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킹] 남쪽의 파잎이 녹색을 띠는 지금, 단맛 도는 대파의 계절

이세라 2022. 2. 1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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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파전은 대파를 쓴다. 파전에 쪽파를 쓰는 집이 더 많다는 건, 여기저기 쏟아지는 요리 프로그램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어쨌거나 우리 집은 대파를 쓴다. 그런데 며칠 전 지인에게 파전 이야기를 꺼냈더니 이런 말이 돌아왔다. “파전은 쪽파지.” 가까운 지인의 쪽파 발언에 정체 모를 위기감을 잠시 느꼈지만, 그러다 곧 궁금해졌다. 대파든 쪽파든 둘 다 파인데 맛도 비슷하지 않을까? 내친김에 대파와 쪽파를 모두 준비해 두 가지 파전을 (내가 아니라 엄마가) 만들어봤다.

엄마의 파전은 할머니의 레시피라고 했다. 대파는 세로로 반을 가르고(파가 크면 1/4로 가른다) 틈이 없게 촘촘히 일렬로 붙여 팬에 올린다. 반죽은 파가 서로 엉길 정도로만 붓는다. 그다음 해물을 적당히 올리고 달걀 물을 얹은 후에 마저 부쳐낸다. 이때 파는 초록색보다 흰색 부분이 더 많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니고 대파에 흰색 부분이 많아서다. 그런데 이 흰색 부위가 전으로 부치면 참 달고 고소하다.

파의 흰색 부위인 연백부는 육수를 내면 감칠맛이 난다. 중앙포토


파의 흰색 부위는 ‘연백부’라고 부른다. 구워도 맛있지만, 육수를 내면 감칠맛이 난다고들 한다. 국이나 찌개에 송송 썰어(이때는 초록색 부위도 함께 넣어야 보기 좋다) 넣는 파도 개인적으로 참 좋아한다. 향은 개운하고 맛은 시원하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파는 참 신기한 채소다. 과일도 아닌데 달고, 고기나 해물도 아닌데 감칠맛이 나니까 말이다.

성분으로 보면, 대파는 가용성 탄수화물인 당질의 함량이 높다고 한다. 특히 연백부에 가용성 탄수화물과 비타민B가 많이 함유돼 있다. 국립농업과학원 식생활영양과에서 식품 성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최영민 박사는 “파와 양파, 쪽파, 대파에는 기본적으로 당이 함유돼 있다. 그중 파는 적게는 2g, 많게는 4~5g 정도 들어 있다”고 말한다. 식품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은은한 단맛을 주는 천연당이다.

미량(성분표에 의하면 0.2g 정도)이지만 아미노산도 있다(사실 모든 식품에는 아미노산이 들어 있다). 최영민 박사는 “파는 오래전부터 양념 채소로 먹어온 작물이지만, 어떤 화학반응에 의해 전후의 맛 성분이 어떻게 변하는지 연구된 적이 없다. 이런 성분들이 단맛이나 감칠맛에 영향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파가 다른 재료들과 만나면서 맛과 향이 시너지를 내는 게 아닐까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맹물에 파를 넣고 끓이면, 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른다”고 요리연구가 이미경 소장은 말한다. 하지만 육수를 내기 위해 여러 가지 재료와 함께 파를 넣으면 확실히 맛과 향이 풍부해진다. 식품공학자 최낙언 대표는 “체계적인 연구가 더 필요하겠으나, 파 특유의 향이 맛의 원인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파, 양파와 마늘은 모두 파(Allium)속 식물에 속한다. 파속 식물 특유한 냄새는 황을 함유한 휘발성 냄새 물질에서 기인한다. 최 대표는 “이 물질은 향도 강하지만, 채소가 아주 조금의 감칠맛을 가지고 있어도 그 효과를 높여준다. 가열하면 황 물질이 감칠맛이나 단맛을 부스팅하는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대파는 여름보다 겨울에 단맛이 강해진다. 사진은 대파 밭. 사진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채소과


단맛은 여름보다 겨울 대파가 더 좋다. 여름 대파는 맵고 질긴 편이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채소과 한지원 연구사는 “파가 잘 자라는 온도는 15~20도다. 더울 때는 잎이 마르는 ‘하고현상’이 생긴다. 그래서 여름 파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또, 가을에는 병충해 피해가 없지만, 여름 파에는 해충도 많다. 이런 외부 환경을 방어하기 위해 질기고 매운맛이 강해진다. 겨울 대파가 더 맛있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겨울 대파도 질기다 할 수 있다. 나는 대파의 질김을 식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아주 가끔 파전을 먹다 질긴 파를 뱉은 적이 있다. 그럴 때 엄마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옛날에는 파가 이렇게 질기지 않았는데.” 재래종 파는 더 연했다고 한다. 또 요즘처럼 일자로 곧지도 않았고, 연백부가 지금처럼 길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요즘 나오는, 일자로 곧은 파는 ‘외대파’다. 외대파는 연백부가 굵고 길다. 연백(軟白)이란 줄기를 연하고 하얗게 만드는 일이다. 재배할 때 줄기를 흙으로 덮어 해를 못 보게 하면 된다. 앞에도 말했지만, 이 부위가 부드럽고 맛이 좋으며 향도 좋다. 반면 재래종은 일자로 곧지 않고 ‘분얼’한다. 한지원 연구사는 “쉽게 말하면 하나의 파에서 여러 개의 줄기가 나오는 것이다. 분얼하면 파가 휘어져 모양이 안 좋고 수량도 잘 안 나온다. 파를 선별하고 묶음 작업을 하는 일도 어렵다”고 말한다. 어느 때부터인가 점차 외대파가 많아진 이유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는 시장에서 분얼한 파를 자주 봤다. 더 연했는지 어떤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파는 부재료로 쓸 때가 많아 특별히 맛에 민감하지 않았던 것도 같다. 재래종 파 맛이 궁금해 토종 씨앗을 보존하는 씨앗도서관협의회 박영재 대표에게 연락해봤다. 박 대표는 “옛날에는 대파라고 하지 않고 그냥 ‘파’라고 불렀다”면서 “재래종은 겨울에도 뿌리가 살아남아 이른 봄에 다시 잎이 나왔다. 뿌리는 살린 채로 잎을 잘라 먹었다. 움파라고 부르는데 제일 연하고 깔끔한 단맛을 자랑한다”고 말한다.

움파는 겨울에 ‘움(땅을 파고 그 위에 짚으로 지붕을 덮어 만든 식품 저장고)’ 속에서 길러, 줄기를 싸고 있는 잎의 아래 부분(엽초)이 노랗게 연백된 파다. 또는 박 대표가 말한 것처럼 월동한 파의 베어낸 줄기에서 새로 올라온 연한 잎을 뜻하기도 한다. 이미경 소장 역시 “겨울 대파를 예전에는 움파라고 불렀다”면서 “요즘엔 사철 파가 나오니 굳이 움파를 먹을 필요가 없지만, 예전에는 이맘때쯤 움파를 통째로 김치에 넣거나 산적을 해 먹었다”고 말이다.

재래종은 외대파처럼 연백부가 길지 않다. 박대표는 “흙을 긁어모아 덮어주는 북돋우기(배토)가 필요하지 않아서”라고 설명한다. 그래도 잎이 부드럽고 맛이 좋았다고 한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재래종은 잎이 많아 ‘잎파’, 분얼해서 ‘분얼파’라고도 불렀다 한다. 이른 봄에 빨리 자라고 꽃대는 늦게 올라온다. 파 뿌리 윗부분은 동그랗다. 그건 재래종 쪽파도 마찬가지다. 박 대표는 “동그란 부분을 싸고 있는 껍질이 흰색이면 약파(당진이나 서산), 주황색이면 황파(경기도)”라고 불렀다고 덧붙였다.

쪽파(사진 위)와 대파. 사진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채소과


다시 파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쪽파 파전 맛이 어땠냐면, 당연히 맛이 좋았다. 쪽파를 가지런히 모아 전으로 부쳤는데, 정말 부드럽게 씹어 넘길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에 대파 파전을 한 입 먹으면 마음이 다시 돌아선다는 것이다. 파의 감칠맛과 단맛이 훨씬 풍부해서 “역시, 대파야”하고 만다. 태어나서부터 죽 대파 파전을 먹어왔으니 어쩔 도리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파전은 쪽파”라는 이미경 소장도 “단맛은 대파”라고 인정한다. “양념을 만들 때 대파를 쓰는 건 단맛 때문이다. 파의 흰 부분이 단맛을 내는데 쪽파는 흰 부분이 적지만 대파는 흰 부분이 길고 두껍다. 또, 대파가 주는 깊은 맛이 있다. 그래서 김치를 담글 때 쪽파만 넣으면 싱겁다며 대파를 섞는 집도 있다.”

단점은 앞서 말했듯 질감에 있다. 이 소장은 “베어 물었을 때 아삭하게 끊어져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쪽파는 수분이 많지 않아 아삭하고 깔끔하게 입으로 넘어간다. 또, 대파는 푸른 잎에 진액(점질물)이 많다. 역시 호불호가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몇몇 지인과 취재원에게 물어볼 때마다 “파전은 쪽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쪽파의 압승이다.

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됐다. 할머니의 레시피와 엄마의 레시피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엄마에게 캐물어서 알아낸 할머니 레시피는 이렇다. 먼저 파(재래종)를 솥에 찐다. 할머니는 “불을 살짝 올린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가마솥에 큰 채반을 올리고, 그 위에 파를 가지런히 놓은 후 살짝 찐다. 찐 파는 반을 가를 필요가 없다. 부드러워져 촘촘히 모양을 잡기도 쉽다. 솥뚜껑에 파를 올려 굽는다. 반죽은 파들이 엉길 정도로만 넣는다. 해물은 없다. 파와 반죽, 달걀물만 넣는다. 오직 겨울 파로만 맛을 낸 진짜 파전이다. 엄마는 “파를 찌는 건 번거롭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대파의 깊은 맛을 포기할 수는 없었고, 대파를 반으로 가르는 것으로 합의를 본 것 같다. 그렇게 우리 집 식구들은 질기면 뱉어내며 대파에 길들어졌고, 대파 마니아가 됐다.

겨울 대파는 봄에 심어서 가을부터 출하한다. 중부지방은 김장철에 대부분 출하하고, 따뜻한 남부지방은 이듬해 3월까지 대파가 나온다. 그러니까 지금은 남쪽의 파잎이 녹색을 띠며 생생할 때다. 그래도 4월을 넘기지는 않는다. 꽃대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대파는 꽃대가 올라오기 전이 단맛이 돈다. 사진은 대파 꽃. 사진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채소과


꽃대가 올라오기 전에, 찐 대파로 파전을 해보면 좋을 텐데. 얼마나 달고 입에서 살살 녹을까? 관건은 ‘살짝 불에 올린 파’ 같다. 요리 초보는 망할 것이 불 보듯 뻔해서 엄마를 졸라봤지만 바로 거절당했다. “이것도 고마운 줄 알고 먹어”라면서. 맞는 말이다. 게다가 뭐, 찌지 않은 대파여도 맛있는 건 사실이다.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대파로 파전 한 번 해보시길 여러분께도 권해본다. 물론, 대파의 씹는 맛을 사랑하는 분들만 도전하셨으면 좋겠다.

이세라 쿠킹 객원기자 cooking@joongang.co.kr

도움말=국립원예특작과학원 채소과 한지원 연구사, 네츄르먼트 이미경 소장, 편한식품정보 최낙언 대표, 씨앗도서관협의회 박영재 대표, 국립농업과학원 식생활영양과 최영민 박사
참고도서=『농업기술 길잡이 152 파(농촌진흥청)』『파속 식물 이야기(농촌진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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