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사유상의 방' 그가 만들다..서로 빤히 보이는 '설화수의 집'

유지연 2022. 3. 2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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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설계한 최욱 작품

“은근히 북촌에 제대로 쉴 수 있는 곳이 없어요. 관광객들은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도 북촌에 와서 서울 풍경을 보며 거닐고 차도 마실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았어요. 여기가 가로로 50m, 세로로 50m에 3층 건물이니, 한옥과 마당, 양옥과 정원 등을 거닐면 약 500m 산책길이죠. 실내에 꾸민 예술문화공원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지난 11월 개관한 북촌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대표 매장)와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 일명 ‘설화수의 집’으로 불리는 이곳은 1930년대 한옥과 1960년대 양옥 두 채를 터 개보수해 만들었다. 개보수와 인테리어 설계·디자인을 맡은 원오원 아키텍스 최욱(58) 대표는 이곳을 ‘쉼터’라고 표현했다. 주민들이든, 외국인 관광객이든 서울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서다.

지난해 11월 아모레퍼시픽이 서울 종로구 북촌에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와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을 열었다. 1930년대 한옥과 1960년대 양옥이 있던 이곳을 재탄생 시킨 건축가 최욱 원오원 아키텍스 대표가 18일 중앙일보와 만났다. 최욱 대표가 과거와 현재 사이에 서 있다. 김현동 기자


최욱 대표는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학고재 갤러리 등을 설계했다. 최근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반가사유상 상설전시관인 ‘사유의 방’을 설계해 화제가 됐다.


한 공간에 한옥과 양옥 마주 보게 배치


약 4년 전 쯤 한옥을 샀다는 아모레퍼시픽 측의 연락을 받고 와본 이곳은 작고 어두운 느낌의 한옥이었다. 꽃집과 분식집, 옷가게 등이 들고 나며 작은 채로 쪼개져 있는 데다, 소방 도로를 만들면서 많이 잘려나간 말 그대로 볼품없는 곳이었다. 최욱 대표는 “신축이 낫겠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서경배 회장과의 이야기 끝에 그래도 동네의 유산이니 보전했으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길가에 면한 한옥과 뒤로 보이는 양옥, 두 채를 연결해 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사진 김인철]

다만 시민들에게 의미가 있으려면 규모를 더 키워야 했다. 6m 축대로 나뉘어 보이지도 않았던 뒤편 양옥이 마침 매물로 나왔다. 운명처럼, 30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지어진 두 건물이 마주 보기 시작했다.

공사는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일단 두 건물의 높이 차이가 컸다고 한다. 지금은 흔적만 남은 축대의 위용이 두 건물 사이의 거리를 가늠케 했다. 양옥의 아래층을 증축하고, 축대를 일부 허물어 한옥과 연결했다. 그 사이엔 중정을 두어 정영선 조경가의 손길을 더했다.

최욱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도 바로 이 연결 부위다. 최 대표는 “전통 한옥을 보면 채와 마당 채와 마당이 끝없이 반복되는 구조다. 채와 채가 서로 마주 보니 건너편 사람의 뭐 하는지 다 보인다. 이런 개방감은 일본·중국과 차별화되는 우리 가옥만의 특징이다. 한옥과 양옥이 중정을 두고 마주 보는 식으로 설계한 이유”라고 했다.

최욱 대표는 한옥과 양옥이 연결된 부분을 두고 이 건축물의 '백미'라고 표현했다. 두 집을 나누고 있었던 6m 축대의 흔적이다. 김현동 기자


연식이 다른 두 건물이 만나 의미도 더해졌다. 최 대표는 “아파트에 주로 살다 보니 젊은 사람들은 한옥은 물론 양옥도 잘 모른다”며 “우리나라 근대 주거사 100년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좋겠다 싶었다”고 했다.


“재생 건축, 창의적 복원 있어야”


최근 설화수의 집처럼 신축이 아닌 옛 건물을 살려 보수하는 재생 건축 사례가 많다. 물론 옛것을 단순히 복원하는 것만으로는 아름답지 않다. 시간이 쌓은 귀한 흔적은 살리면서도, 현대적 미감을 더해야 한다.

최 대표는 “한옥의 본질은 목구조고, 그중에서도 바닥과 천장이라고 생각한다. 온돌이 있는 바닥과 대청이 있는 지붕은 옛것 그대로 살리고, 중간의 한지 창호와 나무 창살은 필요에 의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유리를 더해 마감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설화수의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받는 느낌은 개방감이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임에도 탁 트여 사방이 시선에 잡힌다.

한옥의 본질인 바닥과 지붕의 미감을 살리되, 기둥과 기둥 사이의 벽을 유리로 마감해 개방감을 더했다. [사진 김잔듸]


양옥도 기둥이나 외벽 등 주요 구조부는 거의 살렸다. 사이사이 조명 등이나 타일 등 아름다운 옛것의 흔적도 남겼다. 오설록 티하우스 3층의 ‘바 설록’ 입구의 육중한 나무문이나 내부 자개 장식장 등도 옛날 그대로다.

1960년대 양옥의 육중한 나무 문을 그대로 활용했다. 유리에도 수선한 흔적이 보인다. 김현동 기자


공간 재생의 과정은 재생할 것과 버릴 것 사이 치열한 고민의 연속이다. 최 대표는 “여행이 발달하면서 오래된 것의 관광 효과가 두드러지고 너도나도 옛날 것을 고치기 시작했다”며 “다만 옛것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듯 공간 재생도 진정성이 없으면 오래 못 간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전통은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무엇보다 창의적 복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옥 내부에 있었던 자개장을 활용해 내부 장식장을 만들었다. 김현동 기자

"젊은이들에게 현대와 과거 서울 보여줄 공간"


최욱 대표는 "북촌에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오는 만큼 우리 문화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김현동 기자
주민들을 위한 ‘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공간의 시작이었듯, 설화수의 집은 열린 공간이다. 최욱 대표는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현대와 과거의 서울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곳의 지리적 위치도 절묘하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서울의 배꼽에 해당하는 가회동은 서울 사대문을 다 아우를 수 있는 장소다. 실제로 건물 옥상에 올라보면 두 궁과 사대문, 성곽, 산이 다 보인다고 한다.
공간 곳곳에 큰 창을 둬 밖의 풍경을 안으로 자연스레 끌어오는 우리 전통 주거의 정서를 구현하고자 했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굳이 옥상에 오르지 않고 실내 공간만 둘러보아도 어디에서나 바깥 풍경이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개방감을 염두에 두고 공간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최욱 대표는 “밖의 풍경을 실내로 들여와 자연스럽게 즐긴다는 우리 전통 가옥의 미감을 담았다”며 “이곳에 와 어쩐지 편안함을 느낀다면 한국적인 정서에 공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설화수의 집에서 우리 공간의 미감을 느껴간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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