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그룹의 미래 먹거리이자 사활이 걸린 디지털 혁신(DT·Digital Transformation) 전쟁이 치열하지만 NH농협금융그룹이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농협금융의 주요 DT부문이던 '디지털마케팅플랫폼(NH-DMP)' 사업을 전면 철수하기로 결정하면서다.
5대 금융(KB·신한·하나·우리·NH농협) 중 후발주자로 꼽히는 농협금융은 DT 영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금융그룹별 '슈퍼앱(다양한 서비스를 한 곳에 모아놓은 앱)' 다운로드 수와 월활성이용자수(MAU)만 봐도 농협금융은 최하위에 그친다. DT 관련 투자에 집중하면서 농협금융은 전담 인력 확보가 불가피해 인건비 부담도 높아지고 있다.
14일 농협금융의 '2024년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농협금융 이사회는 'DMP 사업 철수 검토 내역'을 지난해 말 보고 받았다. 농협금융 측도 "현재 DMP 사업은 철수한 상태"라고 밝혔다.
NH-DMP 구축사업은 2022년 그룹 차원에서 추진한 것이다. 계열사들의 디지털 전환 가속화를 위한 마케팅 지원 사업이다. 고객의 행동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고객 맞춤형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예를 들어 은행·저축은행캐피탈·손해 등 농협금융 계열사 앱을 사용하는 고객들의 행동 데이터와 외부에서 구매한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해 각 고객 맞춤 광고를 하는 것이다. 데이터 비즈니스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첫 단계였다.
그러나 3년가량 추진해 온 사업이 수포로 돌아간 것은 농협금융 스스로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전언이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기본적인 개념은 저희가 고객을 찾아가자는 것이었다"면서 "하지만 유통 분야의 경우 상품이 다양한데 금융 상품의 경우 금리 말고는 사실상 차별점이 없어 접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금융권 최대 화두인 DT 흐름에 뒤처지는 모습이라고 지목한다. 일례로 농협금융의 규모에 비해서는 소규모인 대출비교플랫폼 '핀다'의 경우 국내에서 최초로 2015년 설립돼 2019년 처음 서비스를 내놓았다. 이어 토스, 카카오, 네이버 등 대형정보통신업체(빅테크)들이 해당 서비스를 제공했다.
2023년부터는 플랫폼들이 금융 상품을 비교해 더 낮은 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대환대출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보험 비교 플랫폼 역시 2018년부터 상용화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출이나 보험 상품 모두 비교 사이트에서 여러 상품을 한번에 조회할 수 있는데 굳이 특정 금융사 상품만 볼 수 있는 사이트에 들어갈 유인은 없다"고 일갈했다. 소비자 입장에 더 많은 선택지가 있는 플랫폼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고객의 행동 데이터를 분석하는 건 누가 더 정교하게 하느냐가 중요한데 핀테크 스타트업이 좀 더 미시적이고 세밀하게 파고드는 데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뿐 아니라 5대 금융 슈퍼앱 다운로드 수(구글 플레이 앱스토어 기준)를 보면 KB스타뱅킹(KB국민), 신한SOL(신한), 하나원큐(하나), 우리WON(우리) 등이 현재 각각 1000만회를 초과하고 있다. 대조적으로 농협금융의 NH올원뱅크(NH농협)는 500만회가량에 그치고 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각 앱의 지난 2월 MAU를 봐도 △KB스타뱅킹 1400만명 △신한SOL 951만명 △하나원큐 625만명 △우리WON 721만명 등이지만 NH올원뱅크는 451만명 수준이다.
DT 사업 실적이 기대치를 밑돌면서 이찬우 농협금융 회장이 그린 경영전략에도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관련 사업 철수는 물론 이에 상응하는 비용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금융은 지난해 다른 금융지주들보다 일반관리비(판매관리비)가 전년대비 크게 증가했다. 2024년 각 금융지주의 일반관리비 전년대비 상승률을 보면 △KB국민 4.4% △신한 3.7% △하나 2.8% △우리 0.6% △농협 9.3%다.
농협금융의 일반관리비 구성 항목은 △종업원관련비용 △감가상각비 및 기타상각비 △기타판매비와 관리비 등이다. 이 가운데 종업원관련비용이 2023년 3조442억원에서 2024년 3조3921억원으로 11.4% 늘었다. 디지털 전환을 위한 인력 증가로 고정비가 늘어난 탓이다.
더욱이 관련 분야 경력직을 영입해야 하다보니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있다고 전해진다. 연차보고서를 보면 농협금융은 올해도 인력 증가에 따라 늘어날 예산을 편성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농협은 전국에 많은 오프라인 매장을 가지고 대면 영업 위주로 해온 곳이라 디지털 전환에 상대적으로 늦게 뛰어든 측면이 있다"면서 "하지만 농협도 시중은행으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데 속도감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농협금융 측은 "(DMP사업을 대체할) 향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해명했다.
한편 농협금융은 이 회장 취임과 더불어 NH올원뱅크를 중심으로 DT에 속도를 내기 위해 최대 계열사인 농협은행 수장에 강태영 행장을 연초 앉혔다.
황금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