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5·18 성폭력 보상, 광주시장·국회의원 8인 "문제점 인식"
[박수림, 소중한, 봉주영 기자]
"그간 여러 과거사 사건이 있었지만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은 결국 개개인이 일일이 소송을 하는 식으로 해결되어 왔습니다.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들 또한 진상규명 결정 이후 보상 신청도 받고 있으나 현재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법적 근거나 기준이 매우 모호하거나 없는 상태입니다."
지난 9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피해자 측 법률 지원을 맡고 있는 하주희 변호사(법무법인 율립)는 현 상황을 이같이 진단하며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이들의 피해를 온전하게 위로하고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변호사의 설명처럼 현재 보상 기준은 5·18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한계가 뚜렷하다. <오마이뉴스>는 보상 심의를 주관하는 강기정 광주광역시장(보상심의위원장)과 광주 지역 국회의원 8인(더불어민주당 소속 민형배·박균택·안도걸·양부남·전진숙·정준호·정진욱·조인철, 가나다순)을 대상으로 지난 9월 19일부터 설문조사를 진행해 현재 보상 기준에 대해 물었다.
이들은 모두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법·시행령 개정을 비롯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이를 약속했다.
5.18 성폭력 피해자들은 지난해 6월 개정된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아래 보상법)'에 따라 처음으로 5·18 관련자에 포함됐고, 26명이 광주광역시에 보상을 신청(제8차 보상)했다.
하지만 현행 보상금 지급 대상엔 성폭력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와 함께 보상 등급 판정 기준을 담은 같은 법 시행령 역시 '신체 장해 등급과 노동력 상실률'에 따라 구분할 뿐, 성폭력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기준은 명시돼 있지 않다.
강기정 "현 기준으로 보상 가능할지 문제의식 있다"
전진숙 "행안부·여가부와 협력해 시행령 개정 이끌 것"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보상심의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황이라 다소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면서도 "(현재 기준으로) 보상이 가능할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보상심의위·장해등급판정분과위원회에서 위원들과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기준이 미비하다고 판단할 경우 개선안 마련을 (정부에) 건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5.18 보상을 담당하는 민주인권평화국의 박용수 국장은 "이 문제를 풀 의지가 강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박 국장은 "지난 8월 개최한 보상심의위원회에서 (성폭력 피해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수배, 학사징계, 해직자를 보상하기 위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의결했고 행정안전부 보상지원위원회에 건의한 바 있다"라며 "(성폭력 피해에 대해서도) 광주광역시의 개선 의지는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광주 지역 국회의원 8인은 모두 "현재 기준으론 적절한 보상과 지원이 어렵고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별도의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며 "관련법 및 시행령 개정에 노력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전진숙 의원(광주 북을)은 "성폭력 피해는 단순한 신체적 상해가 아닌, 정신적·심리적 고통과 사회적 후유증까지 포함하는 복합적인 문제"라면서 "현재 시행령에서 제시하는 신체장해등급은 주로 신체적 손상과 노동력 상실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피해자들이 42년간 침묵 속에서 견디셨을 고통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폭력은 생존자의 삶 전체에 걸쳐 깊은 영향을 미치기에 더 세심한 기준이 필요하다. 이는 피해자들의 삶을 온전히 회복시키기 위한 첫 단추"라며 "성폭력 피해자 소관 부처인 여성가족부·행정안전부와 적극 협력해 시행령 개정을 이끌겠다. 또 5.18 유공자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해 성폭력 피해자 등 새로 추가된 관련자들이 5·18 민주유공자로 등록되지 못하는 법적 미비를 해결하겠다"고 전했다.
민형배(광주 광산을)·안도걸(광주 동남을) 의원도 "현행 보상 기준은 신체 결손 및 노동력 상실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한계가 있고, 적절한 보상 및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민 의원은 "성폭력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 등을 측정할 기준과 2차 피해까지 고려하는 기준을 이른 시일 내에 마련해야 한다"며 "조속한 법 개정이 이뤄질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했다. 안 의원도 "사회적 요구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도록 관련 상임위 의원실과 협조하고, 정부의 시행령 개정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별도 기준 마련해야, 절차 간소화도 필요"
"광주 의원 8인 한 팀, 치유 위해 총력"
조인철 의원(광주 서갑)은 "신체적 장해는 44년이 지나 그 흔적을 찾기 어렵고 당시 진료를 받았더라도 의료법에 따른 진료기록부의 보존 기간이 10년인 만큼 증거를 확인하기도 어렵다"며 "기존 기준으로는 제대로 된 피해를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매우 크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 중심의 보상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시행령이 개정되어야 한다"며 "광주 지역 국회의원 8명이 한 팀으로 뭉쳐 5·18 성폭력 피해자분들의 치유와 명예 회복을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부남(광주 서을)·정진욱 의원(광주 동남갑)도 "44년 전에 발생한 사건임을 고려할 때 피해자들에게 직접적인 증거나 객관적인 자료를 요구하는 건 성폭력 피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별도의 판단 기준을 마련하고 절차를 간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 의원은 "필요하다면 국정감사 시기에 시행령 개정 검토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정 의원은 "관련 법과 시행령 개정을 정부에 요청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 "행정안전부는 7월에 출범한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에서 상담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는데, 성폭력 피해자들의 필요에 맞춘 프로그램 개발 여부도 함께 확인하겠다"고 덧붙였다
박균택 의원(광주 광산갑)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금, 의료 지원금, 생활지원금 지급을 위한 구체적인 기준 등이 법률에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며 "타 입법례를 고려해 위자료 수준을 논의하고, 정신적 피해에서 비롯된 2차 피해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 보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보상법 및 시행령 개정 작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고 했다.
정준호 의원(광주 북갑) 역시 "(이번 보상은) 성폭력 범죄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하고 있다"며 "현재의 보상기준으로는 성폭력 피해에 대한 명예 회복이나 국가 폭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및 가족의 치유와 명예 회복을 위한 관련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며 "뜻을 같이하는 의원들과 함께 토론회를 통해 여론을 환기하고 나아가 공동으로 법 제도가 바뀔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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