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타임 90초 짜리에 담긴 홍상수 영화 세계의 본질
[김성호 기자]
때로 형식이 내용을 만든다. 전에 하지 않던 작업이 도리어 작가의 자유로운 사고를 자극해 인상적 작품을 빚어내기도 한다. 익숙한 형식의 반복이 불러오기 쉬운 매너리즘으로부터 벗어나 창의적으로, 때로는 본질에 가까운 작품을 발표하는 경우들이 왕왕 있는 것이다. 혹자는 영화 <50:50> 또한 그러하다고 말한다. 아주 틀린 말이라곤 하지 못하겠다.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홍상수 전작전이 개최된다(5월 2일~6월 13일). 데뷔작 발표 이후 30주년이 된 홍상수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다시 한 번 차근히 둘러볼 수 있는 귀한 자리다. 극장이란 상영환경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영화들이 여럿인 만큼, 한국영상자료원을 찾아 작품을 보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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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50 스틸컷 |
| ⓒ 한국영상자료원 |
<50:50>은 과연 그럴 만한 관심을 받을 만한 작품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세계에서 독특한 지위를 점하는 때문이다. 러닝타임은 고작 90초, 그러니까 1분30초가량의 짧은 영화다. 단편도 아닌 초단편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칸과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영화제들로부터 작품세계를 인정받아온 거장이 전과 다른 방식의 작품을 제작한 건 무려 베니스국제영화제 측의 요청에 따라서였다고. 일정 관계로 공식석상에 서지 못했으나 영화만큼은 보내주길 바란 베니스의 요청에 그는 이 독특한 작품으로 화답했단 이야기다.
당시 베니스는 홍상수 외에도 모두 70명의 전 세계 거장들에게 같은 요청을 했다고 전한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지아장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같은 쟁쟁한 이름들이 포함된 '베니스 70-퓨처 리로디드' 프로젝트로, 한국에선 홍상수와 김기덕 감독이 요청을 받았다. 70편의 초단편이 모여 한 편의 영화를 이룬 이 작업 가운데서 홍상수와 김기덕 감독은 각자의 영화세계가 어떤 터전 위에 서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향하는지를 전한다. 영화제가 이들에게 던졌다는 '영화의 미래는 무엇인가'란 짧은 질문에 홍상수는 어떻게 응답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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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50 스틸컷 |
| ⓒ 한국영상자료원 |
'몇 밀리그램 짜리를 피우느냐' 하는 대화들로 시작하여 아내가 몹시 아프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는 말까지도. 확률은 50대50이라고. '50대50', 그러니까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이 홍상수에겐 영화의 미래와 닿는다. '사모님에게 돌아가셔야죠'하는 여자의 밀쳐냄에 남자는 어떻게 응답했을까. 홍상수 특유의 고정된 카메라가 옆으로 도는 팬전환으로 내보이는 여자의 모습과 능글맞게 새 여자 곁에서 담배를 태우며 긴장된 대화를 이어가는 무능력하다는 남자, 또 그런 그가 싫지만은 않은 여자로부터 관객은 무얼 보게 되는가.
숫자는 명징해 보이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50대50이란 확률은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환산했다기보다는 일어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상징한다.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가만 보자면 모든 것이 그렇다. 아내는 외로울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내는 병으로 죽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남자와 새 여자 사이 관계며 감정이 싹틀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영화는 그저 남자가 모르던 여자에게 다가서 몇 마디 말을 붙이도록 하는 것만으로 모든 가능성들을 연다. 영화는 사건이 아닌 자리만을 보여줄 뿐이지만, 이 짧은 영화의 앞뒤로 있을 수 있는 여러 가능성들을 관객에게 내다볼 수 있도록 한다. 어쩌면 그 내다봄이 사실과 가까울 수도, 아닐 수도 있다. 50대5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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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50 스틸컷 |
| ⓒ 한국영상자료원 |
그렇다면 영화의 미래는 무엇인가. 그건 정말로 일어나기 전까진 무엇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진실이다. 가능성은 정말이지 모든 것에 존재한다. 무엇이 싹틀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모든 인간은 마침내 죽지만 정말 죽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오늘은 아닐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가능성을 불변의 확언으로 만드는 것이 또한 영화란 예술이다.
어떤 일은 정말로 일어나 그곳에 그대로 박제돼 변치 않는 것으로 되어 버린다. 50대50 중 어느 한 가지 가능성이 100이 된다. 50이 100이 되기까지를 관객은 전인미답의 땅에 발을 들여놓는 탐험가의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 안에서도 50대50의 미묘한 긴장이 자리한다. 영화는 과연 그의 영혼을 흔들어 깨울 것인가, 그를 움직일 것인가, 그 의식을 확장할 것인가, 아니면 그렇지 못할까. 정말이지 모든 것이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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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상수 전작전 포스터 |
| ⓒ 한국영상자료원 |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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