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염원 끝 통과된 장애인권리보장법, 왜 '속 빈 강정'인가
장애인권리보장법 통과는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법안 곳곳에는 여전히 권리 보장을 약화시킬 수 있는 한계와 독소조항이 남아 있다. 이번 글을 시작으로 총 3편의 연재를 통해 임의조항과 탈시설 권리 문제를 비롯해 평등권·통계·인식개선 조항 등 법안의 구조적 문제를 차례로 짚어보고자 한다. <기자말>
[이원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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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4월 23일 국회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등 장애인단체들이 ‘장애인권리보장법’ 통과를 환영하는 기자회견 모습 |
| ⓒ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홈페이지 성명서 게시물 |
일단 제3조 1항의 장애 정의를 사회의 문화적·물리적 및 제도적 장벽 등의 환경적 요인과 신체적·정신적 특성 등 개인적 요인 간의 상호작용으로 인하여 일상생활 또는 사회참여에 제약이 있는 상태라 정의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다. 장애를 손상으로만 여겨 오롯이 개인의 책임을 강조했던 장애의 의료적 모델이란 족쇄를 끊어내고, 사회적 장벽 등을 고려한 거라 그렇다.
또한 누구든지 장애인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했고, 장애인이 이 사회에서 누려야 할 이동권, 교육권, 건강권, 직업선택권 등을 가질 권리가 있음을 명시해, 장애인을 권리의 주체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그러기에 사회적 모델로 장애의 패러다임 전환 실마리가 마련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장애인은 임신·출산·양육 및 가사 등에 대한 모든 결정에 있어서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의 제43조 조항은 재생산권과 아동 양육권을 장애여성에만 국한하는 성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자기결정권도 명시함으로써, 가족 구성권에 대해 양성평등을 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는 점은 분명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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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권리보장법 통과에도 임의조항, 예산 앞에 멈춰 선 장애인과 그 가족의 현실을 상징한 삽화 |
| ⓒ AI 생성 이미지 |
먼저 생활안정 지원을 받을 권리, 직업선택권, 건강권 등에서 ~할 수 있다, 노력해야 한다, 강구해야 한다는 문구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 이는 의무가 아닌 임의조항이다. '강구'는 방법을 찾아본다는 뜻이다. 대책이 안 나와도, 정부 측에서 우리는 방법 찾았는데 예산 등의 이유로 대책 안 나왔다 하면 그만인 뉘앙스다. 행정 언어로는 '검토'이지만, 당사자의 눈에는 예산이란 칸막이 뒤에 숨는 책임 '방치' 선언이나 다를 바가 없다.
설령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차별과 장벽이 제거됐더라도 장애인을 포함한 인간에겐 사회적·경제적·문화적 권리가 필요하다는 점은 장애의 인권적 모델의 핵심 전제 중 하나이다. 그걸 생각한다면 '강구', '노력' 등의 말은 장애인의 건강권, 노동권 등 기본권 보장을 회피할 수 있도록 정부가 빠져나갈 구실이 되며 장애의 인권적 모델 미이행 여지를 남긴다.
'강구', '노력' 등의 말은 장애여성 조항에도 드러난다. 제42조 3항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여성의 능력 개발과 지위 향상 및 고용 안정 등을 위하여 관계 법령에 따라 학습, 직업교육, 장애여성에게 적합한 노동환경 조성 등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장애여성은 장애와 젠더로 인한 교차·다중 차별을 받고, 임금도 장애남성에 비해 약 2배가 낮은 등 인간다운 삶을 애당초 영위하기 어려운 구조적 차별을 심각하게 겪는다. 그러기에 더욱 장애여성의 노동권, 교육권 대책을 마련하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식의 문구로 가야 하는데, 강구해야 한다는 말로, 권리 보장을 위한 예산 투여 회피 구실을 슬그머니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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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4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인천 색동원 사건, 구조의 본질을 묻다' 토론회 현장. 시설수용 중심 정책으로 인한 참사임에도, 통과된 장애인권리보장법에는 실질적인 '탈시설 권리'가 빠져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
| ⓒ 이원무 |
동법 제19조에서 탈시설 권리가 삭제된 채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제한하는 환경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의 '탈시설화'란 말이 나온 것도 의아스럽다. 그런 맥락이라면, 시설 정원을 줄이거나 시설의 내부 환경을 개선하는 '시설 소규모화'도 환경이 바뀌었다는 명목하에 '탈시설'로 포장될 여지는 상당하다. 그러나, 집단생활 및 자기결정권을 박탈하는 시설적 요소가 바뀌지 않는 이상 시설은 시설일 뿐이며, 좋은 시설이란 없다.
시설의 외형은 바뀌지만, 당사자의 권리는 보장되지 않는 일종의 면죄부로 작용할 위험이 크다. 결국, 정책 주체 미명시라는 사회적 모델의 약점을 전문가, 행정가가 자신의 언어로 탈취해 악용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사례 중 하나다.
더군다나 국가는 시설수용 예산을 탈시설에 비해 무려 97배나 책정했다. 여기에 시설 인권침해를 감시해야 할 주체 또한 시설 운영에 우호적인 단체와 관계자들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인권침해와 유린은 여전히 발생한다. 이 때문에 시설 내 인권침해 문제가 제대로 견제되지 못한 채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립하기 위해 자립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국가의 시책은 폭력적임은 물론, 탈시설 후 말살당한 존엄성 회복을 위한 피해 생존자의 삶 관점에서의 종합적인 배보상에 대한 명시 자체가 법에 없다. 그러기에 장애인권리보장법에서 명시한 장애인 개개인의 존엄성 보장은 사문화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제 정리해 보겠다. 당사자의 건강권, 노동권 등 기본권은 정부의 선택이 아닌 의무이니, '강구', '노력'이란 말 대신 '~해야 한다', '보장해야 한다' 등으로 바꿔야 한다. 삭제된 탈시설 권리를 원상 복구함은 물론 탈시설 생존자의 삶의 관점에서 종합적인 배·보상 권리를 명시해야 한다.
여기에 시설 인권침해 감시 주체는 시설과 독립적인 기관에서 맡도록 하고 자립 지원 정도는 피해 생존자의 자립능력이 아닌 사회적·문화적 장벽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점을 법에 담아야 한다.
아울러 기본권 보장과 종합적인 탈시설 관련 배·보상 및 이와 관련된 충분한 예산 마련, 그리고 시설 인권침해 감시 주체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 명시해 장애인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법안 제정 및 정책 결정 시 탈시설 생존자들을 포함한 장애인 당사자들의 의미 있고 실질적인 참여가 가능한 구조가 되어야 함을 말하고 싶다.
장애인의 기본권 보장 및 탈시설에 대한 구체적인 예산 마련 및 실현방법·기준이 없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속 빈 강정'임을 다시금 본다. 다음 글에선 '평등권', '통계', 그리고 '인식개선'과 관련된 장애인권리보장법의 독소조항을 얘기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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