것을 감안할 때 운전사 한 명이 받게 되는 일일 기타 복리비는 4000원 안팎이다. 이마저도 운전사 피복비와 경조금, 식대가 합산된 것이어서 이보다 훨씬 적은 식대가 책정됐다.


운전사 한 끼 3200원…초등생보다 39% 낮아


2020년 서울시 '시내버스 표준원가에 따른 운송비용 정산지침'에 나온 버스 한 대당 하루 기타복리 비용. 기타 복리비는 피복비, 경조사비, 식대가 합산된 금액이다. [서울시]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에 따르면 현재 가입 회사의 운전사 한 끼 평균 식사 비용은 3200원 수준이다. 서울시교육청에서 2022년 책정한 초등학생 1인당 한 끼 단가(5256원)보다 2056원(39%) 낮다.

서울의 한 구내식당을 운영중인 버스회사 관계자는 “식사 질을 높이기 위해 단가를 올리려 해도 지원되는 예산이 워낙 한정적”이라며 “위탁 업체 입장에서는 계약 때 3년간 식당 노동자들의 인건비를 올리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들어왔는데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자 식사 단가에서 절감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식당 운영위원회’ 결성에도 진전 없어


조장우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왼쪽)과 박점곤 서울시버스노동조합 위원장이 서울시버스노동조합 총파업을 하루 앞둔 25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열린 2차 조정회의에 참석해 있다. [뉴스1]
노조 측은 “그동안 식사 질 개선을 위해 사측·서울시와 협의해 왔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7월 ‘노사 조정안’에 따르면 “노·사·정으로 구성된 TF 형식의 ‘식당 운영위원회’를 결성하고 모든 회사에서 양질의 식사가 동일하게 제공될 수 있도록 공동배식시스템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실행되지 않고 있다.

심준형 서울시 버스노조 노무사는 “서울시에서 버스회사들을 준공영제로 운영하고 있는 만큼 각 버스회사에 균일한 식사 질이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기타 복리에서도 다른 복리후생 관련 비용과 식대를 분리해 철저히 관리·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수민 기자 lee.sumi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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