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덕에 떠나는 나가사키 온천 여행
유황 냄새 진동하는 온천의 위엄
운젠 & 오바마 온천
지옥처럼 피어나는 연기 속에서 강렬한 유황냄새가 진동한다. 콧속을 파고드는 독특한 향에 이끌려 발걸음을 재촉하면 지옥은 또 다른 지옥을 안내한다. 이곳이 진짜 온천이다.
지옥의 온천
운젠
고지대에 위치한 운젠雲仙으로 가기 위해서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밤새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고도를 높이자 점점 더 굵은 빗방울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윽고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뿌옇게 낀 구름 탓에 운젠으로 가는 내내 불안감이 엄습했다.
운젠은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온천여행지 중 하나로 우주의 행성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화산지형에서 솟아나는 고온의 온천과 증기로 인해 ‘운젠지옥’으로 불린다. ‘뿌옇게 솟아나는 운젠지옥의 증기가 구름 속에 흩어져버리면 어쩌나’ 걱정하는 사이 드디어 운젠에 도착했다.
운젠지옥으로 들어서면 먼저 유황냄새가 마중을 나온다. 그리고 나타나는 지옥의 풍경. 생명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메마른 땅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증기가 공포감마저 불러일으킨다. 여전히 가득한 구름 탓에 지옥의 민낯은 흐릿하지만 그 열기만큼은 생생하다.
운젠지옥은 시마바라 반도 중앙에 자리한 운젠다케의 ‘호흡’을 오롯이 관찰할 수 있는 장소다. 증기의 원천인 마그마는 운젠 서쪽 다치바나 만 해저에 자리하고 있다. 운젠다케의 주봉인 후겐다케 분화(1990~1995년) 당시 용암이 상승해 분출되었지만, 평소에는 화산 가스만 상승해 지하수와 빗물과 섞여 운젠의 온천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운젠지옥은 고온의 황화수소가 지표의 암석을 녹여 하얀 진흙이 가득이다. 운젠지옥이 유독 하얀 이유다.
첫 번째 지옥을 관찰하는 사이 구름이 서서히 이동하며 시야가 점점 또렷해졌다. 다음 지옥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구름도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운젠지옥 일대에는 30여 곳의 지옥이 자리하는데, 나무 데크길이 잘 조성돼 천천히 산책하기 좋다. 지옥의 풍경이 거짓말인 듯 산책로는 금세 울창한 숲으로 이어졌다. 잠시 뒤에 나타난 두 번째 지옥은 다이쿄칸 지옥大叫喚地獄이다. ‘지표의 분기공에서 들리는 소리가 마지 지옥에서 외치는 울부짖음 같다’고 해 유래한 이름 다이쿄칸은 ‘지옥을 부르짖다’는 의미다. 무시무시한 이름에 걸맞게 사방에서 솟아나는 증기와 지표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온천수의 풍경은 등골이 오싹할 만큼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운젠지옥의 지표는 하얗다가도 초록빛이 머물고 회색빛의 유노하나가 뒤섞인 오묘한 색상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든 고열의 지표에도 생명은 싹트고 있었다. 황화수소에 비교적 강한 하늘지기와 철쭉류는 물론이고 곳곳에 푸릇한 생명들이 살아 숨 쉬는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산책로는 고도를 높여 가장 높은 전망대에 닿았다. 이제 구름이 모두 걷히고 운젠지옥의 모습이 온전하게 드러났다. 잿빛의 지표를 뚫고 나오는 증기와 온천의 생경한 풍경이 익숙해진 사이 ‘펑! 펑!’ 작은 폭발음이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소리의 원천을 찾아보니 분기공 한 곳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폭발로 인해 온천 여토가 마치 작은 산처럼 주변에 쌓여갔다. 미미하지만 화산 분출의 현장을 직접 본 듯하다. 온천의 여토는 ‘유노 하나’라고도 부르며, 일본의 료칸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입욕제다. 운젠지옥의 유노 하나는 암석이 증기와 온천의 열, 산성화된 물의 영향을 받아 진흙처럼 변질되고 탈색돼 유난히 흰 빛을 띤다. 운젠지옥의 유나하나가 특별한 것은 물속이 아닌 지표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 사방에 가득한 유노하나가 인상적이다.
운젠에 방문했다면 온천은 필수다. 운젠의 온천은 유황을 포함한 강한 산성천으로 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수질을 자랑한다. 유황 성분은 강한 산성을 띠어 살균 효과가 탁월하다. 온천은 수질에 따라 성분이 다르고 그에 따른 효능이 다 다른데, 운젠 온천은 산성 성분이 강해 습진, 동상 등의 피부병에 효과가 좋다. 또 만성 류마티스, 신경통, 근육통, 관절통, 당뇨병 등에도 효험이 있어 일본 전국 각지에서 치료 효과를 위해 찾는 이들이 많다. 일정상 온천욕이 힘들다면 운젠지옥과 인접한 신유지구에 족욕탕이 있으니 발이라도 담가볼 것.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운젠 일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날이 좋으면 운젠 로프웨이를 타고 묘켄다케에 올라 운젠국립공원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지만 오늘은 아니다.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운젠국립공원의 수려한 풍경과 시마바라 반도의 육감적인 풍모를 감상하고 싶다면, 날씨가 좋다는 전제 하에 꼭 방문해 볼 것.
일본에서 가장 긴 족욕탕
오바마 훗토훗토 105
운젠지옥에서 차로 20여 분을 달려 바다에 닿았다. 일본에서 가장 긴 족욕탕 훗토훗토 105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지는 비에 아쉬움도 잠시, 족욕탕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정자가 곳곳에 마련돼 있었다. 오바마 온천은 원천 온도만 105℃에 달할 만큼 뜨겁고 강렬한 온천으로 타치바나 만을 향해 족욕탕을 마련해 바다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온천욕을 할 수 있는 장소다. 뜨거운 원천의 온천수는 긴 족욕탕을 거치며 족욕하기 딱 좋은 온도로 바뀌어 있었다. 족욕탕의 길이만 105m. 운젠 화산 지대의 마그마가 모인 지하에서 가장 가까워 지하수와 해수가 풍부하며 하루에 8천 톤이 넘는 온천수가 샘솟는다.
족욕탕 입구에는 거센 빗줄기를 뚫고 뭉게뭉게 피어나는 증기가 가득이다. 온천의 증기를 이용해 각종 식재료를 쪄 먹을 수 있게 마련한 찜 솥이 눈에 띈다. 찜 솥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이 가능해 인근 지역 주민들은 집에서 재료를 직접 마련해 타치바나 만을 바라보며 식도락이 한창이었다. 여행자들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입구 앞 매점에서 계란과 야채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찜 솥을 이용할 때는 뜨거운 열기 탓에 나무 바구니가 필수다. 바구니 역시 매점에서 200엔에 대여할 수 있다.
인원수에 맞게 계란을 사고 만두도 몇 개 담아봤다. 아찔한 증기가 솟아나는 찜 솥에 식재료를 넣은 지 15분. 요리가 완성됐다. 손으로 집기도 힘들 만큼 뜨거운 계란을 호들갑스럽게 까고, 운젠의 명물 레모네이드와 함께 먹어주면 금상첨화. 사실 훗토훗토 105는 정 서쪽에 자리한 만큼 날씨가 좋을 때면 경이로운 석양을 선물하는 노을 명소다. 파란 바다도, 붉게 물든 노을도 만날 수 없었지만 선선한 날씨 덕에 우중 족욕의 묘미도 즐겁기만 하다.
〒854-0621 長崎県雲仙市小浜町雲仙320
훗토훗토 105
〒854-0514 長崎県雲仙市小浜町北本町905-71
10:00~18:00
0957-742-672
obama.or.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