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 유산 무조건 돌려줘? 이젠 전략 바꿔야 할 때

임병식 2026. 5. 11. 12:0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는 7월 부산 세계유산위원회를 현실적인 환수 계기로 삼아야

[임병식 기자]

 오는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 행사 포스터
ⓒ 국가유산청
오는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 문화유산 정책에서 중요한 분기점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단순한 문화 행사가 아니다. 국제 규범과 여론을 형성하는 세계 최대 문화유산 외교 무대다. 우리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국외 소재 문화유산 역시 부산을 계기로 새롭게 접근할 수 있다.

앞서 살펴봤듯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은 불법 반출, 거래와 수집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획일적 환수는 한계가 있다. 그동안 환수 정책은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라는 당위론에 무게를 두어 왔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불법 반출일 경우 법적 환수는 가능하지만, 합법적 거래와 기증 형식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국제법과 각국 문화재법, 외교 관계, 시장 구조가 얽혀 있어 단순 반환 요구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실제 유물 환수 상당수는 법정이 아니라 시장과 외교 현장에서 이뤄진다. 일본 개인이 소장한 대동여지도는 매입 방식으로 돌아왔고, 독일 수도원에 있던 겸재 정선 화첩은 신뢰와 설득 끝에 기증받았다. 또 왕실 어보와 죽책은 미국과 수사 공조를 통해 귀환했다. 반면 프랑스 외규장각 의궤는 장기 대여라는 우회로를 따라 돌아왔다. 이들 사례는 환수가 정치·외교·시장·여론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종합 전략 게임'임을 보여준다.

이제는 인식을 전환할 때다. 핵심은 '반환 요구'에서 '국제 의제화'로 바꾸는 것이다. 개별 국가를 상대로 한 감정적 접근 대신, 국제 사회와 함께 논의해야 할 문화 정의(cultural justice)의 문제로 확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것이니 돌려달라"가 아니라 "식민지와 전쟁 과정에서 이동한 문화유산을 어떻게 윤리적으로 관리할 것인가"라는 보편적 의제로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

부산 세계유산위원회는 이를 실현할 최적의 기회다. 우선 공식 의제화가 필요하다. 예컨대 '해외 소재 문화유산의 윤리적 관리'를 주제로 특별 세션을 신설하고 공동 선언문을 채택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식민지 유산, 전쟁 약탈, 디지털 접근권, 공동 관리 원칙을 담을 수 있다. 특정 국가를 겨냥하지 않더라도 국제 규범과 여론을 형성한다면 기대효과는 충분하다. 법적 강제력은 약해도 국제 기준, 즉 '소프트 로(soft law)'를 구축할 수 있다.

이른바 '부산 선언(Busan Declaration)'도 검토할 만하다. 불법 반출 유산은 환수를 원칙으로 하되, 공동 관리와 순환 전시, 장기 대여, 디지털 공유 등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프랑스 외규장각 의궤와 일본 고토쿠인(高德院) 관월당(觀月堂)은 시사점이 뚜렷하다. 상대를 비난하기보다 신뢰와 설득을 통해 환수한 사례다. 상대를 몰아세우는 대신 협력의 명분을 만들었다.

스토리텔링 전략도 중요하다. 부산 회의 기간 중 '이동된 문화유산'(Displaced Heritage)을 주제로 특별전을 개최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외규장각 의궤와 관월당처럼 성공적인 환수 사례를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하면 국제사회에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이때 핵심은 피해 의식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문화유산이 어떻게 사람과 역사, 기억을 연결하는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비난보다 공감, 대립보다 협력의 메시지가 설득력 있다.

국가별 맞춤 전략도 필요하다. 일본에는 자발적 반환 사례를 제시하며 '관월당 모델'을 확대하는 접근이 효과적이다. 프랑스에는 장기 대여 모델을 국제 표준으로 제안할 수 있다. 미국에는 불법 반출과 박물관 윤리 기준, 합법성 검증 문제를 제기하며 협력을 강화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비공식 협상 통로도 모색할 부분이다. 양자 회담과 박물관장 네트워크, 공동 전시 협약은 환수 가능성을 높이는 실질적 통로다.

디지털 환수는 기술 발전 추이와 부합하는 방식이다. 모든 문화재를 원위치시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고해상도 데이터 구축과 3D 스캔, 메타버스 전시를 통해 접근 기회를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 미국 클리블랜드박물관 소장 '칠보산도 병풍'을 디지털 영상으로 제작해 국내 공개한 게 대표적이다. 문화유산의 가치는 소유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다. 유럽 박물관들도 '디지털 아카이브'를 확대하며 문화유산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다.
 조선 후기 작품인 칠보산도 병풍. 가로 460cm, 세로 185cm로 대작이다.
ⓒ 국가유산청
거듭 말하지만 '완전 환수'에서 탄력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공동 관리와 순환 전시, 디지털 환수가 현실적인 대안이다. 유산 환수는 단순히 물건을 되찾는 문제가 아니다. 접근권을 확보하고 역사적 정의를 구현하며 국제 협력 체계를 만드는 과정이다. 허민 국가유산청장 또한 "불법 반출 유산은 강제 환수하되 그렇지 않은 경우는 현지에서 접근 기회를 높이는 방향으로 지원할 계획"이라며 투트랙 환수 정책을 언급한 바 있다.

"어떻게 함께 기억하고 관리할 것인가."

이 질문을 부산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국제 사회가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관건은 비난이 아닌 설득, 압박이 아닌 규범 형성에 달렸다.

- 국가유산청 정책자문위원(순천향대학교 초빙교수)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