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최강자 '삼성전기' vs 'LG이노텍'..차세대 기판 시장서 맞붙는 '기묘한 라이벌'
기묘한 라이벌.
전자부품 업계에서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말 그대로 두 회사 관계는 ‘기묘하다’. 경쟁사라고 보기에는 경쟁을 벌이는 사업이 없다. 주력 생산 제품부터 다르다. LG이노텍은 스마트폰용 카메라 모듈이, 삼성전기는 반도체 전용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부품이 매출의 핵심이다. 일부 겹치는 사업을 제외하고는 활동 분야가 겹치지 않는다.
그러나 단순 업계 동업자로 치부하기에는 두 회사가 차지하는 위상이 남다르다. 매출액·영업이익·시가총액 등에서 ‘전자장비 업계 1위가 누구냐’를 두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인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순위는 달라진다. 매출은 LG이노텍이 소폭 앞선다. 반면 시가총액은 삼성전기가 13조원으로 8조원대 LG이노텍보다 높다. 두 회사의 ‘형님’ 격인 삼성전자와 LG전자 라이벌 관계도 긴장감을 흐르게 하는 요인이다.
라이벌과 동업자 사이를 오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곧 끝날 것으로 보인다. 기묘한 라이벌에서 ‘확실한 라이벌’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두 회사가 처음으로 격돌하는 사업 분야가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차세대 반도체 기판으로 불리는 ‘FC-BGA’다. 각자 부진한 사업을 정리하고 FC-BGA 사업에 대규모 금액을 투자하며 ‘판’을 키우는 모양새다.

▶차세대 기판 FC-BGA가 뭐길래…
▷삼성전기·LG이노텍 신성장동력 ‘찜’
FC-BGA의 정식 명칭은 ‘플립 칩 볼 그리드 어레이(Flip chip Ball Grid Array)’다. 반도체와 기판을 직접 붙이는 플립 칩(Flip chip) 방식으로 반도체와 기판을 연결(ball)해 격자(Grid) 형태로 배치(Array)한 제품이라는 뜻이다. 반도체 칩과 메인 기판을 플립 칩 범프(Flip Chip Bump)로 연결하는 고집적(집적도가 높은) 패키지 기판이다. 반도체 패키지 기판 중 제조가 가장 어려운 제품으로 뽑힌다.
반도체를 기판에 바로 붙이기 때문에 정보 처리 속도가 월등하다. 또 큰 기판을 사용하기 때문에 대량의 반도체를 기판에 붙일 수 있다. 이 때문에 고성능·고밀도 회로 연결을 요구하는 CPU(중앙처리장치), GPU(그래픽처리장치)에 주로 사용된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이 FC-BGA 시장에 적극적인 이유는 두 가지다. 반도체 기판 사업 위상이 달라진 데다 FC-BGA의 수익성이 타 제품에 비해 월등히 높은 덕분이다.
우선 기판 사업의 위상이 달라졌다. 본래 기판은 반도체를 보조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반도체 제품이 나오면 모바일·PC·서버용에 맞춰 기판에 조립하는 게 끝이었다. 들이는 비용에 비해 수익이 박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반도체 성능 차별화 경쟁이 심화되면서 기판과 반도체를 연결하는 후공정 역할이 중요해졌다. 여러 개 칩을 하나의 기판에 패키징하는 멀티칩패키지(MCP) 기술 등이 속속 등장했다. 노동력 중심 저비용 산업에서 기술력 중심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재편됐다.
FC-BGA의 수익성이 남다른 것도 ‘신성장동력’으로 찜한 이유다. 높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 제품 단가가 상당히 높다. FC-BGA는 코로나19 유행 이전부터 공급 부족에 시달렸다. 고성능 PC와 서버를 증설하는 기업이 늘면서 수요가 늘었는데,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적다 보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코로나19로 디지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공급 부족 현상은 더 극심해졌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모바일·PC 쪽으로 수요가 늘어 2026년까지 FC-BGA 수급 상황이 타이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경쟁 앞선 곳은 삼성전기
▷기술력은 LG이노텍 안 뒤처져
당장의 경쟁에서 앞선 곳은 삼성전기다. 삼성전기는 FC-BGA에 선제적으로 투자, 국내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위 사업자로 올라섰다. 생산 능력 기준 세계 6위 수준이다. 최근 투자를 늘리면서 상위권 업체와의 격차를 꾸준히 줄이고 있다.
본격적으로 FC-BGA 사업 규모를 키우기 위해 비주류 사업을 대거 정리했다. 연성회로기판(FPCB) 사업에 이어 무선통신모듈 사업을 연달아 매각했다. 비주류 사업에 쏟아붓던 역량은 모두 신사업인 FC-BGA에 붓는다. 지난해 12월 23일 삼성전기 이사회는 FC-BGA 생산 설비·인프라 구축을 위해 베트남 생산법인에 총 8억5000만달러(약 1조179억원)를 투자하기로 결의했다. 투자 금액은 2023년까지 단계적으로 집행한다. 막대한 투자를 내세워 국내 선두 주자 지위를 넘어 세계 시장까지 넘보겠다는 각오다.
LG이노텍은 삼성전기에 비해 ‘후발 주자’다. 현재 제품 생산을 하지는 않는다. 단, 치밀하게 준비하며 시장 공략을 위한 채비는 마친 상태다. 2021년 11월부터 관련 조직을 신설하고 투자 계획을 밝히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11월 임원 인사에서 FC-BGA 사업 담당을 신설하고 이광태 상무를 담당자로 선임했다. 또 8000억~1조원 규모 투자를 집행해 기판 생산 설비를 만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생산 공장 위치는 LG이노텍 기판 소재 사업부가 위치한 구미 사업장이 유력하다.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동시에 기존 생산시설도 FC-BGA로 전환하는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 LG전자 구미 A3공장 인수도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LG이노텍이 단일 기판 사업에 조 단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LG이노텍의 맹추격을 삼성전기가 어떻게 따돌리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내다본다. LG이노텍 기판 제조 기술력을 감안하면 FC-BGA 시장 강자로 올라서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전자부품 업계 관계자는 LG이노텍은 모바일 AiP(안테나 인 패키지)를 성공한 경험이 있다. AiP는 FC-BGA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만큼 높은 기술력을 요구한다. 기판 기술이 뛰어난 LG이노텍이 FC-BGA 시장에 안착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귀띔했다.
일련의 상황을 두고 두 회사가 ‘진짜’ 실력으로 승부하는 순간이 왔다는 인식도 존재한다. 삼성전기·LG이노텍 모두 과거에는 ‘형님’ 회사인 삼성전자·LG전자와의 내부 거래가 매출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다 홀로서기에 나서면서 ‘전자’와의 내부 거래 매출 비중을 지속적으로 줄여왔다. LG이노텍은 LG전자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 자릿수대로 내려왔다. 삼성전기 역시 삼성전자 비중을 30%대 아래로 낮췄다. FC-BGA는 국내 업체보다 애플·아마존 등 글로벌 큰손 수요가 더 많은 분야다. 이름값보다는 기술력과 가격을 중시하는 글로벌 업체 특성상 ‘실력’을 갖춰야만 시장에서 존재감을 보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진욱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42호 (2022.01.12~2021.01.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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