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사유상의 방' 그가 만들다..서로 빤히 보이는 '설화수의 집'
“은근히 북촌에 제대로 쉴 수 있는 곳이 없어요. 관광객들은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도 북촌에 와서 서울 풍경을 보며 거닐고 차도 마실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았어요. 여기가 가로로 50m, 세로로 50m에 3층 건물이니, 한옥과 마당, 양옥과 정원 등을 거닐면 약 500m 산책길이죠. 실내에 꾸민 예술문화공원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지난 11월 개관한 북촌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대표 매장)와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 일명 ‘설화수의 집’으로 불리는 이곳은 1930년대 한옥과 1960년대 양옥 두 채를 터 개보수해 만들었다. 개보수와 인테리어 설계·디자인을 맡은 원오원 아키텍스 최욱(58) 대표는 이곳을 ‘쉼터’라고 표현했다. 주민들이든, 외국인 관광객이든 서울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서다.

최욱 대표는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학고재 갤러리 등을 설계했다. 최근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반가사유상 상설전시관인 ‘사유의 방’을 설계해 화제가 됐다.
한 공간에 한옥과 양옥 마주 보게 배치
약 4년 전 쯤 한옥을 샀다는 아모레퍼시픽 측의 연락을 받고 와본 이곳은 작고 어두운 느낌의 한옥이었다. 꽃집과 분식집, 옷가게 등이 들고 나며 작은 채로 쪼개져 있는 데다, 소방 도로를 만들면서 많이 잘려나간 말 그대로 볼품없는 곳이었다. 최욱 대표는 “신축이 낫겠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서경배 회장과의 이야기 끝에 그래도 동네의 유산이니 보전했으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길가에 면한 한옥과 뒤로 보이는 양옥, 두 채를 연결해 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사진 김인철]](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203/24/joongang/20220324050147647tutf.jpg)
다만 시민들에게 의미가 있으려면 규모를 더 키워야 했다. 6m 축대로 나뉘어 보이지도 않았던 뒤편 양옥이 마침 매물로 나왔다. 운명처럼, 30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지어진 두 건물이 마주 보기 시작했다.
공사는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일단 두 건물의 높이 차이가 컸다고 한다. 지금은 흔적만 남은 축대의 위용이 두 건물 사이의 거리를 가늠케 했다. 양옥의 아래층을 증축하고, 축대를 일부 허물어 한옥과 연결했다. 그 사이엔 중정을 두어 정영선 조경가의 손길을 더했다.
최욱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도 바로 이 연결 부위다. 최 대표는 “전통 한옥을 보면 채와 마당 채와 마당이 끝없이 반복되는 구조다. 채와 채가 서로 마주 보니 건너편 사람의 뭐 하는지 다 보인다. 이런 개방감은 일본·중국과 차별화되는 우리 가옥만의 특징이다. 한옥과 양옥이 중정을 두고 마주 보는 식으로 설계한 이유”라고 했다.

연식이 다른 두 건물이 만나 의미도 더해졌다. 최 대표는 “아파트에 주로 살다 보니 젊은 사람들은 한옥은 물론 양옥도 잘 모른다”며 “우리나라 근대 주거사 100년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좋겠다 싶었다”고 했다.
“재생 건축, 창의적 복원 있어야”
최근 설화수의 집처럼 신축이 아닌 옛 건물을 살려 보수하는 재생 건축 사례가 많다. 물론 옛것을 단순히 복원하는 것만으로는 아름답지 않다. 시간이 쌓은 귀한 흔적은 살리면서도, 현대적 미감을 더해야 한다.
최 대표는 “한옥의 본질은 목구조고, 그중에서도 바닥과 천장이라고 생각한다. 온돌이 있는 바닥과 대청이 있는 지붕은 옛것 그대로 살리고, 중간의 한지 창호와 나무 창살은 필요에 의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유리를 더해 마감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설화수의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받는 느낌은 개방감이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임에도 탁 트여 사방이 시선에 잡힌다.
![한옥의 본질인 바닥과 지붕의 미감을 살리되, 기둥과 기둥 사이의 벽을 유리로 마감해 개방감을 더했다. [사진 김잔듸]](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203/24/joongang/20220324050150146pqzy.jpg)
양옥도 기둥이나 외벽 등 주요 구조부는 거의 살렸다. 사이사이 조명 등이나 타일 등 아름다운 옛것의 흔적도 남겼다. 오설록 티하우스 3층의 ‘바 설록’ 입구의 육중한 나무문이나 내부 자개 장식장 등도 옛날 그대로다.

공간 재생의 과정은 재생할 것과 버릴 것 사이 치열한 고민의 연속이다. 최 대표는 “여행이 발달하면서 오래된 것의 관광 효과가 두드러지고 너도나도 옛날 것을 고치기 시작했다”며 “다만 옛것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듯 공간 재생도 진정성이 없으면 오래 못 간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전통은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무엇보다 창의적 복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젊은이들에게 현대와 과거 서울 보여줄 공간"

![공간 곳곳에 큰 창을 둬 밖의 풍경을 안으로 자연스레 끌어오는 우리 전통 주거의 정서를 구현하고자 했다. [사진 아모레퍼시픽]](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203/24/joongang/20220324050155090ilxy.jpg)
굳이 옥상에 오르지 않고 실내 공간만 둘러보아도 어디에서나 바깥 풍경이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개방감을 염두에 두고 공간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최욱 대표는 “밖의 풍경을 실내로 들여와 자연스럽게 즐긴다는 우리 전통 가옥의 미감을 담았다”며 “이곳에 와 어쩐지 편안함을 느낀다면 한국적인 정서에 공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설화수의 집에서 우리 공간의 미감을 느껴간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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