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들이 전쟁 겪는 아이 위해 만든 애니메이션
[김성호 평론가]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전쟁의 시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벌써 3년째 전쟁을 이어가고 있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하마스에 이어 레바논 헤즈볼라를 상대로 사실상의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신냉전이라 말하고, 또 다른 이는 3차대전 발발의 전조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 패권국과 지역 강국의 대결, 해묵은 은원을 가진 민족이며 국가 간 대립 그 어딘가에서 오늘의 정세가 급박하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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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애 스틸컷 |
| ⓒ CRFF |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반도가 이들 전쟁과 긴밀히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 측 우군으로 지상군을 파견한 북한의 선택은 국제사회에 상당한 충격을 던졌다. 한국은 두 전쟁 모두에 무기를 공급한 사실이 알려져 비난을 받았다. 우크라이나 쪽엔 포탄을 지원했고, 이스라엘에도 총기와 탄약 등 무기를 수출해 온 것이다. 70여 년 전 전쟁의 참화를 겪었던 한국이 실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는 전쟁에 무기를 팔아 수익을 올리는 나라가 된 건 참담한 일이다.
특히 이스라엘이 수행한 군사작전은 정식 전쟁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것이어서 논란을 더 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레바논 등 서아시아 국가는 사회문화적 이유로 출산율이 높은 국가다. 심지어 밀집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지역에 불특정 다수가 상할 밖에 없는 폭격을 하니 아동 피해가 심각하게 발생한다. 민간단체가 수차례 발표한 통계에서 팔레스타인의 아동 피해가 20~40%까지 집계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전쟁의 참화로부터 아이들을 구해내야 한다는 뜻으로 출발한 비정부기구가 세이브더칠드런이다. 이들이 아동권리에 대한 인식을 신장시키기 위해 10년 전부터 이어온 아동권리영화제에도 전쟁의 폐해를 지적하는 작품이 여럿 출품됐다. 그 가운데 본선에 선보인 영화가 몇 편쯤 있다. 고등학생 두 친구 김시은과 강민하가 함께 작업한 <그 애>가 바로 그런 영화다.
9분짜리 짧은 애니메이션은 전쟁으로 인한 참혹성을 드러낸다. 시작은 어느 낡은 집, 어른들의 손길이 얼마 닿지 않은 듯한 집 안에 한 여자아이가 있다. 아이는 노랫소리를 흥얼거리며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린다. 결코 평온하지 않은 아이의 시간이 이내 깨어진다. 소총을 든 한 병사가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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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애 스틸컷 |
| ⓒ CRFF |
<그 애>는 인물이나 지역, 국가를 특정하지 않고 전사 또한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도리어 확장성을 얻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레바논과 또 다른 분쟁의 현장에서 얼마든지 이와 같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음을 상기하게 한다. 전쟁 가운데 놓인 아이의 모습은 그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인류는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가 되묻게 된다.
두 감독은 영화제 측에 전달한 입장문에서 "어느 날 TV에서 폭격으로 부모를 잃고 망연자실한 어린아이를 보며, 대체 저 모습을 어떤 말로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란 의문이 들었다"며 "지금 이 순간도 수백수천 명의 전쟁 피해자는 생겨나고 있고,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고 있다"고 제작의 변을 전했다. 이들은 이어 "우리 모두는 전쟁으로 아이들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안다"며 "이 작품은 그렇게 죽어간 모두가 아는 그 아이에 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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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애 스틸컷 |
| ⓒ CRFF |
한국영화계가 나라 밖에서 이어지고 있는 전쟁을 외면한단 지적은 유효하며 적절하기까지 하다. 이와 관련해 주순민 세이브더칠드런 선임 매니저는 "유독 국제 정치에 관심이 부족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한국 독립영화계는 적어도 5년간 전쟁 관련 영화를 만들어낸 적이 없었다"며 "올해 처음으로 전쟁 관련 영화가 두 편이나 출품됐는데 모두 아동 감독들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어떤 영화는 보는 게 아니라 체험하게 된다"면서 "스토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영화에 담긴 감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영화적 성취를 이뤄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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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권리영화제 포스터 |
| ⓒ CRFF |
군인과 아이의 대비, 결코 평안할 수 없는 긴장은 영화 가운데 전쟁에 진행되는 중이며 아이가 살해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는 단순한 우려를 넘어 지난 역사 가운데 수도 없이 반복돼 경험된 진실이다.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민간인 피해를 겪은 것이 이 나라이고,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선 직접 수만에 이르는 전투병을 파병해 게릴라들과 격전을 치러냈던 것 또한 한국이다. 그 가운데 민간인 학살이 의심되는 여러 현장이 있으나 그에 대한 인정은 물론, 제대로 된 진상조차 한국은 거부해 왔다.
몇 년 전 수 시간을 달려 겨우 찾은 베트남 빈딘성 낌따이 촌에서 위령비를 마주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사건이 있었던 1966년 기준으로, 일흔이 넘는 노인부터 세 살 아이까지 스물이 넘는 이름이 비석에 새겨져 있었다. 그중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을 나는 하나하나 더듬어 세어 나갔던 것이다. 모두 일곱 명의 아이, 그들까지 함께 집 안에 몰아넣은 뒤 수류탄을 던진 이가 한국군이라며 잘 통하지 않는 언어로 손짓발짓하던 이를 기억한다.
그 애는 한때는 한반도에서 태어난 어느 이름 모를 아이였고, 한국에 의해 죽은 베트남의 아이이기도 했으며, 저 멀리 한국이 판 무기로 죽음을 맞게 될 아이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서 어떻게 오늘 한국의 번영이 피 위에 쓰였다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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