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루-3루 다 되는 LG 문보경, '1군이 체질'
[양형석 기자]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179안타 111득점을 기록하며 역대 신인 최다득점 기록을 세운 이정후(키움 히어로즈)나 루키 시즌에 29개의 타구를 담장 밖으로 넘겨버린 강백호(KT위즈)는 '돌연변이'다. 이들을 비교대상으로 삼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뜻이다. 자고로 경험이 부족한 신인들은 상대응원단의 소음이나 선배들이 내뿜는 기에 눌려 본인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로 고교시절 아시아 청소년 야구선수권대회에서 홈런왕을 차지했던 '초고교급 타자' 김대한(두산 베어스)은 루키 시즌 18번의 타격기회에서 9개의 삼진을 당하며 단 하나의 안타도 때려내지 못했다. 고교 시절부터 파워 만큼은 강백호에 뒤지지 않는다고 평가 받았던 한동희(롯데 자이언츠) 역시 강백호가 데뷔 석 달 만에 때린 홈런을 따라잡기까지 2년하고도 1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물론 한동희는 18일 현재 홈런 공동 2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에 소위 '슈퍼루키' 소리를 들으며 프로에 입단한 것은 아니지만 유독 1군 무대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는 선수도 있다. 야구팬들은 이런 선수를 흔히 '1군체질'이라고 부른다. 1군에서의 첫 시즌이었던 작년 107경기에 출전하며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친 후 1군에서의 두 번째 시즌에 경험 많은 선배들은 물론 외국인 선수의 자리까지 넘보고 있는 LG 트윈스의 '슈퍼 유틸리티' 문보경이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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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보경 '2타점 적시타' 14일 오후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KBO리그 SSG 랜더스 대 LG 트윈스 경기. 5회 말 2사 1,2루 때 LG 문보경이 2타점 적시타를 치고 있다. |
| ⓒ 연합뉴스 |
야구에서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의 존재는 대단히 중요하다.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2010년대 중·후반 왕조시대를 열었던 두산은 뛰어난 수비와 빠른 발을 갖춘 류지혁(KIA타이거즈)이라는 유틸리티 플레이어가 있었다. 통합 4연패를 달성하던 시절의 삼성 라이온즈에는 조동찬(삼성 수비코치)이 있었고 2010년대의 신흥강자 NC 다이노스에는 지석훈이라는 성실한 유틸리티맨이 있었다.
하지만 LG는 긴 암흑기를 지나 가을야구 단골손님으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확실한 유틸리티 플레이어가 없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LG에서 활약했던 손주인(삼성 2군 수비코치)은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자원이지만 LG시절에는 주로 2루수를 전담했다. 무엇보다 LG에서의 5년 동안 연 평균 116경기에 출전했던 주전급 선수 손주인을 유틸리티 자원이라고 분류하기는 쉽지 않다.
돌고 돌아 지금은 '잠실라이벌' 두산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강승호 역시 LG에서 심혈을 기울여 육성하려 했던 유틸리티 자원이다. 천안북일고 시절 유격수로 활약했던 강승호는 프로 입단 후 오지환이라는 벽에 막혀 3루와 2루 등 여러 포지션을 떠돌면서 자연스럽게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유틸리티맨이 됐다. 하지만 강승호는 LG가 아닌 SK 와이번스와 두산에서 좋은 활약을 하며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LG를 위해 FA 총액 98억 원을 포기(?)하며 화제를 모았던 김용의(LG스카우트)는 중견수와 1루수를 오가는 다소 독특한 유틸리티 자원이었다. 내야와 외야를 오갈 수 있는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크리스 테일러(LA다저스)나 키케 에르난데스(보스턴 레드삭스) 등 일부 선수들만 가능한 능력이다. 하지만 김용의는 1번타자 겸 중견수로 활약하며 타율 .318를 기록했던 2016년을 제외하면 썩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이지 못했다.
이 밖에도 LG에는 윤진호(LG 2군 수비코치)와 박용근(LG 2군 작전코치), 김재율, 구본혁, 이영빈 등 많은 내야 자원들이 LG의 5번째 내야수 자리를 노렸지만 확실한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 시즌 1군에 등장한 '늦깎이 신인' 문보경이 8홈런 39타점의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친 데 이어 올해도 1루와 3루를 오가며 공수에서 맹활약, LG의 양쪽 코너 내야수들을 잔뜩 긴장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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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리를 향한 문보경의 허슬플레이 6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2 프로야구 KBO리그 LG 트윈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 연장 10회말 LG 1루수 문보경이 키움 선두타자 이지영의 내야 뜬공을 몸을 날려 잡아내고 있다. |
| ⓒ 연합뉴스 |
1루수와 3루수가 모두 가능한 우투좌타 내야수 문보경은 신일고 2학년 때 봉황대기 최다안타상, 3학년 때 주말리그 A권역 타점상 등 타격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을 뽐냈다. 문보경은 201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3라운드 전체 25순위로 LG에 지명됐지만 프로입단 직후 팔꿈치 수술을 받으면서 루키 시즌 1군 데뷔가 좌절된 채 퓨처스리그 8경기 출전에 그쳤다.
문보경은 2020년 퓨처스리그에서 .319의 고타율을 기록했지만 한 번도 1군에 올라가지 못했고 LG구단에서는 나이가 어린 문보경을 일찍 군대에 보낼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입대지원자들이 늘어나면서 입대영장이 나오지 않았고 결국 문보경은 입대를 하지 못한 채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결과적으로 문보경이 작년 시즌을 통해 1군 선수로 성장했으니 입대 무산은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문보경은 작년 107경기에 출전해 타율 .230 8홈런 39타점 37득점을 기록했다. 썩 대단치 않은 성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1군에서 첫 시즌을 보내는 선수임을 고려하면 상당히 의미 있는 성적이었다. 그리고 문보경은 작년 시즌의 경험을 온몸으로 흡수해 올 시즌 LG에서 반드시 필요한 선수로 한 뼘 더 성장했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문보경은 현재 LG 내에서 타율3위(.333)와 홈런(2개), 타점(9개), 안타(17) 2위에 올라 있다.
시즌 초반 허리 근육통으로 1군 합류가 늦어진 채은성 대신 LG의 주전 1루수로 활약했던 문보경은 채은성 복귀 후에는 타격 부진(타율 .196)에 허덕이고 있는 외국인 선수 리오 루이즈 대신 3루수로 나서고 있다. 특히 문보경은 .357의 득점권 타율과 .471의 장타율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LG타선에서 높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현재 LG 타선에서 문보경보다 활약이 더 좋다고 단언할 수 있는 타자는 '115억 사나이' 김현수 밖에 없다.
가장 고무적인 사실은 올해 프로 4년 차를 맞는 문보경이 2000년생으로 만21세의 젊은 선수라는 점이다. 실제로 2000년대에 태어난 선수 중 프로무대에서 문보경 이상의 커리어를 쌓고 있는 선수는 한화 이글스의 노시환과 정은원 정도 밖에 없다. 물론 아직 경험이 부족한 문보경이 시즌을 치르면서 벽에 부딪힐 수도 있지만 팀 내야진을 긴장시키고 있는 재주 많은 신예의 등장은 LG팬들을 기쁘게 하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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