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만남 여성’ 노린 日 흉기 강도… 실형 피한 이유

송태화 2023. 11. 2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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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도박 빠진 뒤 범행 물색
조건만남 여성 흉기 협박해 갈취
日재판부 “새 삶 살길 바래” 선처
국민일보DB


한국에 머물며 ‘조건만남’ 여성을 노리고 강도 범행을 계획한 20대 일본인 남성이 실형을 면했다. 철저히 준비된 계획적 범행임이 드러났으나 일본 재판부는 “새 삶을 살길 바란다”며 선처했다.

현실 도피해 韓으로… 강도 범행 계획한 日 남성

아사히신문은 최근 후쿠오카 지방법원에서 강도치상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A씨(29) 사연을 21일 조명했다. 미에현 출신의 A씨는 수년 전 나고야대를 졸업한 뒤 엔지니어로 지역의 작은 정보기술(IT) 기업에 취업했다.

첫 직장에서 업무에 빠르게 적응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큰 규모의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A씨는 이직한 회사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중요한 업무를 맡게 됐고, 주요 인재로 거듭나며 승승장구했다.

A씨는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게 되자 점차 부담을 느끼게 됐다.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A씨는 병원을 찾았고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A씨는 결국 막막한 현실에서 도피하기로 결정한다. 그는 일본에서 떠나기로 결심하고, 지난 3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수중에 든 돈은 가재도구를 팔아 마련한 80만엔(약 700만원)뿐이었다.

한국에 온 A씨는 카지노 도박에 빠지게 된다. 초심자의 행운 덕인지 처음엔 돈을 불렸지만 이내 탕진하고 50만원의 도박 빚을 지게 됐다. 한국말도 서툴던 그는 낯선 타국에서 생활을 이어갈 방법이 없게 되자 강도 범행을 결심한다.

A씨는 온라인에서 조건만남 상대를 찾는 여성을 범행 표적으로 삼았다. 범행 대상을 호텔로 유인해 협박, 금품을 빼앗겠다는 계획을 구상했다. “조건만남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겠다” “직장에서 난동을 부리겠다”는 식의 협박 메시지까지 생각했다.

A씨는 지난 3월 범행 계획을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SNS에서 후쿠오카에 사는 20세 여성 B씨를 타깃으로 삼았고, 범행을 위해 다음날 곧바로 후쿠오카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B씨와 함께 호텔에 들어간 A씨는 곧바로 B씨를 넘어뜨려 흉기로 위협했다. 통장 계좌번호를 물었지만 알아내지 못했고 대신 현금 550엔과 스마트폰, 가방 등을 빼앗았다. 이후 B씨를 욕실에 묶고 호텔에서 도주했다.

범행 뒤 다시 한국에 돌아온 A씨는 가지고 있던 돈을 소진하자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후 나라현으로 향해 도박치료시설에 입소했다. 그는 입소 한달 뒤 후쿠오카현 경찰에게 강도치상 혐의로 체포, 검찰에 송치됐다.

국민일보DB

징역 8년 檢 구형에도 집유 선고

검찰은 A씨의 범행이 단순한 일탈이 아닌 철저한 계획 범죄였다며 징역 8년을 구형했다. 피해자인 B씨가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점도 구형에 반영됐다.

심리를 맡은 후쿠오카 지방법원의 담당 판사는 결심 공판 당시 “왜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았느냐”고 A씨에게 물었다. A씨는 “내게 기대가 큰 부모님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며 “힘들다고 고백할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최후 진술에서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다. 내 이기적인 행동으로 피해자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고 고개를 숙였다. 재판장에 출석한 A씨 아버지는 어깨를 움츠린 채 눈물을 흘렸다.

선고공판날인 지난 10일 예상 밖 판결이 내려졌다. 검찰 구형량에서 감형되긴 커녕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되며 실형을 면한 것이다.

재판부는 “도박에 빠져 한순간에 돈을 벌기 위해 이기적인 범행을 저질렀다”고 질타하면서도 “피고인은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며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입소했던 도박치료시설 직원들은 사회복귀 이후에도 피고인을 돕겠다고 약속했다”며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정도로 삶의 어려움이 있었다는 걸 인정하지만 그게 누군가를 해칠 이유가 될 순 없다”며 “자신의 나약함을 숨기지 말고 당당히 맞서야 한다. 새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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