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가능한 사랑', 탐욕 앞에 선 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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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극단적 양극화는 인간의 존엄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예술은 그 비극을 기록하려 하지만, 타인의 고통을 오락으로 소비한다는 윤리적 딜레마를 피할 수 없다.
조여정은 예지가 "자신의 예술적 성취를 위해 타인의 고통스러운 인생을 탐했다"고 지적했다.
그런 조건에서 타인의 고통을 탐하거나 착취하지 않고 사랑하는 일이 가능한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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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전도연·조인성·조여정이 말한 인물 해석과 창작자의 윤리
자본주의의 극단적 양극화는 인간의 존엄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예술은 그 비극을 기록하려 하지만, 타인의 고통을 오락으로 소비한다는 윤리적 딜레마를 피할 수 없다. 영화 '가능한 사랑'은 바로 이 경계선 위에서 진실을 탐구한다. 올해 제83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작품으로, 21일 언론 시사회에서 공개됐다.

이창동 감독은 전혀 다른 계급에 속한 두 세계를 충돌시킨다. 대규모 정리해고로 직장을 잃은 노동자 부부 호석(설경구)과 미옥(전도연), 이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와 자본가 상우(조인성)가 서사의 축이다. 해고 뒤의 일상과 이를 관조하는 상류층의 시선이 교차하며 계급 간 격차가 드러난다. 이 감독은 시사회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가 사는 복잡한 세계의 이면을 관객과 나누고 싶었다"며 "단순한 계급 갈등을 넘어 영화 창작자의 윤리와 인간관계의 총체적 층위를 담아내고자 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같은 해고를 겪어도 부부의 반응은 갈린다. 설경구는 "사회적 가치를 상실한 호석이 거대한 자본을 쥔 상우를 마주하며 수치심과 분노, 위축감을 동시에 느낀다"고 설명했다. 반면 전도연은 미옥을 "자본의 폭압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지키려 발버둥 치는 주체적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가진 쪽의 속내도 같지 않다. 조인성은 상우를 겉으로는 다정하지만 날카로운 무기를 숨긴 현대 자본가로 해석했다. "자본을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양날의 검으로 보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조여정은 경제적 안정을 위해 상우를 택한 예지가 호석·미옥 부부의 삶을 지켜보며 결핍을 깨닫는다고 분석했다. "물질적 풍요가 삶의 충만함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네 인물의 비극을 추동하는 동력은 '탐욕'이다. 영화는 성경의 십계명을 모티프로 한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TV 미니시리즈 '데칼로그(1989)' 가운데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에서 출발했다. 설경구는 호석이 "지독한 열등감 속에서 상우의 안락함을 욕망했다"고 밝혔고, 전도연은 미옥이 "마음속에 품었던 자유를 상우를 통해 발견하고 욕망했다"고 말했다. 조인성은 상우의 탐욕이 "끝없이 더 가지려는 자본가의 속성과 맞닿아 있다"고 풀이했다. 조여정은 예지가 "자신의 예술적 성취를 위해 타인의 고통스러운 인생을 탐했다"고 지적했다.
예지의 카메라는 결코 무해하지 않다. 이창동 감독은 타인의 삶을 서사의 소재로 삼는 창작자의 윤리를 스스로 도마 위에 올렸다. 10여 년 전 대기업의 대량 해고와 강제 진압 사태를 영화화하려다 당사자들의 고통을 다룰 자격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해 포기한 경험도 털어놓았다. 대상을 착취하지 않고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가라는 고민은 예지는 물론 연출에도 반영됐다. 예컨대 해고 노동자 가족의 심리 치료 장면을 일반적인 영화 문법보다 훨씬 길게, 다큐멘터리처럼 담았다. 노동자의 파괴된 정체성과 공허함을 관객이 회피하지 않고 직접 대면하도록 했다.

이 감독은 자본의 역사와 통제 방식도 구체적인 은유로 곳곳에 심어뒀다. 대표적인 예가 일제강점기 순사들이 쓰던 '호루라기'다. 친일 자본에서 현대 기업으로 이어지는 토착 자본의 뿌리이자, 상우와 별장 관리인 사이의 수직적 권력을 나타내는 소리로 규정했다. 하지만 호석·미옥의 아들이자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철이가 부는 순간, 폭력의 도구는 소통과 연대의 장치로 바뀔 가능성을 얻는다. 철이는 '데칼로그' 시리즈의 초월적 관찰자 역할을 물려받아 오염되지 않은 시선으로 비극을 직시한다.
영화의 백미는 욕망과 착취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후반부 바닷가 장면이다. 미옥이 알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자 상우도 옷을 벗고 뒤를 따른다. 전도연은 "자본에 가치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미옥의 강렬한 자유의지를 온몸으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조인성은 "상우가 넘보지 말아야 할 것을 욕망하는 순간 자본가의 본성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현실에서 계급 간 교감은 성립할 수 있을까. 영화는 상우의 자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예지처럼 현대 예술가도 자본에 종속돼 있음을 인정한다. 그런 조건에서 타인의 고통을 탐하거나 착취하지 않고 사랑하는 일이 가능한지 묻는다. 섣부른 희망이나 도덕적 구원은 약속하지 않는다. 붕괴하는 존엄 속에서 인간성을 끝까지 들여다볼 뿐이다.
'가능한 사랑'은 23일 극장에서 개봉하며, 11월 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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