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건 "미남 배우? 이젠, 무기도 족쇄도 아냐" [D:인터뷰]
배우 장동건이 '창궐' 이후 6년 만에 '보통의 가족'으로 스크린에 컴백했다. '보통의 가족'은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던 네 사람이 아이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담은 영화로, 허진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장동건이 주위의 존경을 받는 소아과 의사 재규, 설경구가 냉철한 변호사 재완, 김희애가 재규의 아내 연경, 수현이 설경구의 아내 지수 역할을 맡았다.
1992년 MBC 공채 탤런트 21기로 데뷔한 이후 드라마 '마지막 승부'로 스타덤에 오른 이후 '대한민국 대표 미남 배우'라는 수식어로 오랜 시간 활동해 온 장동건. 어떤 작품이든 그의 수려한 외모 이야기가 따라왔다. 심지어 작품보다 그의 외모가 더 주목받기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보통의 가족' 속 '미남 장동건'은 없다. 범죄를 저지른 자식 때문에 신념이 흔들리는 괴로운 50대 남성 재규만이 존재한다.
"영화 첫 촬영하고 모니터를 봤는데 '이게 나라고?'란 생각이 들면서 깜짝 놀랐어요. 생각보다 나이가 많이 든 것도 있었고요. 하하. 사실 지금까지 특수한 직업을 가진, 판타지적 색이 있는 역할들을 주로 맡아왔어요. 정말 주변에 있을 법한 현실에 있는 인물을 연기한 적이 거의 없었죠. 나이가 든, 현실적인 캐릭터의 장동건이 낯설기는 했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신선함이 있었죠. 재완은 냉철하고 돈만 밝히는 변호사, 재규는 원리원칙을 지키고 아이들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상한 의사로 딱 캐릭터로서 그려지는 이미지가 분명하잖아요. 이 대본의 매력적인 지점 중 하나였죠. 제가 재규를 연기하면 할 수 있는 게 좀 많을 것 같았어요. 또 마침 허진호 감독님이 연출을 하신다니 정말 의미 있는 영화가 나올 거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장동건은 2012년 '위험한 관계' 이후 다시 한 번 허진호 감독과 손발을 맞추게 됐다. 허진호 감독은 장동건의 선한 이미지가 재규와 잘 맞아 떨어져 러브콜을 보냈고, 장동건은 허 감독에 대한 믿음으로 응했다.
"허진호 감독님의 작업 스타일을 잘 모르면 당황스러울 수도 있어요.(웃음) 감독님은 촬영 전에 배우들과 거의 반나절을 이야기 하거든요. 하지만 초반에 그렇게 감독님과 대화로 조율이 되면 시간이 지날 수록 작업 속도가 빨라지죠. 감독님이 이 과정을 통해 배우들이 뭘 불편해 하고 편해하는지 다 찾아내요. 나의 불편함이 화면에 안 담기게 해주는 감독님이죠. 배우로서는 그런 감독님의 배려가 감사해요."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세 번의 식사 신이다. 네 명의 인물이 감정들이 점점 고조돼 칼날처럼 부딪치며, 결국 비극을 초래한다. 장동건은 식사 장면은 리허설부터 뜨거웠다고 전하며 당시를 떠올렸다.
"배우들이 자기 신이 아니면 본인 신 만큼 에너지를 잘 쏟지 않아요. 일정 수준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런데 '보통의 가족'은 김희애 선배님이 그걸 깨기 시작하신 거예요. 본인 찍는 게 아닌데도 눈물을 흘리며 열연을 하는 걸 보고 모든 배우들이 '아 저렇게 해야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특히 식사 장면은 네 명의 감정이 얽혀있다 보니 착오가 없도록, 진짜 촬영 때처럼 해야겠다 싶었던 거죠."
극중 재규는 아이들의 범죄 사실을 안 후, 자수 시키자는 입장을 고수하지만, 결국 아이들의 범죄 사실을 이대로 묻어버리고 싶어 한다. 이 장면을 두고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가 이해가 되지 않거나 불친절하다는 일부 평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설명하는 장면들이 많이 편집됐어요. 재규과 아들 시호와 캐치볼 하는 장면도 있고, 시호가 잠들어 있는 얼굴을 바라보는 재규의 모습도 있었고요. 그런 장면들이 편집되면서 재규의 입장 변화가 갑작스러울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다른 인물들은 감정이 명확하잖아요. 재규는 도덕적인 삶과 직업에 대해 프라이드가 있는 사람이고 그걸로 형보다 자기가 우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결국 그 선택을 하고 싶었던 사람인데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있으니 '나는 이런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이라고 계속 생각해 왔다고 봤어요. 마지막 엔딩도 어떻게 보면 개연성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중간 중간에 표현됐다고 생각해요."
장동건에게 가장 중요했던 장면은 병원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피해자가 사망 소식했다는 소식을 형으로부터 전해 듣는 신이다. 식욕을 잃은 듯 밥을 깨작거리다, 전화를 받고 난 후에 어떠한 다짐을 한 듯 밥을 입 속에 욱여넣는다.
"잘 표현하기 위해 버전이 여럿 있었어요. 재규 입장에서는 미묘하게 달라진 포인트들을 전달해야 테이크도 많이 갔어요.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무도 모르게 살짝 웃기까지 해요. 그 전에는 선택지가 없는 딜레마였다면 그 순간 선택지가 있는 딜레마가 되면서 본능적인 선택을 하게 된 거죠."
장동건은 2019년 고소영과 결혼해 2010년 아들, 2014년 딸을 얻었다. 이제 아들과 딸이 장동건의 직업을 이해하고 작품도 함께 보기도 한다. 그렇기에 작품을 고를 때 조금 더 신중해졌다.
"얼마 전 '태극기가 휘날리며'를 아들과 같이 봤는데 감동 받았더라고요. 일주일 정도는 아빠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어요. 길게 가진 않았어요.(웃음) 이제 작품을 볼 때 아이들을 의식하게 돼요."
장동건은 앞서 언급했듯 미남 배우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하지만 나이 50을 넘긴 장동건에게 외모는 더 이상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물론 외형적으로 유지가 잘 된다면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겠지만 이제 이 부분은 저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됐어요. 한 때 외모가 저에게 큰 무기이자 족쇄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지금은 무기도 족쇄도 아니죠. 그래서 오히려 편해요."
'보통의 가족'은 19개 해외 영화제에서 초청을 받으며 개봉 전부터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국내에서 공개된 후에도 '웰메이드 서스펜스'라는 평을 얻었다. 하지만 평과 흥행이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는다. 장동건은 '보통의 가족'이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좋은 결과로 돌아오길 바라고 있었다.
"사실 배우들도 영화 찍고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면 크게 할 말이 없는데 '보통의 가족'은 그런 점에 있어서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이 영화를 찍으면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보게 되잖아요. 그래서 이 영화가 재미있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에너지가 많이 소모될 수 있지만 충분히 시간을 들여 볼 만한 가치가 있어요. 요즘 한국 영화의 다양성이 많이 좁아졌는데 평가가 좋으니 이제 흥행까지 잘 되어주면 한국 영화 시장을 위해서라도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꼭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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