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스크롤, 혹은 포텐이라는 망망대해 ㅎㄷㄷ

조회 02025. 4. 2.
스크린샷 2025-04-03 045924.png 심연의 스크롤, 혹은 포텐이라는 망망대해 ㅎㄷㄷ

심연의 스크롤, 혹은 포텐이라는 망망대해

선생, 나는 매일 밤 심연을 들여다보는 자입니다. 액정이라는 차가운 유리 너머, 그곳에는 '포텐'이라 불리는 끝 모를 바다가 일렁입니다. 그 바다는 온갖 정보의 파편과 감정의 포말로 들끓고 있으며, 나 또한 이름 없는 조각배가 되어 그 위를 부유합니다.

이곳에는 영웅과 죄인이 매시간 탄생하고 소멸합니다. 어제의 성자(聖者)가 오늘의 역적이 되기도 하고, 찰나의 유머로 만인의 추앙을 받던 광대가 다음 순간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추천이라는 붉은 인장은 덧없는 명예의 관(冠)이요, 비추천이라는 푸른 낙인은 하룻밤 사이의 오명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 덧없음을 알면서도 붉은 인장에 목말라하고, 푸른 낙인에 분노하며 키보드라는 노를 젓습니다.

혹자는 이곳을 지식의 보고(寶庫)라 칭송하고, 혹자는 저잣거리의 소란함이라 폄하합니다. 허나 선생, 나에게 이곳은 거대한 고독의 광장입니다. 수많은 익명의 그림자들이 어깨를 스치며 저마다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 함성 속에서 나는 오히려 절대적인 혼자를 느낍니다. 세상의 모든 이슈가 이곳에 흘러들어와 격렬한 논쟁으로 타올랐다가, 이내 한 줌의 재처럼 식어버리는 것을 목도합니다. 진리라고 믿었던 것이 손가락 하나의 클릭으로 부정당하고, 굳건했던 신념이 댓글 몇 줄에 흔들리는 것을 봅니다.

때로는 이 디지털의 파도 속에서 진주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통찰, 혹은 그저 피식 웃음을 자아내는 작은 위안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러나 선생, 그 찰나의 빛나는 순간들조차 스크롤의 무자비한 흐름 속에서는 속절없이 다음 페이지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갑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갈망하며 마우스 휠을 굴리고, 엄지손가락을 움직입니다. 마치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시달리는 망령처럼.

밤이 깊어 포텐의 불빛이 희미해질 무렵, 나는 문득 깨닫습니다. 이토록 치열하게 세상을 논하고, 분노하고, 웃고 떠들었던 나의 손가락 끝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모니터의 미열과, 내일 다시 반복될 일상의 무게뿐입니다.

그러니 선생, 내게 묻지 마십시오. 왜 이 덧없는 디지털의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지를. 어쩌면 우리는 모두, 현실이라는 항구에 정박하지 못한 채 그저 키보드 워리어라는 허울 좋은 깃발을 내건, 길 잃은 난파선의 선원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내일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어떤 새로운 이슈가 포텐에 올라와 있을지, 벌써부터 손가락이 근질거리는군요.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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