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기 금리 역전' 경기 침체 전조일까
미국 국채의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잇따라 발생하며 경기 침체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장단기 금리 역전은 통상 경기 침체의 전조 현상으로 여겨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RB)가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뜻하는 ‘빅스텝’을 시사하는 등 글로벌 금융 시장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3월 29일(현지 시각) 오후 한때 뉴욕 채권 시장에서 국채 10년물과 2년물 금리가 둘 다 연 2.39%대에서 혼조세를 보이다 2년물 금리가 미세하게 더 높은 현상이 수초간 이어졌다. 2년물 금리가 10년물을 앞지른 건 미중 무역분쟁이 빚어졌던 2019년 9월 이후 처음이다. 통상 금융 시장에서 금리 역전 현상의 바로미터로 삼는 채권이 2년물과 10년물이다. 10년물은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대표적인 시장 금리다. 2년물은 미 연준의 통화 정책에 민감한 특성을 보인다.
장단기 금리 역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 28일 미 국채 5년물 금리는 2.66%로 30년물 금리(2.64%)를 앞질렀다. 5년물 금리가 30년물 금리를 웃돈 것도 2006년 이후 약 16년 만에 처음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앞서 3월 초에도 5년물과 10년물 금리 간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장단기 금리 역전이 어떻게 경기 침체 논란으로 연결되는 걸까.
채권은 만기와 이자(쿠폰)가 정해져 있는 금융 상품이다. 모든 금융 상품의 가치 평가는 미래 현금흐름을 적절한 할인율로 할인해 현재 가치로 환산해 평가한다. 채권은 분자인 현금흐름이 고정돼 있는 반면, 분모인 시장 금리는 자꾸 변한다. 이런 이유로 채권 가격과 금리는 서로 반대로 움직인다. 금리가 하락하면(분모 크기 감소) 채권 가격이 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통상 만기가 긴 장기 채권은 기간에 대한 위험 프리미엄이 붙는다. 긴 만기 동안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으므로 투자자들이 위험에 대한 대가(프리미엄)를 요구한다. 이 때문에 다른 변수가 없다면 미국 장기채 금리는 단기채보다 높아야 한다.
그럼에도 장단기 금리 역전이 빚어지는 까닭은 뭘까. 이는 그만큼 시장 참여자들이 경기의 단기 방향성을 불확실하게 본다는 의미다. 경기 전망이 불투명하면 투자자들은 단기채 투자를 꺼려(수요 감소) 단기채 금리는 상승한다(채권 가격 하락). 반면, 상대적으로 장기채 투자는 수요가 늘어난다. 결과적으로 장기 채권 금리는 하락하고(채권 가격 상승) 장단기 금리 차이가 축소되거나 아예 역전된다.
과거 사례를 돌아보면 장단기 금리 역전은 경기 하강의 전조로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금리 전문가인 캠벨 하비 듀크대 교수 분석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7번의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졌고 그 후 5~23개월 뒤에 경기 침체가 시작됐다.


▷섣부른 투자 ‘손절’은 리스크일 수도
그러나 최근에는 장단기 금리차 축소를 경기 불황의 전조로만 보기 힘들다는 반론이 만만찮다.
우선, 서로 다른 만기를 가진 장단기 채권 간 금리가 엇갈리는 현상이 목격된다. 금융 시장에서 장단기 금리 역전의 벤치마크로 삼는 지표는 2년물과 10년물 간 스프레드(금리 격차)다. 이 격차가 좁혀지면 금융 시장에서는 경기 침체의 전조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최근 금융 시장에서 더욱 주목받는 또 다른 지표는 3개월과 10년물 스프레드다. 미 연준의 다수 보고서에서 이 지표가 미래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장에서는 3개월과 10년물 스프레드를 함께 살핀다. 실제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은 미국채 10년물과 3개월물 수익률 스프레드를 선호 지표로 삼는다. 미 연준 역시 지난 3월 25일 보고서에서 경기 둔화에 대한 전조는 2년 미만의 단기 국채 사이 금리 격차에서 더 잘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최근 3개월과 10년물 금리 격차는 더 벌어져 투자자 사이에 진짜 경기 침체가 임박했는지 의구심을 키웠다. 지난 3월 28일 10년물 금리는 2.55%로, 2019년 4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지난 2년 동안 공격적인 완화 정책을 폈던 연준의 채권 매입이 중단(채권 수요 감소)되면서 10년물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수익률 곡선이 가팔라진 것이라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최근 장단기 금리 역전은 장기 금리가 곤두박질친 것이 아니라 단기 금리의 가파른 상승으로 빚어진 측면이 강하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과거 장단기 금리 역전 패턴은 대부분 장기 금리 곡선이 추락하면서 만들어졌다. 이런 경우가 경기 침체의 전조로 해석되는 것이 보통이다. 경기 전망이 불투명할 때 투자자들이 단기채 투자를 꺼려 단기채 금리가 조금씩 상승하던 중 장기채 금리가 뚝 떨어지면서 금리 역전 패턴이 빚어졌다.
최근에는 장기 금리의 하락보다는 단기 금리 급상승으로 금리 역전이 목격된다. 여기에는 여러 해석이 따른다. 미 국채의 장기 금리가 낮게 유지되는 가운데 강력한 긴축 기조와 채권 시장의 수급(수요와 공급) 불균형 때문에 단기 금리가 상승한 것이라는 해석이 주된 골자다. 다시 말해, 단기 금리 상승으로 빚어진 금리 역전 현상을 두고 반드시 경기 침체의 전조로 볼 수 있느냐는 반박이다. 미 국채 장기 금리가 낮게 유지되는 것을 두고 미 정부의 의도된 결과라는 시각도 뒤따른다. 중국 등 전 세계에 막대한 규모의 달러 부채(미 국채)가 풀려 있는 가운데 금리가 큰 폭으로 뛴다면 미 정부의 원리금 상환 압박이 고조될 수밖에 없어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과 실물경제 간 상관관계가 약해졌다는 주장도 눈길을 끈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7년 발표한 ‘자산 가격 경로를 통한 통화 정책의 유효성에 대한 고찰’ 연구보고서에서 “자산 가격 경로를 통해 금리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감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섣불리 투자를 ‘손절’하는 것은 오히려 리스크가 따르는 판단일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989년 장단기 수익률(금리) 곡선 역전 이후 1990년 중반 경기 침체가 시작되기 전까지 주가는 이전보다 30% 이상 올랐다. 2005년 말 수익률 곡선이 역전됐을 때도 주식에서 안전자산으로 갈아탔던 투자자들은 S&P500지수가 25% 이상 더 오르는 것을 눈뜨고 지켜봐야 했다. 거시경제 지표도 아직 추세가 뚜렷하지 않다. 미 연준의 경기 침체 확률 지표는 6.1%로,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기준선(30%)을 크게 밑돌았고 경기 모멘텀을 대변하는 경기 서프라이즈지수(ESI)도 선진, 신흥 주요국 모두 아직 우상향 추세다. 박석중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지정학적 위험이 야기한 험난한 경로가 예상되지만 경기 침체를 예단해 급격한 위험 회피 포지션으로 전환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배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53호 (2022.04.06~2022.04.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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