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로 세탁기 돌려..현대기아 주도한 V2L 영향력 커진다


현대 아이오닉5

현대차는 아이오닉 5 출시를 앞두고 세계 최초로 V2L(Vehicle to Load) 기능을 탑재했다. V2L은 배터리에 저장된 전력을 외부 전자장치에 공급하는 기능이다. 당시 이 기능에 대해 말이 많았다. 세계 최초는 닛산 리프라는 주장부터 외부 인버터를 사용해 이미 전력을 사용하고 있어 새로운 것이 없다는 내용이다.

닛산 리프 V2X

닛산은 리프 2세대를 공개하며 V2X(Vehicle to Everything)를 말한 적이 있다. 자동차와 모든 것을 연결한다는 의미다. 실제로는 조금 제한적인 범위다. 해당 기능이 마련된 건축물이나 시설에만 사용할 수 있고 닛산이 제공하는 인버터만 이용할 수 있다. 이외의 인버터를 이용하면 제조사는 보증하지 않는다. 이렇게 제약이 있고 V2L보다는 V2G(Vehicle to Grid), 즉 전자기기보다는 전력망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출처 현대차

현대차그룹 전기차가 제공하는 V2L은 기존 인버터를 사용해 전력을 공급한다는 측면에서는 같다. 차이점은 제조사 보증이다. 보증은 말 그대로 어떤 것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새로운 기능은 경쟁자와 차별화할 수 있는 장점이지만 그만큼 위험이 따른다. 어떠한 문제점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 사용하면서 축적된 데이터가 없어 제조사가 예측한 위험이 아닌 경우 해결이 늦다. 현대차그룹은 V2L 기능을 사용해도 배터리를 보증해준다.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다.

제네시스 GV70 전동화 모델

국내에 선보이는 전기차 중 V2L 기능을 제공하는 것은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 모델로는 현대 아이오닉 5, 기아 EV6, 제네시스 G80 전동화, GV70 전동화, GV60이다. 현대 포터 2 EV와 기아 봉고3 EV는 해당 기능이 없다. V2L 기능을 통해 최대 3.6kW 전력을 외부로 공급할 수 있다. 일반 가정 시간당 평균 전기 소비량(3kW)보다 많다. 세탁기와 냉장고를 한 번에 사용할 수 있고 헤어드라이어나 캡슐 커피 머신처럼 전력 소비량이 높은 기기도 사용할 수 있다. 지금 국내에서는 3.6kW만 가능하지만 앞으로 관련 데이터가 더 쌓이고 전기차 발전이 빠르게 늘면서 이른 시간 내에 더 큰 전력을 사용할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로 포드 전기 픽업트럭인 F-150 라이트닝의 경우 9.6kW까지 가능하다.

다른 전기차도 충전할 수 있다. 배터리를 이용해 다른 전기차를 충전하는 V2V(Vehicle to Vehicle) 충전은 아이오닉 5 이전부터 가능했던 기능이다. 과거 아이오닉 일렉트릭부터 현대차는 ‘찾아가는 충전 서비스’를 선보였다. 현재는 아이오닉 5를 이용해 충전 속도를 높인 찾아가는 급속 충전을 지원하는 서비스를 제주도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V2L 기능 보급은 새로운 모빌리티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지금의 자동차는 목적지 이동의 개념이 강하다. V2L 기능을 이용하면 업무를 볼 수 있는 사무실, 영화나 차 한 잔 등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물론 지금도 가능하지만 V2L을 이용하면 더 쉽고 간편하게 가능하다. 이에 따라 자동차용 오피스를 위한 가구부터 집에 맞춘 생활 가전이 아닌 전기차 전용 제품이 나올 수 있다.

테슬라 모델 S

전기차 대중화를 이끈 테슬라는 아직 V2L을 지원하지 않는다. 기술력이 달려서는 아니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모델 3와, 모델 Y 설계 시 해당 기능을 고려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테슬라가 V2L을 지원하지 않는 이유는 ESS 사업과 미국 시장의 특성으로 보인다. 테슬라는 솔라루프(태양광 발전)와 파워월이라는 ESS(Energy Storage System, 에너지 저장 장치)를 선보이고 있다.

출처 테슬라

파워월은 에너지를 저장하는 저장소로 가정에 전기가 끊겼을 때 전력을 공급해준다. 거대한 보조배터리로 생각하면 편하다.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발전기와 비교해 연료 충전, 소음, 환경문제 등 다양한 이점이 있다. 솔라루프를 이용하면 태양광으로 전력을 충전할 수 있다.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의 경우 단전이 되면 복구하는 데 시간이 국내보다 많이 걸린다. 지난해 2월 텍사스에 유례없는 한파로 전력 수요량이 폭증, 이를 대비 못한 발전소가 중단돼 대규모 정전이 일어나는 등 홍역을 앓았다. 이럴 때 ESS가 빛을 발한다. 미국의 한 매체에서는 텍사스 한파를 보도하며 파워월이 있는 집과 아닌 집을 비교해서 보여주기도 했다. ESS는 테슬라의 수입원 중 한 가지로 전기차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테슬라로서는 V2L이 이런 청사진에 방해가 됐을지도 모른다.

미국은 ‘소송의 나라’로 불릴 만큼 기상천외한 이유로도 소송을 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테슬라 고객을 두고 ‘베타테스터’라고 말하기도 한다. 검증이 덜 된 기술도 소비자에게 제공해 데이터를 얻어 생긴 불명예 별명이다. 자율주행 관련 사고, 기능 불량으로 인한 리콜 등 다양한 문제를 가진 테슬라로서는 최대한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V2L 기능을 이용해 배터리에 문제가 생길 경우 회사가 부담해야 할 액수가 크고 인명피해가 날 경우 회사 손실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진다. 테슬라는 보증서에 ‘차량을 전기 공급원으로 사용하지 말 것’이라고 명시했다.

출처 테슬라

회사의 앞날을 고려해 지금까지 V2L을 지원하지 않았던 테슬라도 마음을 바꿨다. 앞으로 선보일 사이버트럭에서는 V2L 기능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포드와 GM이 자사 전기 픽업트럭을 출시하며 V2L은 물론 V2G까지 선보이고 있다. 픽업트럭 시장이 큰 미국에서 전기 픽업트럭 시장을 선점하려면 당연한 선택으로 보인다.

전우빈 에디터 wb.jeon@cargu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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