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인공눈물(일회용 히알루론산 점안액, 이하 히알 점안액) 가격이 최대 10배 비싸진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일선 의료 현장에서 히알 점안액을 사재기하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히알 점안액 관련 기업의 역대급 매출이 기대되지만, 정부 당국의 관리·감독이 강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과 의원과 종합병원, 약국 등에 따르면 최근 히알 점안액을 무더기로 처방하려는 환자들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히알 점안액 가격이 10배가 넘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사재기하려는 수요가 급증했다는 것이 현장의 설명이다.
통상 히알 점안액을 장기간 사용하는 환자들은 한 달에 한 박스(60관) 정도 사용한다. 의료기관에서 장기 처방(3개월치)한다 하더라도 통상 3박스를 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 의료진들은 환자가 직접 히알 점안액 가격이 오를 것을 걱정하며 의사에게 추가 처방을 요구하는 경우가 급증했다고 우려한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 안과 교수는 “전국에서 병원 찾아 오는 환자 중 처방을 20박스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급증했다”면서 “이게 한 두달 사이에 바뀐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약국에서도 확인됐다. 한 약사는 “약국 커뮤니티에 예전보다 히알 점안제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처방되고 있다는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온다”면서 “언론에서 (히알 점안제) 10배 인상을 보도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재기 열풍이 몰아치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안과 전문의들은 히알 점안제를 과다 처방하는데 부정적이다. 대한안과의사회 관계자는 “회원들 대부분이 히알 점안제를 평소보다 과다 처방하지 않는다”면서 “의료적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만 처방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의사들의 적정 처방 노력에도 불구, 일부 환자들은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히알 점안제를 다량 처방받는 방법을 공유하거나 악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급기야 히알 점안제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적정성 재평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히알 점안제 가격 10배 인상이 사실이 아니라는 내용의 보도설명자료를 배포했다.
이에 따르면 히알 점안제 1개의 현재 보험등재 가격은 152원에서 396원, 한박스(60개) 기준으로 약품비 총액은 9120원에서 2만3760원이다. 이 중, 본인부담금은 의원급 의료기관이 30%, 상급종합병원이 50%다.
임상적 유용성 검토 결과에 따라 일부 적응증의 급여기준 변경 시 전액본인부담을 가정하더라도 본인부담금은 보도자료에서 제기한 10배 부담이 아닌 2~3배 부담이 된다. 그마저도 안구가 건조해 안과 의원을 방문하면, 히알 점안액을 본인부담 30%로 처방받을 수 있다. 10배 인상이라는 결과가 도출될 수 없는 구조다. 다만 연간 적정 사용량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한 결정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매출 급증이 오히려 독이 된 제약업계
의료계는 히알 점안제 사재기 열풍으로 인해 관련 업체들의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안과학회 관계자는 “올해 국내 히알 점안제 시장이 무난하게 3500억원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고 예측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추산한 한 해 건강보험에서 지출하는 히알 점안제 급여 비용은 약 2315억원이다. 사실상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급여적정성 재평가가 오히려 의료 남용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이에 대해 제약업계에서는 내부적으로 역대급 매출을 기록하는 히알 점안제에 웃을 수도 있겠지만, 경영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호사다마’로 이어질지 우려한다. 아직 급여적정성 재평가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호실적이 히알 점안제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미 의료계에서는 D사와 S사, H사 등 일부 제약사들의 매출이 크게 성장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해당 업체 관계자는 “절대 그런 일도 없고 히알 점안제 10배 논란을 언론을 통해 들었을 뿐”이라며 “팩트체크를 위해 회사로 연락 온 경우조차 없었다”고 설명했다.
빠르면 11월 말, 늦어도 연내 히알 점안제에 대한 급여적정정 평가 결과가 확정된다. 이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일부 히알 점안제 오남용 사례에 대해, 임상적 유용성 및 과다처방 등에 대한 요양급여기준을 검토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건강보험에서 히알 점안제 급여를 보장하긴 하지만, 과잉 사용된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잘라내겠다는 의미다.
이러한 방식 중 가장 즉각적인 방법은 연간 사용량 제한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환자 한 명당 연간 4박스 처방을 고려 중이다. 반면 제약업계에서는 최대 20박스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차이가 크다. 현재 보험당국과 업계가 사용량 제한과 그 방식의 유불리를 따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사재기 이슈의 부각은 제약업계의 목소리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보험당국에서는 이러한 사재기 현상을 예의 주시 중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이러한 사재기 현상을 필요한 환자에게 적정량이 제공되어야 하는 원칙이 흔들리는 증거로 판단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히알 점안제는 일반 공산품이 아닌, 의약품”이라며 “일부 몰지각한 행태를 관리하기 위해 기준이 필요하며, 제대로 된 관리 기전을 하루빨리 만들고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